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새로운 임신 생활의 시작
- 눕눕 생활.
퇴원하던 날 아침 초음파로 한번 더 경부와 아기들을 확인하고, 담당의 쌤에게 물어봤다.
“안정하라고 하셨는데, 안정의 정도는 어디까지예요?”
“화장실 말고는 누워계세요. 최대한 조심!”
일주일만에 도착한 집에는 뜯지못한 임부복 택배박스도 있었다. 이제 이거 입고 나갈 일이 외래 갈때밖에 없겠네. 이제 무사히 37주까지 누워만있자.
눕눕 생활을 위해서는 먹는 부분을 해결해야했는데, 아침에 출근하기전에 남편이 밥을 해놓고 가면 나는 냉장고에서 반찬만 꺼내서 차려먹고 싱크대에 넣어놓기만 하기로 했다.
환급이가 떠나면서 입덧도 가져갔는지, 퇴원 후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입덧약은 먹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자궁이 소화기관들을 눌러서 몇숟가락 먹고나면 금방 배가 부르고, 누우면 먹은게 역류했다. 조금씩 자주 먹는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자꾸 일어날 수는 없으니 두유 같은 음료를 잔뜩 사놓고 침대옆에 놨다가 간식으로 챙겨먹었다. 누워만 있는거, 그래도 할만하네.
- 회사.
유사산휴가로 회사에선 30일 휴가를 받았다. 쉬면서 책도 좀 보고 잘 먹고 몸 관리 하면서 보내자. 아직 18주밖에 되지 않았고 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30일 쉬고나서 재택근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출산을 대비해서 대체자를 뽑았는데, 내가 복귀하는 시점 쯤에 그 분이 근무를 시작하기로 해서 복귀하면 한두달정도 단축근무 하면서 바로 인수인계해야겠다 계획을 세우고 회사에도 이야기했다. 누워서 PC를 볼 수 있는 거치대도 알아보고, 갑자기 쉬게되어 회사 사물함에 그대로 두고 온 짐과 서류 몇가지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가끔 회사 사람들과 채팅, 통화를 하면서 기분도 전환하고 회사 소식도 들었다. 희한하게 마음을 추스르기에 회사 생각만큼 좋은게 없었다. 사실 환급이를 보내야했던 그날부터 매일, 수시로, 임신 후 있었던 모든 순간이 머릿속에서 되감기, 재생을 반복했다. 혹시 그때 그랬더라면 달랐을까? 하는, 결국 현재의 상황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을 공허한 후회지만 머릿속 되감기 버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 회사 노트북을 열고 쌓여있는 메일을 읽으면 감정의 스위치를 탁 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눈물이 나면 회사 메일, 회사 메신저를 열어봤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 먹고 자고 기다리는 매일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먹고, 자고, 멍때리며 퇴근하는 남편 기다리기. 샤워는 서서 해야하고 어차피 나갈일도 없으니 일주일에 한번만 씻자. 삶의 질 따위 뭐 중요한가. 평생 임신할 것도 아닌데 37주까지 다섯달만 이렇게 지내자. 할 수 있어.
결혼 전에는 혼자 여행다니는걸 엄청 좋아해서, 결혼하면 그건 좀 불편하겠네 했었는데 막상 결혼하고나니 점점 같이 놀러가는게 좋아졌다. 그러다 이번 일을 겪고나서는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고맙게도 점심시간, 잠깐 쉬는시간마다 회사에서 전화해주고 밥 먹었냐고 물어봐줘서 적적한 눕눕생활이 그리 우울하진 않았다. 잘 견뎌봐야지.
- 약, 또 약
시험관하면서 배주사는 그래도 참을만했다. 한번에 잘 찌르기만 하면 따끔 한번만 참으면 되니까. 근데 질정은 좀 괴로웠다. 약 자체의 냄새도 너무 별로고, 기름 성분이라 묻어나는 것도.. 암튼 되게 별로다. 그래서 질정 졸업할때 너무 시원했는데, 이번에 수술하고 퇴원하면서 다시 질정처방을 받았다. 프로게스테론 보충으로 유산을 방지하는 목적이겠지? 힘들어도 열심히 하라는대로 해야지. 무사히 견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