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만나는 삶: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는 환상의 치유력
금요일입니다.
몇 주 사이 시간이 흐르고 계절은 서서히 바뀌어
동쪽 하늘 저편에 달도 없이 샛별만 떠 있는데
확실히 해가 짧아졌어요.
피부에 닿는 공기도 얼마 전과 달리 서늘합니다.
여름이 가는데 이제야 여름의 책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지네요.
이번 여름, 저를 사로잡았던 두 책이 있어요.
하나는 오랜만에 다시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었고
나머지는 사라 스트리츠베리 글,
사라 룬드베리 그림의
<여름의 잠수>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그림책이기도 하죠.
어느 날 우리 아빠라는 사람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세상에서 아빠를 도려낸 것 같이
구멍이 나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이는 아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엄마와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소이는 아빠를 보며 생각해요.
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지 않을까?
왜 아빠는 살고 싶지 않을까?
내가 세상에 있는데.
어느 날 아빠는 면회를 거부합니다.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소이는
계속 아빠를 보러 가지요.
아빠를 찾고 기다리는 동안
체스를 두고 있던 자리에
불쑥 다가와 수영을 하자던 사비나를 만나요.
그녀는 소이와 함께 기다려주겠다고 하죠.
지구본을 돌리며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를 헤엄칠 거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병원의 잔디밭에서 둘은 수영 연습을 합니다.
함께 누워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기도 해요.
그들이 함께 하는 여름의 이야기,
소이의 아빠가 다시 돌아올지는
직접 책으로 확인해 주세요.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소이만 했던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우리 아빠는 소이 아빠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고 테니스를 칠 때
너무나도 반짝이고 멋진 사람이었지만
깊은 마음의 숙제를 가지고 있었고
가족과 함께이기보다는
늘 혼자 또는 친구와 떠날 때가 많았습니다.
명절과 국경일 연휴,
아빠는 몸의 반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어딘가의 산으로 떠나버렸고
테니스 가방을 메고 아침 일찍 나가
우리가 잠이 들고서야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엄마는 어린이날이면 아빠도 없이
우리 손을 잡고 집 근처 공원으로 가
우유와 동그란 단팥빵을 하나씩 건넸어요.
어린 시절의 수많은 풍경 속에
아빠는 소이의 아빠처럼 동그란 구멍을 낸 채
대부분 부재중이었지요.
월급날이면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빵 봉지를
한가득 손에 들고 오면서도
우리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바깥만을 맴돌며
자신의 날개를 찾는 아빠를 이해하기 어려워
소이처럼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는 했지요.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던
엄마가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조숙한 편이었던 제게는
큰 상처와 두려움으로 남았습니다.
어른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삶의 복잡 미묘함, 슬픔,
어긋남과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며 이해하게 되기까지
소이와 같은 시간을 건너왔네요.
이 책을 펼쳐보며 저에게도 사비나가 곁에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푸른 눈을 하고 파란 구슬 목걸이를 두르고
같은 색 샤워가운을 걸친 그녀는
늘 소이의 왼쪽에 있어요.
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갈 때 입었던
빨강 옷이 주는 느낌과
대조적으로 여겨지는 빨간 수영복을 나란히 입은
마치 모녀 같고 쌍둥이 같기도 한 두 사람.
소이의 강한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 같은 그 여름,
사비나는 환상의 세계로 소이를 이끌어
외로움과 슬픔을 치유합니다.
더불어 기다릴 수 있게 해 줍니다.
깊은 슬픔에 빠진 아빠를
소이는 자신만의 세상에 깊이 잠수하며
이해해 보려고 하지요.
사비나와 함께 세상을 몇 바퀴나 돌면서요.
그러면서 아빠에게 닥친 일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그럴 수도 있는 일임을 알게 되지요.
오랜 시절 아빠의 부재를 자주 겪었던 한 소녀도
현실이 힘겨워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약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어른의 삶을 지켜보며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한 명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건 그런 시간 덕분이었구나...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거친 현실의 수면 아래로
아이다운 방식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돌아온 뒤,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되는
성장의 과정을 탁월하게 보여주면서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어른들에게도
지나온 시절에 대한 위안과
그것을 건너는 열쇠를 살짝 쥐어주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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