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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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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09. 2020

헛헛함을 채워주었던 것들

마음의 허기를 채운 음식과 글쓰기

남편이 상해로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날, 부서 워크숍의 연회장 안에서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의 중장기 발전계획의 브리핑을 듣다가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두해 전 보직을 했었고 그가 주관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어 업무 관계가 돈독한 상급자로부터였다.

"지금 메일 한번 확인해 봐. 한창 할 일이 많은데 이게 무슨 일이야?"


연회장 가장 뒷자리에 마련된 비상업무용 노트북 앞에 자리 잡고 사내 메일 시스템에 접속했다. 전보발령 발표가 나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도 보였다. 뜬금없는 부서명이 내 이름 앞쪽에 쓰여 있었다. 흔히 좌천이라고 떠드는 부서였다. 평직원에게 좌천이란 게 있을 수도 없지만 마음이 복잡해졌다. 순간 발표자의 졸린 목소리만 나지막이 울려 퍼지던 연회장이 시끌시끌해진 느낌이 들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고 갔다.


본의 아니게 워크숍의 뒤풀이는 송별회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다. 주말이 지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실 일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 일지 옥에서 꺼내 줬으면 수없이 바랬다. 그런데도 웃기는커녕 지난 수년간 끌고 왔던 많은 일들을 어떻게 정리해 후임에게 인수인계할지 막막하면서도 밀려오는 일들을 놓지 못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남편도 없는데 연일 야근이 이어지는 데다 아이를 주말까지 엄마에게 맡겨두고 출근을 할 수는 없어서 회사 컴퓨터에 원격을 걸어두고 아이가 잠들면 인수인계 작업을 하고는 했다.


 부서에서는 언제 오는지 궁금해하는데 하던 일이 정리가  되어 마음만 바쁜  달이 흘렀다.  사이 두세  새로운 부서의 전임자를 만나 업무를 배웠다. 그녀는 마치 내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말했다. 종종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평생 그래 왔듯 그냥 받아주었다. 정식으로  부서로 출근을 하고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그렇게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지난 부서에서도 발령 직후 맡았던 업무에는 서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는 메인 업무가 있었다면 현재 부서에서는 서무가 메인이었다. 모든 것이 확실한 자기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전 부서와 비교해 이곳에서는 애매한 것은 모두 내 차지였다. 처음에는 너무 한가한 것 같아서 이렇게 일하고 월급을 받아도 될지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전 부서에서 무보수로 야근이며 주말근무를 밥 먹듯 해 왔던 것이 비정상이었는데.


여유가 생긴 생활에 서서히 적응되면서 남편의 부재와 맞물려 일 부담도 적은 부서에서 시내 출퇴근이 가능한 부서이동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부 쪽에서 일할 때는 늘 출퇴근 자체가 부담이었는데 시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충분하니 어린아이 키우는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 부서 막내 직원이 따로 있음에도 서무라는 지원업무를 달고 있는 상황이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매일 겪는 자존심 구기는 일에도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인정에 목마른 아이가 있었나 보다. 종일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일다운 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헛헛했다. 바빠도 어떤 일을 어떻게 한다는 실감과 그에 따른 '일 잘한다.'는 평가가 있던 지난날에 비해 하루는 부산한데 무슨 일을 얼마만큼 하는지 스스로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서도 일과 나를 동일시하던 당시 좌절감과 분노로 매일 속을 끓였다.


일이 적다는 느낌에 대한 죄책감,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이 기어코 일을 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자꾸 내 일이 됐다. 당시 부서의 유일한 여직원이었던 막내가 모든 전화를 다 땡겨받고 있기에 부당하다 생각했지만 표현할 자신은 없었다. 그녀를 도우다 어느새 혼자 전화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설거지도 그렇게 내 차지가 됐다. 전화를 함께 받는 순간, 그녀는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그 일을 그만뒀다.


입사 선배지만 직급은 동료인 남자 직원 하나는 은근슬쩍 상사 노릇을 했다. 자기 일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것에 몇 번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나니 나는 지사에서 어린 무기계약 여직원(막내)을 함부로 대하고 자기 일만 하려 하는 본부에서 온 이기적인 싸가지가 되어 있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자기 전화도 받지 않던 그가 직급과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여직원의 입장에서 막내의 전화와 설거지를 분담하다 결국 내 일로 만든 나를 공격하는 것이 억울했다. 계약직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공채 출신으로 바로 입사한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갑이라고 여기는 그 구태의연한 이분법이 우스웠다. 하지만 그들만의 네트워크는 무서웠다. 하지 않은 일도 다 내가 한 일이 됐다. 20년 가까이 이동 없이 한자리에 고여있던 이들에게는 모처럼의 신나는 험담 거리였다. 그는 그런 일들을 인사권을 가진 주요 보직자들에게도 전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아파서 불참한 연말 전체 직원모임에서 본부의 친한 직원이 옆자리에서 지사 직원들의 대화를 듣고 놀라 연락을 주거나 예전 부서장이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사느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그 사람의 험담은 오랫동안 악의적으로 계속됐다. 버텼다. 예전처럼 일 자체가 힘든 일은 거의 없었지만 관계 갈등은 만만찮았다. 몇몇 부서를 거치며 나이 많은 여직원의 갑질과 별난 상사의 유난스러움, 오래된 계약직 직원의 자격지심에 따른 견제를 모두 겪은 내게 닥친 새로운 고난이었다.




