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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Oct 20. 2020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은 나를 괴롭힐 수 없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발견한 엄마에 대한 죄책감

주말, 시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무슨 반찬을 먹는지 궁금해 하시자 아이가 자랑스레 말했다.


"밥하고 홍합국이랑

어묵볶음이랑 소고기 샐러드랑.

어묵볶음은 내가 썰었어.

당근이랑 양파랑 어묵이랑 다 내가 다아~~!!"


-주말에 종종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한다. 부드럽고 간단한 채소류는 아이가 다듬도록 부탁하는 편이다. 물론 칼 사용에 주의하도록 알려주고 썰기 편하게 손질해서 건네준다. 단순한 놀이 활동을 넘어 남의 노동을 빌어 공복을 채우는 게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온 나와 남편을 돌아보며 스스로 밥을 지어 자신을 먹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길 바라며 함께 요리를 한다.-


그러자 어머님은


"아이고, 우리 OO이 맛있는 거 먹네.

그러면 안 돼. 큰일 나."

하시더니


"내가 있다 아이가. 엊그저께 손을 비어 가지고.

피가 안 멎어가지고. 식겁했다 아이가.

너무 놀래 가지고  OO(근처 사는 손윗시누)이

불렀다 아이가."

라고 말씀을 이으셨다.


"어머, 어떻게 하셨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셨어요?"

"오데. 그 정도는 아니고(웃으시면서)

그냥 어째 어째 했는데 얼마나 놀라고 무섭던지.

다친 데가 시리고 아려서 죽겠다야."


어머님이 늘어놓으시는 그 상황이 바로 내 앞에서 영상이 재생되듯 너무 훤하게 상상이 되는 거였다. 혼자 계신 집, 손을 크게 비어 당황한 어머님, 아마 상처의 심각성 보다도 아프고 시린 데다 피가 많이 나니 놀라서 평소 습관대로 다짜고짜 자식을 부르셨을게다. 효녀인 시누는 부랴부랴 달려왔을 테고 알고 보니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달려와 보니 그런 어머님을 보며 허탈하기도 속상하기도 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 했지?"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시누. 그리고 불러놓고 자신을 다그치는 딸에게 멋쩍어서 도리어 짜증을 내었을 시어머니.


지난 8년간 어머님을 만나오며 매 순간 어떤 통증과 아픔을 강조하는 모습을 오래 봐 왔다. 물론 대부분 혼자 그 아픔을 참고 계시다가 자식들이 오면 표현을 하시는 거겠지만 결혼 초부터 어디가 그렇게 많이 아프신지, 걸레를 하나 짜면서도, 찬물에 과일을 씻으면서도 어머님은

"아야야야... "

"아이, 손 시려, 손 시려.

니 여기 와서 이거 좀 마저 해라."

감탄사와 함께 자신의 통증과 그 상태를 세상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부담되었고 싫었다.


주말 어머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이런 엄마를 가진 시누가 안타깝기도 하고 어머님이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가 '왜 그동안 어머님의 그 표현들이 그렇게도 싫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큰 내색 없이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해 온 엄마와 비교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지난 7년 간, 출산휴가 3개월을 제외하고 줄곧 평일 새벽 일어나 우리 집에 오셔서는 내가 퇴근한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며 불평불만 한 번 하지 않으시고, 야근하는 내게도 전화 한번 걸지 않고 묵묵하게 아이를 봐주셨던 엄마. 대상포진이 와도 그 통증을 꾹꾹 참다가 병원에 갔던 엄마.


그 엄마는 지금도 몸소 보여주고 계시듯 어린 시절 아픔을 호소하는 내게 '엄살 부리지 마라.'라고 단호하게 꾸중을 하셨다.  

"아프다는 소리에 누가 좋아할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하면 가벼운 사람이 된다."

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다.

시어머님이 좀 유별나신 편이긴 하시지만 엄마의 이런 이론적 주입(?)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어머님의 통증 자랑에 당혹스러움과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로 친할머니(엄마의 시어머니)는 내 시어머니와 상당히 유사한 사람이었다. 두 분의 건강염려증은 막상막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생전에 할머니는 늘 여러 약을 달고 살았고, 지금 시어머니는 약은 불신 하지만 다른 건강 보조식품이나 몸에 좋다는 음식은 챙겨 드시는 편이다. 두 분 다 사람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을 느끼는지 낱낱이 표현한다. 그런 할머니를 엄마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평소 내게 하는 말씀에 빗대어 보건데 좋게 보진 않으셨을 게 분명하다.


