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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02. 2020

저 비처럼 잦아들었으면

11월은 비와 함께 왔다. 어제는 하루 내내 얇은 회색 구름들이 하늘을 독차지하고 있다가 잠깐 비가 마른땅과 사물을 적시며 먼지 내음, 풀내음을 풍기더니, 오늘은 새벽부터 젖은 땅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사이로 들려온다. 좀 전까지 꾸었던 꿈에서 나는  무엇을 놓쳤던 건지 죄책감과 무기력함이 주는 울분을 가슴 가득 채운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11 중순까지 완료를 해야 하는 일이 업무적으로 하나, 사적으로  하나. 마음이 자꾸만 앞으로 달아나는 한 달의 시작이다. 업무야 반가울 정도는 아니지만 반복을 하면서 익숙해진 경험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만 아직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예민해지곤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알고, 만약 어쩔  없었다면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수에 관대한 마음,  먹기 어렵다. 거기에 육휴 의사를 어떻게 전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보내주기야 하겠지만 웃으며 헤어지고 싶은데 우리 조직 문화   과정이 생각만 해도 힘이 들어 고민 상자에 추가됐다.

사적인 일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오직 나의 글을 믿고 맡겨진 일인 데다 보수도 있기에, 가진 것을 최대한  담아 펼쳐 보이고 싶다.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즐겁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욕심이라면 욕심인데... 전달 방식의 한계로 쉽지 않은 도전이   같다. 잘해 보고픈 욕구만큼이나 '   있겠어? 욕심부리다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망치는  아냐?'라는 오랜 목소리가 꿈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나타나거나, 불쑥  깊은  어둠 속에서 자꾸만 맴돌며 지난주 내내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어제저녁에는 늦은 핼러윈 파티를 요구한 아이와 아침부터 공책에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었다.  2시간 동안 파티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요구한 작은 것이 나의 불안을 건드렸고, 아이를 설득했고, 남편은 그런 나를 가볍게 비난했다.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올라 모처럼 흥겹던 시간을 망치고 말았다.  그가  마음까지 무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식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일 뿐이었겠지만  문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평소의 생각들, 남편에 대한 불만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까지 한꺼번에  올라와 문제보다   감정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당황했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우리는 아무  없다는  다시 파티 모드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아까 같지는 않았다.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잠이 들기는 했지만 역시나 '나는 맨날 그렇지.' ' 실수했어?' 같은 류의 꿈을 이어서 꾸었다. 아이를 대하는 마음도 방식도 부족하지만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는 그런  모습이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말에 영향을 받고 결국 그가 하자는 데로   다음 이런 좌절감과 무기력함을 느끼는가?




새벽에 알람을 듣고 깨어나 답답한 마음을 안고 어두운 거실을 조금 걸었다. 아이와 읽었던 그림책  한 줄이 가슴에 오래 남았기에 오늘의 한 줄로 정해 노트에 옮겨적고  문장이  감정을 정리해 보다가...  것도 같았다.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 엄마의 강한 목소리와 표정, 몸짓에 사로잡혀 있다는 . 엄마는 싹이  나길 바라는 마음은 커서 많은 것들을 챙겨주었지만 절로 컸다고 느끼게 하는 데는 서투른 부모였다.  부족하고 안쓰러운 부분에 집중해서 나를 지적해왔다.

이젠 엄마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내가   많은 고민은 결국 통제감,  능력에 대한 의심, 그것도 아주 깊은 의심이었다.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까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무의식이 현실의 나를 설득해 버린다. 결국 그렇게 수정을 하지만 마음속 깊이 불만을 가진채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듭한다.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 설득이나 협상에 능하지 못한 나는 일도, 남편이나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육아도, 일도 실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완벽해야 정당성을 주장하고 하고 싶은데로   있는데 완벽할 수가 없으니 실수가 힘겹고, 결국 자신을 탓하게 된다. 너무 쉽게 내가 애써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판단하는 사람들(남편, 시어머니, 회사의 상사나 동료들) 말을 들으면 울분이 치솟고 화부터 나는 것이 아니었나. 오랜 숙제는 풀어도 풀어도 여전히 남아있구나.  풀고 농땡이 치고 싶어 지는 요즘이다.

비가  잦아들었는지 갑자기 창밖이 조용하다. 지금, 서글프게 나를 가득 채운  감정들도  비처럼 조금씩 잦아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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