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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빵떡 Aug 05. 2024

특별한 평범함_나의 임신, 출산 이야기

여섯번째. 우리 부부 인생 최악의 하루

- 태동이길 바랐지만.

양수검사 결과를 기다린지 일주일이 지났고, 그 주말엔 아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집으로 올라오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에 미리 집으로 오셔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같이 검진센터로 갔다. 두세시간 쯤 걸린 검진이 끝나고, 삼성동으로 가서 백화점 구경도 하고 별마당 도서관에서 사진도 한장 찍고, 간식거리를 샀다. 아빠는 젊었을때부터 지하철, 버스로 출퇴근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걸음이 빠른 편이고 나도 아빠와 지하철로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걸음이 꽤 빠른편이다. 하지만 배아 이식때부터는 일부러 조심하느라 절대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다녔고 16주 정도 되었지만 셋이 들어있어서 배도 제법 나오고 몸이 무거운 느낌에 더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천천히 걸었지만 거리는 꽤 되는 솔찬히 운동을 한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었다.

점심쯤 TV를 보려고 소파에 앉는데 배 중간에서 약간 윗쪽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났다. 무언가 툭 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퍽 발로 찬 것 같기도 했다. 혹시 태동일까? 이쯤이면 태동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는데. 초기 태동은 퍽 하는 느낌이라기보단 물방울이 뽀글 하는 느낌이랬는데?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다른 증상이 있는건 아니어서 그대로 소파에 누워 태동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는데 이렇다할 답은 없었다.

임신하고부터는 걷기가 좋다고해서 일부러 매 주말 오후, 평일 저녁마다 남편과 동네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오후부터 몸이 힘들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분비물도 좀 많아졌는데 원래 이 시기엔 그렇다고 들었던 터라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밤이 되었는데 생리통처럼 잔잔하지만 기분 나쁜 통증이 잠들때까지 계속됐다. 자궁이 커지고 있어서 통증이 어느정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봐서 이때도 병원 갈 생각은 안했다.

월요일 아침. 보통 그런 통증은 자고나면 괜찮아지는데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웅크리게 되는 통증이 계속됐는데 또 엄청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은 재택하는게 어떠냐고 했지만 보고해야할 건도 있고 회의도 있어서 컨디션 봐서 반차를 내든지 해야겠다 하면서 억지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4월 25일이 예정일인데 세쌍둥이면 35주를 만삭으로 보니까 3월말이 될 수 있고, 세쌍둥이를 낳으면 출산휴가가 120일이라도 아마 막달에는 입원생활을 하게될 수 있으니 연차를 최대한 아껴놔야했다.

지하철을 겨우 타고 역에 내렸는데 점점 몸이 웅크려졌다. 임신이 이렇게 힘든거였나. 어쨌든 출근을 해서 보고서를 보내고, 회의도 참석했다. 회의 후 마무리되지 못한 내용을 잠깐 회의실 밖에서 서서 이야기하는데 서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서있으니 너무 힘든데 탕비실에 앉아서 얘기하자고 자리를 옮겼다. 이때라도 난 병원에 갔어야했다. 미련한 인간아.

입덧때문에 넘어가지 않는 점심을 꾸역꾸역 넘기고, 많아진 분비물때문에 작은 생리대를 사야겠다 하고 백화점 지하까지 걸어갔다 오는데 이제는 허리까지 당기는 것 같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언가 내려온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오후 근무까지 마치고 아무래도 분비물 때문에 화장실에 갔다가 퇴근해야겠다 하고 퇴근시간 30분전쯤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서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땀을 흘린건가 했는데 겉옷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여전히 웅크린 몸을 하고 얼른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에 있던 동료들이 얼굴이 너무 안좋다며 괜찮냐고 물어보기에 말했다.

“지금 너무 안괜찮아요. 병원 가봐야할 것 같아요.”



- 제발. 괜찮아야 해.

회사 근처에서 서브로 다니던 로컬 산부인과로 갔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니트라진 검사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양수인지 검사하는거죠?”

검사실로 들어가서 의사샘에게 어제와 오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검사를 받았다. 검사지가 파랗게 변하면 양수가 새는건데, 검사지 색깔은 전혀 파랗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니는 병원에는 가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지난주 목요일에도 분비물때문에 로컬 산부인과에 갔었는데 그땐 통증도 없었고 불편한 곳이 없었지만 경부 모양이 살짝 한쪽이 Y자로 벌어져있으니 지금 출력해주는 초음파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병원에 내일 한번 더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하셨었다. 하지만 병원앱으로 조회해보니 변경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고 바로 다음주에 외래가 잡혀있으니 그때 가보면 되겠지 했었다. 그때 병원에 진료 가능한지 문의 전화라도 해볼걸.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이나 버스 타지 말고 택시 타고 가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5시에 퇴근해서 집에 와있던 남편은 바로 병원으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괜찮을거야. 아무일 아닐거야.



