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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09. 2021

매일 친자확인하며 몸에 사리쌓는 중

비교와 불안으로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믿어보려는 마음

“얼른 이것마저 끝내자!”

벌써 열 번은 말했는데 아이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펼쳐 놓은 수학문제집의 문제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에 쥔 연필로 뾰족하고 높은 산봉우리 같은 것을 페이지 가득 채워 그리며 물었다.     


“엄마, 이거 뭘까?”

“도대체 문제는 언제 풀거니?”

“아, 맞다. 할게. 잠깐만.”     


대답은 잘해놓고 아이는 다시 디테일 묘사에 빠져들었다. 그런 녀석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문제집이 스케치북이야? 그리고 싶으면 문제 다 풀고 스케치북에 그리면 되잖아! 공부할 땐 공부에 집중해야지!”

“알았어. 아까 내가 잠깐만 했는데 그걸 못 기다려 줘.”   

  

거의 매일 오후, 우리 모자의 반복되는 대화다. 수학 문제집만 펼치면 아이는 조건반사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쩌다 좀 집중하나 싶으면 문제를 읽다가 앞장을 팔랑팔랑 넘겨 앞선 문제에 나온 같은 얼굴의 그림, 이름을 찾아내고 이야기를 엮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정작 문제에 주어진 조건을 놓치고 잘못 풀기 일쑤다.     


좋게 봐서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모르겠지만 상황이 이러니 한 바닥에 한 문제 또는 두 문제의 문제집을 푸는데 1시간 넘게 걸리는 일이 허다하다. 기다렸다 달래기도 하고 다그치다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꾹꾹 눌러 담았던 답답함이 폭발해 나는 욱하고 아이는 시무룩해 하며 외친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싫어! 엄마도 미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 마음은 어디로 가고

우리 아이는 50명이 조금 안 되는 조리원의 신생아들 중 두 번째로 몸무게가 작은 아이였다.  너무 말라서인지 심장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해서 의사의 권유로 대학병원에 심장 이상 검사를 받기도 했다. 꽉 잡으면 부서질 것 것만 같이 작고 여린 아이를 안아들 때마다 아픈데 없이 그저 건강하게만 잘 자라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자라나는 동안 같은 마음이었다. 다른 아이들 모두 특별한 것 한두 가지는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시종일관 평범했다. ‘우리 아이는 혼자 글자를 깨쳤어.’ ‘아이 혼자 책을 읽어요.’ 이런 말에 조바심이 날 때도 있었고 엄마가 신경을 덜 써서 그럴까, 뭔가 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첫 바람처럼 별 일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에게 늘 고마웠다. 모든 게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도 자신만의 것을 찾아 잘 해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조급함이 찾아올 때면 마음을 달래며 타고난 결대로 키우려 했고 그렇게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현실에 흔들리는 엄마 마음

학교에 들어가자 자연스레 학습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지인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대단한 학군지에 살지 않는데도 가까운 친구들 중에 영어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는 우리 아이가 유일하다. 이미 2학년까지 수학 선행을 나간 친구도 있고, 사고력 수학과 논술토론 학원을 다니며 숙제하느라 잘 못 노는 지인의 아이도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가입한 아파트 주민 간의 학습 정보 공유 단톡방에서도 대단한 아이들이 넘쳐난다.     


사교육의 일상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쟁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차별화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맞벌이 등 보육의 문제로 아이들은 정규 수업 후 방과 후 수업을 마치면, 여기저기 학원으로 움직이며 꽉 찬 오흐의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며 보낸다.     

 

갈수록 학벌이 세습화 및 계급화 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분위기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며 다르게 키울 자신도 없는지라, 고민은 늘 진행형이다. 학습을 등한시할 수는 없지만 아직 1학년이고 휴직 중인 지금이나마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매일 놀이터에서 두어 시간 뛰어놀게 하는 대신, 최소한의 엄마표 학습으로 학교 진도에 맞춰 국어와 수학 복습 정도로 일과를 채워왔다.    

 

문제는 두 과목, 문제집 한 장씩 진도를 나가는데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이 허다하다. 일단 책상 앞에 앉히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유는 어찌나 많은지... 평소 참을성에는 꽤 자신이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대하며 내 인성과 인내심의 바닥을 자주 본다. 아이의 생활습관이며 태도를 잡는 일은 언제쯤 수월해질까 정말 궁금하다. 겨우 책상에 앉아 첫 문제를 읽는데 성공해도, 이내 아이는 문제집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한다. 

