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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Mar 22. 2021

30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배우는 까닭

제4분면의 삶 2

오늘부터 주 2회 피아노 레슨을 받기로 했다. 월요일이라 유난히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겨우 달래 밥 세 숟가락을 먹이고 함께 등교했다가 그 길로 학원으로 갔다. 20대에 가끔 집에 있는 치기는 했지만 학원의 피아노 의자에 앉아 본 것이 중 3 가을이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늘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던 문을 열고 들어가 건반 앞에 앉았다. 쌀쌀한 기운에 추운 건지 설렘에 떨리는 건지 기분 좋은 긴장감이 돌았다.       

     

선생님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교재를 펼치시기에 시작했다. 클레멘티 소나티네 Op36-1. 학원 옆방에서 늘 들려오는 그 유명한 '도 미도 솔. 솔. 도 미도 솔. 도.' 처음엔 일단 직진. 더듬더듬 다 치고 보니 도돌이표가 두 개나 보이는 게 아닌가? 눈으로는 악보 보랴, 번호에 맞게 손가락 움직이랴 음정, 박자 맞추랴 정신없이 두 번째 연주가 지나가고 놓친 감수성 한 스푼 넣으려 애쓰면서 세 번째 연주에 돌입했다.     

     

다 아는 곡인데, 예전에 악보 안 보고도 기계적으로 쳤는데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고 손은 안 따라주고 급한 마음에 자꾸 박자를 놓쳤다. 이상은 임동혁에 가 있고 현실은 초1 수준이고... 선생님께서 "천천히 하시기만 하면 꽤 좋은데요?"라고 격려를 해 주셨다. 35분의 레슨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어릴 때 지겨워하며 쳤던 그 곡인가 싶을 정도로 재기 발랄하고 아름다웠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생각하면 레슨실의 오른쪽 창에서 흘러들어온 오후의 나른한 햇살, 졸음을 부르던 바흐의 인벤션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열정적으로 치다가도 또 어떤 날은 꽤를 많이 부렸다. 무한 반복되는 연습이 지루해서 멍하니 있다가 선생님이 빼꼼히 쳐다보면 후다닥 연습하는 척을 했었다. 지금은 매일이라도 연습할 수 있는데 그땐 그 시간이 품은 평화로운 행복을 몰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는 곳만 틀리는 건 매한가지다. 어렵게 느껴지는 곳, 헷갈리는 곳, 딴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표가 나는 약한 부분이 연주를 방해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만든다. 한번 집중해서 잘 됐다 싶으면 금세 다음에 또 틀린다. 예전엔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어서 대충 넘어가고는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멈춰 치고 또 쳐 본다. 나중에 고스란히 표가 날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지금 와서 피아노를 왜 다시 배우고 싶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난한 연습을 거듭한 후 나아져가는 실체감을 이렇게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까 봐 종종 두려운 나의 글도 더듬더듬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힘을 얻고 싶었다고. 마음만 앞서가는 순간에도 연습의 힘을 믿으며 오늘의 음을, 딱 한 문장을 만들어 가보자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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