어머님이 '엄살'을 부리실 때마다 올라오던 감정이 어린 시절 내가 그럴 때마다 따라오던 엄마의 '바른' 말씀에 좌절된 감정 때문이기만 할까? 이미 나는 어머님과의 오랜 시간을 통해 받은 상처와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책을 읽었고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절친한 지인과 오래도록 감정을 나눴고, 상담실의 테이블에 앉아 울고 원망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덕분에 그 영상통화에서는

"아이고, 어머님, 고생하셨네요. 상처 잘 챙기시고 덧나지 않게 조심하시고 당분간은 일 하지 말고 좀 쉬세요."

정도로 마음 담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이 있었다면 이어지는 어머님의 2절에 마음이 또 부대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다른 감정이 있었다.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가슴 바로 아래께가 묵직하게 아픈 게 마치 체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게 뭘까? 도대체 그게 뭘까? 따라가다 보니 엄마의 꾹꾹 눌러 담은 드러나지 않은 고통을 외면한 내가 보였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음소거하듯 꾹꾹 눌러 담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게 습관이 된 엄마를 보며 나는 늘 상상력을 발휘하며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내 할 것에 치중해 모른 척해 왔다.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커서 평생 그것에 몰두해 온 남편과 똑 닮은 큰딸은 결혼을 하고서야 세상에는 마치 부모가 삶의 의미인 듯 살아가는 자식들도 있다는 걸 목격한다. 우리 엄마도 저런 대접을 받을 정도로 고생했고, 아니 그 이상으로 내게 잘 해왔는데 나는 엄마를 저렇게 귀하게 대할 줄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자식이었구나 하는 자각과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묘한 반감이 어머님을 보며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도 적게 하고 일찍 사회로 나간 시누가 집안을 일으키고, 남편도 대학원이며 연수 같은 꿈을 고이 접고 취직해 어머님께 해외여행과 매사 동기화되듯 반응하는 자식 있는 삶을 드린 반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엄마의 날개를 뽑고 피를 빨았고 젊은 날의 상당 시간을 엄마 곁을 떠나 살았다. 지금도 실은 아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엄마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참 이기적인 자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너무 오래, 너무 가까이 부모와 관계를 맺으며 독립하지 못하고 서로 의존하는 두 사람과 어머님의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머님과 시누와 남편을 보고 있으면 자식복 없는 우리 엄마가 떠올라 자꾸만 속이 부대끼고 불편해서 어머님의 날 것 같은 표현들과 당연하듯 내게도 요구하는 관심과 사랑이 싫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 사랑은 어머님이 아니라 내 엄마에게 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주지 못했던 사랑을 이제야 후회하면서.


얼마 전 브런치에서 읽은 정문정 작가의 <이유 없이 싫은 것에는 상처가 묻어 있다>는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상처 받은 나와 억울하게도 미움을 받고 있는 타인이 드러나며, 그 과정을 객관화할 수 있으면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에 가까워진다.


아직은 그 과정을 객관화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어머님을 과하게 미워한 내 감정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때로 미움은 어머님으로부터 직접 생겨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결국 내가 가진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정문정 작가는  그 글의 말미에 헤르만 헤세의 말을 언급하며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은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을 통해 '부모가 왜 저래?'라고 되물어 온 내겐 분명 어머님의 자식들이 하는 방식으로 엄마를 아껴주지 못한 지난 과거의 후회와 상처가 남아있었다. 이제 어머님을 거북스러워하기 전에, 사랑 넘치는 두 자식을 보며 부러움 섞인 부담감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기 전에, 묵묵부답 표현 없는 엄마의 감정을 조금 더 궁금해하기로, 엄마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들어 보기로 한다. 사십몇 년 간 해 보지 않은 일을 이제 와서 잘 할리가 없겠고 우리는 자주 또 갈등하겠지만 내게 아직 만회할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 아침 곧 문을 열고 들어올 엄마의 표정을 살피고 싶다.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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