퇴근 후, 집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막 말 같은 말들을 내뱉기 시작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내 아기.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눈물이 날 만큼 한숨이 나올 만큼 애틋했다. 하지만 낮동안 채워지지 않은 관계나 만족의 욕구를 그대로 집으로 안고 가 몇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하루가, 자신이 너무 허망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울고도 싶었고 그들에게 욕을 해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어딜  수도 없었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늦은 시간 싱크대 하부장을 뒤져 라면을 꺼내 끓이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과자와 맥주를 사다 마셨다. 속이라도 채워야   같았다. 매일  달래지지 않는 헛헛함을 채우고 아침이면 후회하며 깨어났다.


Photo by Markus Winkler@unsplash


출산  바깥출입이 안될  알게   블로그와 홈페이지로 좋아하는  구경을 하기도 했다. 필요하지 않은 니트 상의나 슬랙스를 사들였다. 예전과 달리 칼퇴가 가능한 데다 시외 출근에서 시내 지하철로 출퇴근 방식과 거리가 바뀐 덕분에 집에 도착하면 6시가 안될 때도 있었다. 이미 넘치는 옷장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근처 SPA 브랜드의 매장을 기웃거리며 시즌 패션을 확인하고 때로는 충동구매를 했다. 사놓고 입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그대로 반품하기 일쑤였다. 어지러운 마음이 도무지  잡히면 괜히  근처 식당에 들러 뜨끈뜨끈한 국물 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었다.


Photo by Becca Machaffie@unsplash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유일하게 어루만져주는 기적 같은 존재였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면 자꾸만 헛헛해서 무엇으로도 채우고 싶었다. 물건을 사고 배를 채우는 일이 줄곧 나를 붙들고 있는 헛헛함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더는 견딜 수 없어졌을 때 망설임 끝에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써 내려간 한 달 간의 이야기는 그 답답한 심정들이 날 것으로 들어가 있어 가끔 고치려고 열어보면 읽기가 버겁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이었다. 쓰고 나니 조금은 후련해졌다. 달라진  없었지만 작지만 분명한 무언가가 가슴속  깊이 싹을 틔웠다.    이틀님의 '매일 글쓰기' 모임 공지를 보았고 새해를 맞아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글쓰기를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쏟아내고 고생했구나 힘들었겠구나 인정받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팀에 합류하여 여태까지 주말 제외하고 매일 쓰고 산다. 조금  일찍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후회도 들지만 그게 나의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여전히 그들과 함께다. 악의적인 험담을 하던 그 남자 직원은 큰 사건을 겪은 뒤 조금 누그러졌다. 나보다 더 긴 세월 괴롭힘을 당한 후배 직원(그 친구도 나처럼 계약직 단계를 밟지 않은 공채 출신 정규직이다)이 견디다 못해 인사이동 신청을 해 본부로 발령이 나면서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그도 막내도 그리고 험담을 확대하고 나르기 바쁜 지사의 다른 직원들도 무엇보다 내 업무도 여전히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한 가지가 달라졌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때, 예전처럼 무조건 참지 않고 표현도 행동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부당한 일들은 반복해서 일어나고 내 맘 같지 않은 직장 내 관계도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나를 믿어주지만 일 중독에 막말도 서슴지 않는 부서장도 합세했다. 막내는 나이 많은 여직원의 눈치를 보지만 내게는 적당히 버티거나 때로는 무시할 때도 많다.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트린 직원도 여전하다. 남들이 하기 싫어 외면하는 일들을 자의든 타의든 결국 도맡게 된다.


자기 일을 하면서도 유난스레 티를 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이지만 안다. 결국 시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것임을. 그 힘을 믿고 과정에서 다치지 않도록 하루의 힘을 내며 나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나를 쏟아낸다. 그러나 예전처럼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알아줘.'라는 마음 대신 그런 나를 들여다본다. 왜 그토록 누군가의 이해와 인정을 목말라했는지 조금씩 찾아들어간다. 아직은 석연치 않은 지점들이 있지만 그렇기에 계속 쓴다.


쓰면서 바란다. 이 과정의 끝에는 자유로워져 있기를. 완벽한 이해와 해결이 없더라도 이 시간이 나로부터의 자유를, 그리하여 오로지 자아로만 만들어진 허물을 벗어던진 눈과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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