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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쉼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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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Mar 16. 2021

정리에 진심입니다.

1 사분면의 삶 1

이달 초, 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저녁이나 주말에만 머무르던 집이 주 생활공간이 되었다. 점점 집안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치울 자신도 시간도 없어서 물건을 별로 들이지 않고 지냈는데 아이 낳고 하나둘 생긴 짐들을 정리하지 않았더니 쌓인 것들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하루에 다 치우자니 스트레스가 올 수준이라 매일 정리 시간과 진도를 정해놓고 여유 날 때마다 조금씩 손을 대는 중이다.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느긋하게.     

     

매 계절마다 입을 게 없다며 하나둘 사모으고는 버릴 줄 몰랐던 옷들 중 최근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것, 보풀이 일어 깔끔하지 않은 것,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은 것들을 눈에 띄는 데로 모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있는 옷 버리는 함에 과감히 넣었다. 책도 추려서 중고서점에 내다 팔고 재고가 많다며 받아주지 않는 것들은 작아진 아이 옷과 신발과 함께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보기만 해도 무릎이 아파오는 9센티 힐들도 정리하고 쓰지 않고 모셔두기만 한 그릇들도 꺼냈다.      

     

친정에서 가져가겠다고 해서 그릇은 싸 두고 수납장 안을 닦았다. 정리하다 보면 오전이 순삭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순간의 유혹도 찾아오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뭐라도 하나 버리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일상의 작은 보람을 하나 찾았달까? 치우기 힘드니까 다시 어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순기능도 있다. 적당히 진도를 뺀 후, 오늘은 이제 그만! 싶을 때면 식어버린 커피를 데워 후후 불어가며 간식과 함께 마신다. 이 맛에 정리하는 기쁨은 배가 된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집안은 나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수납장에 쑤셔 박아 문을 닫아버리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괜찮은 것 같을 뿐, 해결된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닌 문제들에 고개 돌린 채 지내왔다. 여는 순간 와르르 쏟아질까 피하기만 했던 내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꺼내보려 한다. 채우느라 급급했던 것들 중 어떤 것은 내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닐 것이다. 느릿느릿 티 안 나는 달팽이 걸음이라도 하나씩 꺼내어 천천히 정리해 나가다 보면 서서히 알게 되겠지. 꼭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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