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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Dec 02. 2020

마음이 패인 날

내가 사는 부산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1월 27일 자정부터 발효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이어 11월 30일 자정부터는 3단계에 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고 있다. 수능을 앞두고 고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함에 따라 시가 내린 비상 방역 지침이다.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아이도 등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낮잠을 자고 쌩쌩한 컨디션으로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던 지난봄과 달리 퇴근 후, 같이 그림책 읽고 종이접기 하고 이야기 조금 나누다 보면 '조금 쉬고 싶다(졸린다의 다른 표현)'는 말을 남기고 곁에 자리를 잡고 누워 스르르 잠이 들어버린다. 대략 9시~9시 반 경.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건 한순간, 떨어진 체력과 쌓인 피로 때문에 곁에서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존다. 그러다 자다 움직이는 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려 잠이 깨어 보면 새벽 1시거나 3시처럼 애매한 시간이다.          


보통은 다시 잠을 청하면 그대로 잠이 드는데 한참을 뒤척이다 아침을 맞는 날도 종종 있다. 낮동안 일로 막내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고 상사와 갈등했던 일도 떠오르고, 미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감사 자료도 생각나고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개인적인 일도 훅~ 치고 들어와 속이 다글다글 끓었다. 편안하고 포근했던 침대를 답답함에 박차고 나가고 싶어 졌다. 시계가 없는 방을 나와 거실의 시계를 보면 아직 일어나야 할 시간은 한참 남았고 돌아가 누우면 잠은 오지 않는다.          


이럴 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건 곁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의 숨소리와 온기다. 종종 미처 해주지 못한 것과 나도 모르게 주고 만 상처들이 떠올라 미안함과 죄책감이 나를 옥죄일 때도 있지만 아이와 나란히 누워 아직은 깜깜한 방안의 어둠을 바라보다 보면 서서히 마음속 거친 파도가 가라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넌지시 다짐하게 된다. 많은 것들을 용서받은 느낌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삶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매년 연말이면 '바로 이 음악이지.' 하고 듣는 음악이 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중 '에어', 우리에게는 'G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곡이다. 19세기의 바이올린 연주자 빌 헬미가 G선만으로 연주하며 이 이름으로 알려지고 친숙해졌다. 다양한 버전의 연주가 있고 삽입곡으로도 많이 쓰인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추위로 몸을 움츠리며 올해 무엇을 했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어느 날, 해가 길게 꼬리를 내리며 서쪽 하늘의 저편으로 저물고 박모(薄暮)가 찾아오는 순간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갖은 후회와 아쉬움에도 '이대로도 괜찮다.'라고 넌지시 속삭이는 것만 같다. 북받침이 눈물로 이어지고 더불어 카타르시스가 찾아오는 순간, 다시 한번 시작해 봐도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든다.  

        

한 시간을 넘게 뒤척여도 도무지 마음속 파문이 멈추지 않던 어젯밤, 아이 곁에 바짝 붙어 그 온기에 기댔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아이의 넓고 유연함에 부끄러움과 위로,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G선상의 아리아의 선율을 떠올리며 규칙적인 숨소리에 차차 마음이 고요해질 때 즈음, 여전히 실수를 가득하는 어제의 나를 용서했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자꾸만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그만큼 마음이 패이는 일을 반복하는 나의 어리석음에도 '아직은 다시 시작하고 싶구나.' 그렇게 잠든 아이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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