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안녕, 환급이
- 아프지 않아서 속상해
환급이가 떠난 후 기분 나쁜 통증은 사라졌다. 환급이가 사라짐으로써 통증이 사라졌다는게 더 속상하고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미안하게도 나는 아프지 않아졌다.
- 환급이의 마지막 선물
태아가 잘못되면 일정 주수까지는 의료폐기물로 분류되고, 일정 주수가 지나면 장례를 치러줄 수 있다. 환급이는 17주에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을 보내줄 수는 있는 주수는 되었다.
환급이를 분만하기 직전, 태아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님이 태아 뇌 기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환급이의 마지막이 앞으로 또 다른 환급이가 생기는 걸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환급이 뇌 기증에 동의하는 싸인을 하고 또 눈물을 흘렸다.
장례절차에 대한 설명을 겨우 듣고, 화장할 때 같이 보내줄 수 있는건 같이 화장해줄 수 있다고 해서 어디서 받아 집에 뒀던 배냇저고리를 같이 보내주기로 했다. 예쁜걸 준비해놨어야하는데……. 미안해..
- 잘 묶어주세요.
이틀째 거의 먹은게 없었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이와 정산이는 지켜야했다. 힘을 내야지. 초음파로 본 경부는 그래도 어제보단 닫혀있었다. 맥도날드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바로 수술 시간이 정해졌다. 베드에 누운채로 남편과 손을 꼭 잡고 수술 잘 받고 올게 인사하고 수술실로 실려갔다. 하반신 마취를 위해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바늘이 척추 어느 지점에 찔러들어왔다. 서서히 감각이 무뎌지고 이내 다리가 거대한 풍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고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 몇시간 동안은 고개를 들면 안된다고 했다.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너무 추워서 이가 덜덜 떨리고 잠이 왔다. 이불을 덮어달라고 부탁해서 그 안에 가만히 누워 손끝으로 다리를 만져보았다. 다리에는 아직 느낌이 없었다. 한참을 누워있다 다시 베드째 입원실로 옮겨졌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몇시간이 지났고 서서히 마취가 풀려갔다. 딱딱한 병원 침대에 계속 똑바로 누워있으려니 몸이 뻐근했다. 좌우로만 자세를 조금씩 바꾸면서 누워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물을 몇모금 넘겼다. 잘 묶었으니 내려오면 안돼, 연말이 정산이.
- 환급이의 여행
환급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나는 갈 수 없었다. 연말이와 정산이가 뱃속에 있고 경부가 완전히 열렸다 닫힌걸 묶어놓은거니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쌤은 직접 가는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거라고 걱정했고, 환급이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남편이 혼자 환급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내가 수술받는 사이 남편은 환급이의 장례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고 왔다. 화장은 엄마의 주민등록지 기준 화장장과 인근 다른 지역의 화장장 중에서 가능한 날짜에 진행하게 되는데, 주민등록기준지의 화장장은 며칠을 기다려야했던 것 같다. 아기는 작은 상자에 담겨 부모에게 인계되는데, 부모가 직접 화장장까지 데리고 갈 수도 있고 장례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했다.
어제, 그제부터 남편이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건 처음 봤다. 환급이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혼자 한시간 넘는 거리의 화장장까지 울면서 운전해서 다녀올 남편을 생각하니 남편까지 사고나서 잘못될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대행해주는 분들이 조심히 잘 데려가준다고 하니 맡기자. 나중에 연말이 정산이까지 무사히 잘 낳고나면, 그때 같이 환급이 보러 가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받은 남편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잘 보내주고와 하고 인사하며 고위험산모병실에서 눈물을 삼켰다.
아기는 너무나 작아서 화장하면 한줌도 안되는 재만 남는다고 했다. 환급이는 조그마한 상자에 담겨졌고, 남편이 배냇저고리와 모자도 같이 넣어줬다고 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남편은 이번에도 엉엉 울었겠지. 대행해주는 분이 직접 환급이가 담긴 상자를 안고 화장장 가는 차를 타는 것까지 보고 남편은 병실로 돌아왔다. 잘 보내주고 왔어 하며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서로 등을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