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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빵떡 Aug 05. 2024

특별한 평범함_나의 임신, 출산 이야기

네번째.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 결정 못하겠어.


임신확인서를 받고 닷새쯤 후 예약했던 진료. 우리는 며칠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나이도 나이고, 나는 고혈압도 있다. 고위험산모의 기준에 몇개나 들어맞았다. 욕심부리다가 셋 다 잃게 되는건 아닐까? 하지만 더한 조건에서도 무사히 낳은 사람들도 있는데? 쌍둥이여도 괜찮아 하고 이식한 두개의 배아가 열심히 분열해서 셋의 아가로 찾아와줬을때, 그건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운명으로 와준건 아닐까? 어떤 아기를 선택이라는 건조한 단어로 생명을 빼앗아도 되는걸까? 이게 우리가 결정할 수 있기는 한 문제일까?


난임병원에서는 선택적 유산으로 해줄 수 있는 주수는 6~7주가 최대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줄테니 ㅇㅇ병원의 ㅇㅇㅇ교수님께 가보라고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 기록지 받는 방법을 담당 간호사쌤에게 듣는데 역시 내 얼굴이 흙빛이었나보다. 설명을 마친 간호사쌤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데 너무 고마웠다. '저 손 한번만 잡아주세요' 하고 서로 손을 감싸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괜찮다는 말이 새삼 고마웠다.



- 일단 가보자고.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대학병원으로 첫 진료를 보러갔다. 난임병원도 매번 예약환자로 넘실거리고 대기시간 1시간은 기본이었는데 대학병원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 복잡하지만 잘 정돈된 병원에서 영상제출, 기록지 제출, 초진 상담 등등 절차를 차근차근 마치고 초음파실에서 세 아가들을 확인했다. 모두 7주 4일, 7주 6일 크기로 비슷비슷하게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 보통 이런 경우에 단일융모막쌍태아를 선택적으로 유산하는것을 많이 권고하긴 하지만 현재 위치상 한 융모막을 혼자쓰고 있는 아기가 더 경부에 가까워서 선유를 하더라도 어려움이 있다고 하시면서 12주 정도까지 검사하고 14~18주에 선택적으로 유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셨다. 12주때 정밀초음파로 확인하고 기형아검사, 융모막검사까지 해보고 그때 결정하기로 시간을 벌어두었다. 선택적 유산을 할 경우 5% 전체유산의 가능성이 있고 10%는 자연유산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일단 종합비타민제와 일반 임산부의 2배 엽산을 챙겨먹기로 하고 세 태아와 함께 집으로 왔다. 그래. 일단 가보는거야.

집 하나, 아기 셋


- 질정, 배주사 졸업. 그리고 재미난 제안


이제 임신 9주에 접어들었고, 지긋지긋한 질정과 배주사도 드디어 끝났다. 이번 주차의 초음파 검사에서도 세 아기는 무사히, 그리고 비슷하게 자라고 있었다. 9주 2일, 4일, 5일 그리고 맥박도 166~171로 정상범주였다. 12주차 정밀 초음파 일정을 잡으면서 교수님은 재밌는(?) 제안을 하셨다. 다음달에 초음파학회가 있는데, 학회에서 초음파 시연을 해줄 수 있겠냐는 거였다. 회사 다니면서 학회 관련 비용처리만 해봤지 학회를 직접 가본적은 없었는데 흥미가 확 생겼다. 아가들이 무사히 잘 있나 매주 보고싶은게 초음파인데, 학회에서 초음파를 또 볼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가서 배만 보여주면 되는데 못할게 어딨어 하는 생각에 제안 하시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면서 소정의 사례비도 있다고 하셨다. 오와 대박이네. 좋아요 좋아요 시연 할래요 교수님!


- 다이내믹했던 입덧


5주차쯤 시작됐던 각종 증상의 입덧은 아직도 한창이었다. 처음에 엄청 심한 편두통이 오고나서 멀미하듯 어지럽더니 그 후 입덧이라고 할만한 증상들이 시작됐다. 입에서 계속 쓴맛이 나고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상큼하고 단것을 먹으면 좀 나을까싶은 기분에 과일만 당기고 입덧에 유명한 레몬사탕도 샀는데 먹을때 뿐이고 다 녹으면 또 입이 까끌했다. 그러더니 몇주후엔 신맛도 먹기 싫어졌다. 한번은 아침에 출근하려고 달달한 시리얼을 한그릇 말아먹고 양치를 하는데 양치하다가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기가 셋이라 입맛도 세가지인가? 정말 하루 종일 앉아서 배멀미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양치빼고는 먹다 토하는건 아니니 먹을 수 있는걸 열심히 먹자. 그래도 입에 당기는게 라면이 아니라 과일이랑 샐러드라 다행이지 뭐. 다음 외래때 입덧약 처방을 받자.



- 학회에서 삼둥이를 공개!


시연하기로 한 학회날, 비가 추적추적 왔다. 우리 회사는 코엑스 옆에 있는데 학회장이 코엑스였다. 비도 오는데 고생했겠다며 교수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걱정해주었지만 신나게 연차를 낸 나는 출근하는 루틴으로 몸도 가볍게 샤샥, 마음은 훨씬 더 가볍게 학회장에 도착했다.


시연자는 나 말고도 다른 쌍둥이 산모가 있었다. 당일 초음파를 봐서 발표 주제와 맞는 컨디션의 산모가 시연자가 될거라고 했다. 본 시연에 앞서서 순서대로 초음파로 아가들을 봤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산모가 시연자로 나서게 되었다가 이후 다양한 케이스를 더 보여주기로 했던건지 둘 다 시연하기로 되었다.


