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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24. 2021

힘드러워도 계속 부탁해보렵니다

남편과 함께 사는 법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는다. 휴직 전부터 희망했던 그림책 관련 이론 수업이다. 코로나 덕분에 방구석 1열에 앉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이지만 매주 수업을 듣기 전까지 거쳐야 할 수많은 단계와 해결할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먹이고 챙겨 학교를 보내고 하루치 학습을 시키고 저녁 준비도 최소한 6시까지는 완료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들어오지 않으려는 아이를 잘 달래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데리고 와 씻겨야 하고, 오전에 학교 가고 없을 때 손에 모터 달고 끓여놓은 국과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려놓고서야 마음 편히 수업에 출석할 수 있다.


거기서 끝나기만 해도 고마울 텐데 수업 중에도 수시로 뭔가가 필요하면 아이와 남편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묻는다. 같이 사는 집이고 함께 쓰는 물건인데 나만 알고 그들은 모르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또 왜 나는 그걸 알고 있는 건지... 아마 오프라인 수업에 참석 중인 상태였다면 카톡 메시지가 연이어 울리지 않았을까.


동료 수강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이 때문에 자리를 비우거나 아예 아이를 안고 수업을 듣는 분도 있다. 남편이 아이에게 동영상을 틀어주어서 조용한 것이긴 하지만 나 정도면 나은 상황인 것 같다. 하지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기혼여성의 개인 시간에는 왜 이렇게 많은 전제 및 부수조건들이 따라붙게 되는 걸까?


돌이켜보면 지난 9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집을 비우면서 식사 준비를 해 놓거나, 아이와 관련된 각종 물건들을 정리해서 혼자 남을 내가 편하게 해 준 적은 없었다. 남편보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대학원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남편이 해외파견 중 비자 갱신으로 장기 휴가를 다니러 온 때도 출근이든 약속이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나간 적은 손에 꼽혔던 것과 달리, 그는 늘 그냥 대문을 나서곤 했다.


비록 상당히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자란 그는 의외로 평소 집안일을 잘 '돕는' 편이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면 그는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 및 음식물 쓰레기를 비운다. 주말이면 내가 빨아놓은 와이셔츠를 직접 다림질하고, 샤워 후 욕실 청소를 한다. 청소기도 자주 돌린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사 일은 '돕는 일'일뿐, 자신의 책임은 결코 아니라는 무의식은 생활 전반 곳곳에서 드러난다.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오래된 양념장이나 음식이 눈에 띄면 자신이 비우지 않고 '비우라'라고 지시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어딘가에 갈 때 우리 세명의 짐을 싸는 일과 푸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다. 할 일이 많아 좀 맡겨 놓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OO, 어디 있어?"라고 묻기 때문에 그가 하는 건지 내가 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


가끔 마트 장을 보고 오거나, 2-3주에 한번 가는 시가에서 얻어온 반찬도 가져온 채로 냉장고 앞에 그대로 놓아둔다. 정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가져온 그대로 냉장고 안에 넣어놓기만 하면 되는데 '내 일은 딱 여기까지'라고 선언하듯 냉장고 바로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 본 물건이나 반찬을 보면 그저 웃프다.


얼마 전 남편 절친의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부터 집을 비워야 해서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아이의 밀린 학습을 시키고 있는 동안 그는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참 돌아가던 세탁기가 경쾌한 완료음을 울렸을 때 그는 유튜브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것 좀 널어줄래?'라고 말하려다 아이에게 잠시 혼자 문제를 풀게 하고 다 된 빨래를 걷은 후 새 빨래를 꺼내 널었다.


다시 아이에게로 가 공부가 끝난 뒤 그는 거실로 나왔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 옷을 입으러 방에 가 보니 걷은 빨래는 바닥에 널브러진 그대로였다. 그 빨래는 옷 갈아입으면서 결국 내가 부랴부랴 갰다. 거기까지는 참을만했다. 곧이어 '내 수영복은 챙겼어?'는 말이 거실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물놀이를 그냥 때려치울까 하다가 가정의 평화와 아이의 행복한 하루를 위해 꾹 참고 다녀왔다.


