다섯번째. 더 어려워졌어
-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융모막검사 결과는 2주 정도 걸려서 나온다고 했는데 열흘쯤 되었을때 전화가 왔다. 교수님이었다. 별 이상 없겠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융모막 검사에서 환급이는 염색체가 모두 정상인데 일란성인 연말이와 정산이의 집에서 검사한게 7번 모자이시즘이라고 했다. 7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러셀 실버 증후군(Russell-Silver Syndrome, RSS)이라는 유전 질환을 일으키는데 아이가 아주 작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자세한 이야기는 의학유전학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라고하셔서 바로 예약을 잡았다.
며칠 후 남편과 같이 이름도 낯선 의학유전학센터로 갔다. 큰 병원이라 환자들도 많은데, 유전학센터에는 특히 더 속상한 환자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지만 눈길이 가는 것 조차 미안해서 일부러 딴 생각을 하게되는 그런 환자들. 못된 마음이지만 내 뱃속의 아기들이 저렇게 고생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그런 환자들. 마음이 착잡했다.
유전학센터 교수님이 건네준 유전자검사 결과지 세 장. 설명을 듣기 전에 23번 염색체 한쌍의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헉. 셋 다 XY네.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 얼굴이 눈앞에 스쳐갔다. 우리 삼둥이는 아들 삼둥이구나. 나 열심히 운동해야겠네.
배아를 이식했을때는 7번 염색체에 결손이 있다는걸로 이해했었는데, 융모막검사에서 듣기론 7번 염색체가 3개씩 있는 삼염색체 이상이라고 했다. 채취한 검체에서 일정한 개수의 유전자를 샘플로하고 갯수를 일일히 세어보는건데, 검사한 30개 중 19개가 삼염색체 이상, 11개는 정상이었다고 한다. 결국 또 확률을 따져야 하는건데……. 결국 검체는 아기가 아니라 융모막에서 채취한 간접적인 검체니까 진짜일 확률과 태반조직에서 오염되었을 확률이 혼재되어있는것이다.
나는 염색체 검사만 하면 다 되는건 줄 알았다. 무지함에서 온 오해였을텐데, 나는 인간의 유전자가 무수히 분열해서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이, 똑같은 염색체가 동일하게 계속 복제되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복제되는 과정에서 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는거고, 진짜로 아기한테 이상있는 염색체가 갔다고 하더라도 신체의 어느 부위에 이상 염색체가 많이 분포하느냐에 따라서 실제로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도 결국은 알 수 없는 거였다. 하나의 건강한 인간이 태어나는건 정말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일어나는 기적인거구나.
여러가지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셨지만 RSS자체도 희귀한 질환인 것 같았고 명확히 확률이 어느정도이니 이렇게 결정해라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더 확실히 하기위해선 양수검사를 해서 미세결실까지 검사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지만, 시험관에서 이식한 배아 자체가 7번 모자이시즘이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진짜 아기의 유전자에도 이상이 있을 확률이 높을테니 양수검사가 의미없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결국 알 수 없는 확률 때문에 연말이 정산이를 포기하는 결정을 해야하나? 그럴 순 없었다. 건강하게 태어날 수도 있잖아. 남편은 그래도 양수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유전학교수님 말대로 양수검사는 회의적이었지만 남편 의견을 따르기로했다.
바로 다다음날이 외래였는데 교수님께 양수검사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럼 해야지 하시면서 이 결과도 나오려면 2주 정도는 걸리니 오늘 할 수 있으면 하자고 하셨다. 남편과 바로 통화 후 그렇게 하기로 하고 바로 담당 간호사님께 오늘 검사받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외래는 오전만 있었고 내가 거의 마지막 순서여서 다들 진료실 정리를 하다가 나의 검사를 준비해주셨다. 교수님도 아마 연구실로 갔다가 연락을 받고 바로 다시 와주신 것 같았다.
융모막검사때처럼 동의서를 쓰고 설명을 들었다. 융모막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환급이의 양수는 검사할 필요가 없었고 연말이 정산이가 있는 집의 양수만 검사하면 되었으니 한번만 찌르면 되는거였고, 융모막검사보다는 바늘이 가늘다고 덜 아플거라고 하기에 덜 아플거란 기대를 해서 그런가 오히려 더 아팠다. 바늘을 쑤욱 쑤욱 찌를때마다 장기가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양수검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터라 혹시나 어딘가 잘못될까봐 아픈걸 꾹 참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양수 채취를 무사히 끝내고 초음파로 이상이 생긴 곳이 없는지 바로 확인하고 삼둥이의 심장도 잘 뛰고 있었다. 또 다시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구나. 임신과 출산은 확률과 기다림이네.
2주 뒤 외래에선 좋은 결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