     

혼도 내 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방식을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애초 내가 생각한 엄마표 학습의 목적은 학습 성과 자체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반복하다보면 얻게 되는 보람의 맛을 자연스레 익히길 바라서였다. 앞으로 아이는 ‘싫지만 해야만 하는 온갖 일들’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때로 성취감을 맛보며 울고 웃게 될 것이다. 학습 자체야 학원이 훨씬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빠른 진도와 양을 소화하며 성과에 치중하다보면 얻기 어려운 그 감각을 더디더라도 배워나가며 앞으로 닥쳐올 공부의 부담에서 든든한 힘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다.      

Elizabathe Wales@Unsplash


이상과 다른 현실매일 매일 친자 확인 하는 중

하지만 내가 꿈이 너무 컸나보다. 실제 현실은 상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남의 말만 듣고 내 아이라는 최대 변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떤 아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과가 아니었다. 하나를 가르쳐도 모르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딴 짓에는 왜 그리도 진심인지? 열심히 설명했는데 처음 듣는 것 같은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딴 짓을 하다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설명해야 할 상황이 되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차오르는 화를 참느라 진이 빠졌다. 할수록 내 안에서도 학습에 대한 욕심과 아이에 대한 우려가 커져만 갔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다른 아이들은 다 잘한다는데... 자기 자식은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 이래서 다들 아웃소싱을 하는 거구나...’ 

‘진짜 내 자식 맞구나!’ 공부를 가르쳐 보면 친자확인이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매일 사리 쌓는 느낌으로 아이를 공부 책상에 앉히고 기다리고 화내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다 그린 그림 곳곳에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경계선을 넣고 있는 아이를 보다 겨우 가라앉힌 화가 임계점을 넘어 다시 끓어 넘치려는 순간, 죽비로 등짝 맞듯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나도 그랬다.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문제를 읽다보면 생각이 자꾸만 다른 쪽으로 퍼져나갔다. 문제 풀려고 펼친 연습장에 만화는 또 얼마나 많이 그렸던가. 주어진 조건은 까맣게 잊고 내 멋대로 상상에 가까운 추측을 하는 바람에 답도 자주 틀렸고. 공부만 하려고 자리를 잡으면 왜 그런지 하고 싶은 일들이 불현 듯 떠오르고, 불쑥 읽고 싶은 책들에 손이 가던 나. 세상 산만하고 가만 앉아 있지 못해서 들락거리다 엄마에게 얼마나 핀잔을 들었던가?   

  

너도 나중에 네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그 시절 혼내 던 엄마에게 대들 때면 돌아오던 고함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 없구나.’

“명징한 사실을 깨닫고 입 밖으로 나오려던 고함소리를 겨우 도로 삼키고 가만히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겨우 다시 문제로 시선을 돌려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림으로 정신없는 문제집 귀퉁이에 그래도 또박또박 답을 써 넣는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오래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 특출한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아이였다. 잘 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한 아이였던 나였지만 어느 사이 잘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기고 친구들로부터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평범하지만 내 힘으로 삶을 부양하고 더 좋은 삶을 고민하며 가끔 행복하고 눈물지으며 하루하루 잘 살아 나가고 있기도 하다.    


잠시 생각에 빠진 틈에 또 아이가 딴 짓을 할 기미가 보였다. 잽싸게 다음 문제의 지문을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 버린 한숨과 표정에 아이가 말한다.

“이 무한 여덟 살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엄마가 그러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입만 살아가지고는.’ 바로 튀어나온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그랬어? 미안해. 다시 읽어보자.”

라고 말을 건네며 다시 차근차근 문제를 읽으며 설명해 주었다. 답을 고른 후 아이는 답 칸의 작은 괄호를 무시하고 거대한 숫자를 쓴 뒤 타이포그래피 하듯 입체감을 줘서 꾸미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 말대로 고작 여덟 살이 아닌가. 이제 시작하는 공부고 아이의 표현대로 아이의 앞날은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습관, 힘들어도 견뎌내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자꾸만 남들과 아이를 비교하며 한없이 흔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잘하던 못하던 아이 고유의 특성과 속도를 인정하고 지켜봐주며 부족하더라도 ‘너는 못해.’로 낙인찍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는, 진짜 엄마만 할 수 있는 엄마표 학습을 내가 욕심과 두려움으로 망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놀이터나 지인들의 단톡방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공부량을 소화해 내는 ‘엄친아’와 ‘엄친딸’의 대단한 능력에 내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도매 값으로 매기며 함부로 비교하고 지레짐작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딴 짓에 혼나고 입이 삐죽 나와서도 늘 진도는 끝을 내는 아이의 느린 힘을 믿기로 했다. 한숨을 거두고 아이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다음 지문을 둘이서 번갈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어쩐지 연필을 쥔 아이의 손에도 기분 좋은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오마이뉴스에 글벗들과 연재중인 낀40대 기사의 원문입니다.

http://omn.kr/1vrw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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