그가 도맡은 욕실 청소에서도 세면대와 바닥은 열심히 닦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늘 변기는 청소 항목에서 빠진다. 쓰레기를 비우지만 쓰레기가 있던 자리에 남는 부산물들은 늘 '이리 와서 치우라'는 말로 슬쩍 내게 바통이 넘어온다. 남편이 해외파견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이런 일들로 신경전을 벌이고는 했는데 후유증은 큰 반면, 개선 효과는 미미해서 이제 몸에 사리가 생기는 걸 느끼면서 재빨리 해치운다. 아량이 넓어져서는 아니다.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다 보니 싸운 후 후유증 회복까지 들어가는 에너지가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감사해야 한다며 욕심이 많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생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그의 뿌리 깊은 무의식을 의식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노력을 평생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늘 타인의 노동력에 빚지는 삶에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4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의 무심함에 상처를 받는 일은 나를 지치고 슬프게 한다.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운 뒤면 남은 평생을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힘이 빠지다가도 결국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나도 유들유들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얼마 전,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의 이웃 한 분이 단톡방에서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무릎을 탁 쳤다. '과연 전생에 나는 무엇을 팔아먹었고 그는 무엇을 구했기에 돈도 벌고 집안 일도 다 하는 이런 상황이 납득할만한 그와 나의 전생 소설을 쓰는데 진지하다.'는 말씀에 웃다 보니 죽자고 싸우며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보다 부부관계를 희화화하면서 유머로 받아치고 어린 아들 꼬시듯 살살 달래 가며 원하는 걸 얻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각 가정의 상황, 배우자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연령대가 비슷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우리 부부와 대부분 비슷하게 사는 것 같다. 여자는 결혼 전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살았더라도 결혼 후 서투르나마 가족을 챙기는 역할에 익숙해져 가는 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전히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집안일에 서투르거나 무관심해도 되는 경우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우리 남편 정도면 꽤 양호한 편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면서 어떤 서글픔을 동반했다.


아직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이 '누가 해 주는' 크고 작은 일에 힘입어 '중요한 학교'에 가고, '중요한 회사'에 가서 '중요한 일'을 한다. 그 누가 해 주는 일은 주로 엄마, 아내, 여직원이 도맡는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의 권위가 신장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수많은 지원과 보살핌,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숨은 활동은 여전히 여성의 희생으로 해결된다.


남녀가 평등하다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사회와 가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은 교과서와 온도차가 있다. 가사와 육아에서 직장에서 맡는 보직과 승진 심사에서 그런 미묘한 온도차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겨루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그 경우는 또 다른 여자의 희생이 답보되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자가 가정을 벗어나 개인적인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더 많은 시간 바쁘게 움직이게 되고 무수히 많은 전제 및 부수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어제는 평소보다 1시간 반 정도 늦게 수업이 끝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미 잠든 남편과 아이 곁에 가서 조용히 몸을 뉘었다. 그 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 태풍은 엄청난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몸을 일으켜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베란다와 다용도실, 실외기실의 환기창은 모두 열린 채였다. 혹시나 기대했다 역시나 하면서 비바람이 들치지 않도록 창을 단단히 잠갔다.


남편과 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 모서리 끝에 지친 몸을 모로 누이고 잠을 청했다. 달콤한 잠의 세계로 넘어가려는 찰나, 번쩍번쩍 눈 위로 푸른 번개가 감은 눈 위에서 춤을 추자 뭔가가 또 번뜩 생각났다. 저녁에 밥을 지어먹고 남은 밥을 보관용기에 덜어 식힌다고 둔 채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대로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보니 예상대로 밥은 그대로 고이 놓여 있었다. 그가 수시로 물 마시러 들락거리는 바로 그 아일랜드 식탁 위에서 그의 물컵과 밥과 나란히.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귀찮았다. 무념무상 뚜껑을 찾아 밀폐용기를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뚜껑 닫는 소리만이 내 마음을 안다는 듯 퉁명하게 탁! 탁!! 고요한 한밤중의 공기를 갈랐다. 침실로 돌아가 벽을 보고 돌아누운 남편의 너른 등을 보면서 그를 원망하는 대신 방식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알아서 해 주는 일은 이번 생애에서는 어려울 것 같지만 웃으면서 '도와 달라고' 거듭 말해 보리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천둥번개 소리가 내일 아침에는 멎고 날이 밝을 것을 기대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더는 깨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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