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쉼표 찍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이름은빨강 Mar 19. 2021

내가 천재를 낳았을지도 몰라

1 사분면의 삶 3

초 1이 된 아이의 요즘 일상은 크게 3부로 나뉜다. 학교에서 보내는 1부, 방과 후 새로 사귄 친구들과 아파트가 좁을세라 뛰노는 2부, 씻고 나서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엄마와 하는 공부가 3부다. 유치원 때도 비슷한 일상이었지만 직접 곁에서 관여해서 그런가? 아이의 일상이 더 촘촘하고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글자를 아는 순간, 더 이상 그림을 보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일부러 글자를 일찍 가르치지 않았다. 요즘 교육과정상 한 학기 동안 한글을 가르치고 받아쓰기를 한다고 현직 교사에게 들었고 나 또한 그렇게 학교 가기 전 잠시 글을 배웠지만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으니 아이도 그렇게 될 거라는 묘한 믿음도 있었다.     

     

여섯 살 때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아이가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니 가정학습으로 보충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말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지만 일곱 살에 들어와 COVID-19로 인해 5월 말까지 등원을 못 하게 되는 변수가 생긴 후, 하루가 다르게 늘어지는 아이의 모습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글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수학 문제를 풀려면 한글을 모르면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라고 미처 생각지 못한 지인의 말이 영향을 끼쳤고 퍼질 데로 퍼져버린 생활습관을 다잡을 겸 서서히 학습을 시작할 때라고 판단했다. 엄마 사이에 유명한 한글 학습과 수학 교재를 한 권씩 주문한 뒤 매일 딱 2페이지씩 같이 했다.      

     

몸이 안 좋은 날, 누군가 놀러 왔거나 여행을 다녀온 날 등 가끔 빠지긴 해도 거의 매일 2페이지씩 천천히 진도를 나갔고 아이의 한글도 수학 실력도 조금씩 늘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내가 천재를 낳았을지도 몰라.' 하는 기대는 내친아(내 친구 아들)에게만 한정된다는 것을.     

     

어제 아이는 3시에 방과 후를 마치고 6시가 다 되도록 온 아파트를 누비며 친구들과 한 학년 위의 형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그렇게 놀고도 아쉬웠는지 유치원 한 살 아래 동생들을 만나 술래잡기를 또 했다. 안 들어 오려는 아이를 달래 겨우 집으로 돌아와 운동 간 아빠를 기다리며 오늘치의 공부를 시작했다.     

     

실컷 놀고 들어와 피곤했던 아이는 공부가 지루했는지 슬슬 짜증을 냈고 글자를 대충 쓰고 그림을 그리며 딴짓을 하면서 문제집을 풀었다. 살살 달래서 진도를 이어가는데 수십 번을 한 수 가르기를 할 때였다. 12를 가르는데 좀 전에 5+7을 자신 있게 해 놓고는 7+5를 못하는 거였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를 기다리다 어렵다고 울상을 짓는 아이에게 10이 넘어가는 숫자의 덧셈에서 먼저 10을 만들어 놓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긴 숫자에 약한 나도 지금이니까 이게 보이지 그땐 무슨 소리인지 대략 난감 그 자체 아니었던가?     

     

인생도 매한가지가 아니었던가? 남의 일이나 한창때를 벗어나면 뻔히 보이는 답이 당장 내 일이거나 상황에 매몰되어 있을 땐 정작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그저 골치 아프게만 여겨진다. 이치나 원리를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연습과 여러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야 그러한 깨달음에 겨우 다다를 수 있었던가...?     

     

"아니, 얼마나 수없이 반복했는데 아직도 이걸 몰라?!!!"     

하고 버럭 외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른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 억울하고 답답한 표정으로 쏘아본다. 한소리를 하려다 자리를 떠서 냉수를 원샷하고 블록을 열두 개 챙겨서 돌아왔다.     

     

열을 가르치면 열 하나를 깨치는 건 내친아의 일일 뿐이고... 내 안의 드글거리는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를 바라본다.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억울한 표정으로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려워서 자꾸만 학습지를 미루던 어린 내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떠올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어려운 수학 문제든, 인생에 닥치는 느닷없는 숙제든 풀리지 않아서 골머리를 싸매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하기 일쑤다. 때로는 아이처럼 푸념하면서 '나 이제 이거 안 해!' 내던져 버리고만 싶은 일이 가득이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한번 더 문제를 대면하는 용기를 내고 노력을 기울여 본 후,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충만감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시원하다. 결과를 떠나 내가 조금 더 좋아지는 그 맛을 아이가 꼭 알기 바라며 좋아하는 블록을 늘어놓고 10 넘는 숫자 셈하는 법을 차근차근 다시 설명해 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젓가락 분실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