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삶: 적당한 거리(전소영)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아침 먹으면서 시어머니께 영상통화를 합니다. 아이가 한자리에 가만 앉아 있을 때가 통화 집중도가 가장 높기에 공통 화제가 별로 없는 시어머니가 덜 서운하시도록 전략적으로 선택한 시간이죠.
돌아오는 일요일은 시아버지의 4주기 제사가 있는 날입니다. 추석 연휴를 코 앞에 두고 연차를 쓰기가 쉽지 않아 여러 모로 마음이 불편했는데 올해는 다행히도 주말에 딱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이 밥반찬을 궁금해하시더니 바로 말씀하셨어요.
"아버지한테 차 좀 태워달라고 해라."
생략 많은 말씀의 의미는 이번 제사에 참석할 때, 저희 친정아버지께 차를 태워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이 지역에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 추세이고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어제만 해도 재난문자가 꽤 많이 울렸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저도 부담이 큽니다.
장롱면허만 20년째 보유 중인 뚜벅이 신세입니다. 남편이 해외파견을 가고 운전을 시작하려던 것이 핑계만 대다 오늘날에 이르렀네요. 내년도 육아휴직 목표 중 하나는 운전을 하는 것이기도 해요.
일요일은 시아버님의 제사이니 꼭 가야 하는 날이고요. 아침 일찍 건너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어머님 입장에서는 코로나 확산 추세가 증가하는 지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올 손자, 며느리가 많이 걱정이 되신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님의 이런 배려가 마냥 편하지는 않습니다. 코로나 이전, 1년에 몇 번 남편에게 갈 때도 짐을 싸서 공항을 오갈 때면 매번 아빠가 왜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지 않는지 종종 말씀을 하시고는 했습니다. 실제로 시집에서는 어머님이 어딜 다녀오시면 아주버님이 마중을 가고는 하십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이 그 역할을 하기도 했죠.
반면 저는 그냥 택시 타면 서로 편한데 굳이 새벽같이 또는 밀리는 시간에 나 편하자고 누군가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여태껏 제 생각대로 해 왔고 이번 제사 때도 택시는 위험하다고 걱정을 하시니 마스크 잘 쓰고 지하철 타고 갈 생각이에요. 어차피 편한 것 빼면 시간도 비슷하게 걸립니다.
친정이 저희 집 바로 옆이면 몰라도 차로 2-30분을 와야 하는 거리인 데다 우리 집에서 다시 3-40분이 걸리는 시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30분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을 굳이 아빠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부탁을 하면 흔쾌히 들어주실 아빠지만, 아빠가 그 제사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내일모레면 사십 대 중반이 되는 제가 알아서 할 일까지 걱정해 주시는 어머님의 따스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님과 8년을 부대끼며 사랑과 간섭의 미묘한 온도차를 종종 느껴요. 가족이라는 존재와 역할, 그 적당한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자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을 아주 서정적이면서 섬세한 시선으로 잘 나타낸 그림책이 있어요.
<적당한 거리>입니다.
홍제천의 풀꽃들의 사시사철을 고스란히 담아낸 <연남천 풀 다발>의 전소영 작가님께서 펴내신 그림책인데요. 함께 읽어 보실까요?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
적당해서 그래.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말이야.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이 책을 작년, 그림책 테라피스트 양성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마니또였던 한 선생님께 선물 받아 알게 되었습니다.
신혼초부터 저는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시는 어머님이 힘겨웠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속마음을 털어놓던 사이 제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신 선생님께서 제게 필요할 것 같다고 건네 주신 이 그림책을 보며 무릎을 탁 쳤죠.
오래도록 자식 둘을 곁에 끼고 살았고 한참을 손자를 봐주느라 심적 독립을 할 기회가 없던 어머님께는 자식과 떨어진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엇이었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애정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어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고요.
가족 밖의 삶을 꿈꿔본 적이 없는 시누와 남편은 어머님의 갖은 요구에도 여전히 착하고 좋은 자식들로 참 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 저의 갈등과 번민은 여전한 현재 진행형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통해 저도 어머님도 부모와 자식의 삶은 하나가 아닌 두 삶이 안전거리를 두고 함께 하는 일이라는 걸 배우는 중이랍니다.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작가님께서 직접 식물을 기르면서 세세하게 관찰하고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을 살펴보며 '적당한 거리', 지금 나를 둘러싼 관계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크다고 해서 너무 많은 것을 다 해주려다 보면 결국 뿌리가 썩거나 잎이 마르거나 문제가 생기듯 관계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이어가는 것은 상대가 언제 어떨 때 무엇이 필요한지 세세하게 살펴 아는 것이겠지요.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것이 혼자 있는 것을 지켜봐 주는 마음요.
아무래도 시어머니가 그런 마음을 품어주시기엔 이번 생은 그른 것 같습니다만...
저는 어머님 덕분에 생각해 보게 되는 '적당한 거리'로 어머님은 물론이고 아이나 남편 같이 저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를 푸르고 싱싱하게 가꿔나가고 싶어 집니다. 저도 어머님처럼 마음부터 나가는 일들이 허다해요. 상대가 가장 아름다운, 자기다울 수 있는 상태를 알고 그 거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랑을 잘 안되더라도 노력해 보고 싶어 지네요.
힘겨운 관계 또는 너무 소중해서 종종 내 맘 같지 않은 관계의 '적당함', 관계에 필요한 이해와 배려를 이 책과 함께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금요일 되시고요.
주말도 잘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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