시연자의 얼굴은 당연히 공개되지 않고, 무대 뒷쪽에 마련된 초음파 기계로 복부 초음파를 찍고 그 화면만 학회장으로 송출되는 방식이고, 발표자가 직접 보면서 설명을 곁들인다. 이런 케이스에서는 어떻게 어떻게 확인한다 하는 설명이었던 것 같은데 다 알아듣긴 힘들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나의 역할이 끝나고 교수님과 인사하면서 다시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원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라서 한번도 눈 아래 얼굴을 서로 본적이 없었는데 병원 밖에서 마스크를 벗고 만나니 어쩐지 교수님과 라포가 형성된 것 같은 나만의 느낌은 기분탓 만은 아니었겠지?



- 약속했던 12주, 정밀초음파


아기 하나하나 자세하게 보고, 단태아라면 엄빠 닮은 입체초음파 사진을 받기도 하는 정밀 초음파는 정밀이라는 이름에 맞게 검사 시간이 꽤 걸린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40분~1시간은 걸린 것 같다. 뱃살 때문에 안그래도 뱃속이 좁을 것 같은데 셋이서 같이 쓰고 있으니 오죽할까. 옹기종기 모여있는 삼둥이의 모습을 정밀하게 보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더 잘 보기 위해서 자세를 이쪽저쪽으로 바꾸기도 하면서 꼼꼼히 검사해줬고, 다행히 육안으로 보이는 큰 문제는 없었다. 매번 병원 가는날은 걱정이 가장 큰 날이기도 하고 안심도 가장 큰 날이 된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잘 있을까? 조그만 변화나 증상에도 걱정이 되고, 입덧이 힘들긴해도 입덧이 있으면 그래도 아기들이 잘 있다는 뜻일테니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간접적으로 아기들의 존재를 느끼는것으로 마음을 달래는데, 병원에서 초음파 화면으로 깜빡이는 심장 세개를 보고나면, 그리고 일정한 모양으로 그려지는 맥박의 파동을 보고나면, 비로소 안심이라는걸 하게된다. 그래봐야 집에 가는 발걸음에 다시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두운 초음파실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저곳 사이즈를 잴때마다 긴장하게된다. 측정이 모두 끝나고나서 특별한 말이 없으면 거의 괜찮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도 항상 물어본다. 다 괜찮은거죠? 그 때 듣는 괜찮다는 말이 정말 듣기 좋다.

혼돈의 입체 초음파



- 더 안심하고 싶어.


정밀초음파도 무사히 통과했고, 우리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세 아기를 모두 낳을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융모막검사, 양수검사가 있었다. 초음파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정도로만 보는거라 유전적인 질환이라든가 외관상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은 알 수 없다. 단태아인 경우에는 선별검사로서 피검사를 한 후 그 결과에서 어떤 질환 등 확률이 높다면 확진검사인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를 하는데, 우리는 모자이시즘 배아를 심었으니 뭐든 확실히 하고 싶어서 양수검사보다 더 이른 주수에 할 수 있는 융모막검사를 하기로 했다. 아기집이 두개이니 융모막 검사도 두군데를 찔러서 해야되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3백만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돈을 쓰더라도 더 안심하고 싶었다. 뭐 그러려고 열심히 회사 다니는거지.


검사일이 되어 초음파실. 거의 수술하는 느낌으로 베드에 누운채로 배에 갈색 소독약이 잔뜩 발라졌다.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아플거라고 듣긴했는데, 어느 정도일지 감이 잘 안왔다. 건강검진때 유방에 물혹이 있다고 해서 조직검사할때도 제법 굵은 바늘을 쿡 찔렀었는데 그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통증 척도는 평소에 늘 있는 편두통이 진통제를 먹는 기준인데,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았을때가 그보다 좀 더 아팠고, 끝판왕은 사랑니 뽑은자리에 염증이 생겨서 마취는 못하고 바늘로 꾹 찔러서 무언가를 빼냈을때였다. 그때는 정말 너무 아프고 몇시간동안 얼얼해서 너무 아프다고 엉엉 울었는데 그것보다 덜 아프면 그 정도 통증은 참을만 했다.


교수님이 자리를 잡고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했다. 아플거라고 한번 더 말씀하셔서 각오가 되어 그랬는지 생각보다 참을만했다. 융모막 채취도 잘 되었다고 검체를 보여주셨다. 휴우. 이제 좋은 결과만 나오면 된다.



- 태명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태명을 정해서 불러도 되겠지. 우리가 처음에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을때는 연말정산 환급금이 나올 즈음이었다. 겨우 공제항목을 내 앞으로 다 끌어다가 신고하고, 남편은 납부, 나는 환급이 나오긴 나왔는데 결정세액이 뜨악할 정도였다. 이 세금 낼 정도면 아기 낳아서 키워도 되겠다 농담처럼 얘기하면서, 그럼 쌍둥이 생기면 연말이 정산이로 해야되나? 근데 연말정산에서 환급이 되어야하는데? 그럼 셋을 낳아야하나? 연말이 정산이 환급이로? 했었는데 진짜 셋이 생기다니. 이래서 입방정을 떨면 안되는거야. 그래서 어쨌든 우리 삼둥이 태명은 연말이, 정산이, 환급이로 정했다. 참으로 재무팀에서 일하는 부부가 지은 태명답지 않은가?


그렇게 한 집에 같이 있는 일란성 쌍둥이는 연말이, 정산이, 그리고 다른 집에 혼자 있는 이란성 쌍둥이는 환급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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