- 응급실, 분만장

응급실에 내려달라고 하고 입구에 가서 상황 설명을 했더니 임산부는 분만장으로 가라고 안내해주었다. 분만장이라니.. 생각만해도 두려웠다. 큰 건물 두개를 지나 분만장이 있는 건물로 잔뜩 수구린 몸을 하고 잰 걸음을 걸었다. 분만장 탈의실에서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백문백답같은 문진이 한참 이어졌다. 로컬 병원에서 양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하니 굳이 왜 왔을까하는 눈빛이 스쳤다.

긴 문진이 끝나고 베드에 누웠다.  당직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다 말했다.

“입원하셔야겠는데요.”

며칠 입원하면 괜찮아지는건가? 그냥 검사를 더 하려는 건가? 어떤 상황이 되어 병원에 온건지, 보호자는 같이 왔는지 물어보길래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이러저러해서 왔고 남편도 퇴근해서 지금 오고있다 했더니

“이 상태로 오늘 일을 하셨다고요?”

“네…….”

“회사, 휴직은 하실 수 있어요?”

“필요하면 휴가 내야죠, 뭐.”

이때까지만해도 며칠 치료 받으면 되는거겠지 했다. 계속되는 검사.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아......"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하아…….



- 하나의 선택지

남편이 도착했고 한시간인지 두시간인지 누워서 서로 초조한 카톡을 나누다 마침내 상봉한 곳은 가족분만실이었다. 초음파로 확인한 삼둥이의 심장은 잘 뛰고 있었지만 환급이의 양막이 터졌다고 했다. 그럼 양수검사때문에 터진건 아닌데, 왜지? 한집에 있어 걱정했던 연말이 정산이가 아니라 환급이라니. 우리끼리 환급이는 집도 혼자쓰고 유전자도 괜찮으니 걱정없다 했는데 양수가 왜? 대체 왜? 그 동안 산부인과 외래에서 혈압도 매번 괜찮았고 모든 수치도 다 정상이었는데 왜?

딱딱한 베드에 누워있는데 계속해서 양수가 조금씩 흘렀다. 나도 남편도, 밤새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배는 계속 아프고 마음은 더 아팠다. 환급이의 발이 경부에 끼어있어서 양수가 다 새어나가면서 환급이도 같이 빠져나오는건 시간문제였다. 담당의 선생님은 혹시라도 무언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절대 보지 말고 호출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아기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 분만실에서는 자궁 수축이 있는지 기계로 계속 검사하고, 시간마다 아기들의 심음을 확인했다. 삼둥이의 심장은 쿵쿵 잘 뛰고 있는데, 이렇게 잘 뛰고 있는데.

다음날, 내진이 계속됐다. 내진을 할때마다 양수가 쏟아져내렸다. 아픈것은 둘째치고, 양수가 다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경부가 잘 닫혀있다면 양수는 계속 생기니까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했겠지만 이미 발이 나와있었고 양막이 터지면 감염의 위험이 크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담당선생님이 그 하나의 선택지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간결하게 설명해주었다. 경부에 발이 끼어있는 환급이는 꺼내야 한다. 연말이와 정산이의 집은 괜찮은 상태지만 환급이를 꺼내는 과정에서 같이 나오게 될 수도 있다. 환급이를 꺼낸 후 경부를 복조리처럼 묶는 맥도날드수술을 해서 연말이와 정산이가 내려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데 현재 경부가 종잇장처럼 얇아져있다. 맥수술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한다. 수술을 하더라도 진통이 오면 묶어둔 곳이 찢어져버리기 때문에 바로 풀어야할 수도 있다.

설명을 마친 담당선생님이 누워있는 내 무릎에 올려놓은 손이 따뜻했고, 나는 펑펑 울었다.



- 안녕

밤새 한숨도 못잔 나와 남편은 다음날도 검색하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계속되는 내진과 심음측정 사이에서 비몽사몽이었던 오전과 오후가 저물어가고 네시가 넘었을까? 다급하게 들어온 누군가가 외쳤다.

“지금 분만할거예요!”

남편과 나는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연말이와 정산이라도 지켜야지.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렇게 서로 다짐하며 우는 사이 분주한 분만 준비가 끝났다.

환급이의 발을 붙잡은 손이 환급이와 함께 빠져나왔다. 따뜻하고 생생한 감촉에 슬픔과 상실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얼굴도 보지 못한 우리 환급이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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