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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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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10. 2021

아이 키우다 별 볼 일이 다 있네

토요일 밤이었다. 지인이 소개해 준 몰 놀이하기 좋은 계곡에 가려고 친정 아빠에게 캠핑 장비도 빌리고, 대패 삼겹에 버섯, 채소와 간식까지 준비해놓고 부디 내일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든 순간이었다. 그날따라 아이가 부탁해 잠시 켜 두는 보조 등도 꺼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남편은 이미 눈을 감았고, 나도 막 잠들 자세를 잡았다. 놀러 갈 흥분감에 쉽게 잠들지 못한 아이는 무섭다면서도 거실로 나가 계속되는 밤하늘의 마른벼락을 구경한다고 들락거리다 침대로 돌아온 바로 그때였다.     

     

빡! 매트리스가 출렁인 순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샛노란 별이 보였다. 바깥의 벼락이 내 눈앞에서 친 건가? 은하수를 보러 간 평창의 밤하늘에서도 보지 못한 별들이, 순간의 번쩍거림과 함께 눈앞에 떠다녔다. 불꽃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들을 뒤따라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악!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동시에 아이도 당황스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뒤통수를 만지며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괜찮아?"     

     

아니, 결코 괜찮지 않았다. 몸에서 코만 남은 것 같았고 불타듯 화끈거리고 통증이 몰려왔다. 전등을 켜고 거울을 확인하니 아프기만 할 뿐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아이의 미안하면서 당혹스러운 눈빛이 들어왔다. 너무 설렌 나머지 침대로 들어오며 몸을 천장 쪽으로 하고 앉은 상태에서 반동으로 점프를 하다 뒤통수로 내 코와 박치기한 것이었다. 눈을 뜬 남편이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한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하나 내어 타월로 감쌌다. 내 코의 존재감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긴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아이스팩을 대고 있었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실 줄 몰랐다. 함께 가져온 사각의 흰 접시 위에 아이스팩을 올려두고 잠을 청했다. 욱신거리는 아픔 때문에 한참 잠들지 못하다가 어느새 지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이 잔뜩 흐렸다. 일기 예보를 보니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계곡 물놀이는 날씨 좋은 날 가기로 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침을 먹고 주말의 일상을 보냈다. 일어날 때만 해도 괜찮은 것 같던 코의 통증은 괜찮다가도 신경을 슬금슬금 거슬리게 만들었다.     

     

코의 우리하고 뻐근한 통증은 계속되었다. 점심때를 넘겨 물놀이는 못 갔지만 기분이라도 내 보자며 아이가 공부하는 앉은뱅이책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버너를 올려 삼겹살을 굽고 상추쌈을 쌌다. 고기를 굽던 남편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코 좀 부었는데, 지금이라도 응급실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고 했다. 설마 부디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결국 뼈에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일까....     

     

코로나 4단계 격상과 맞물려 아이의 방과 후 수업 등교도 2주간 전면 중단되면서, 다시 종일 붙어 있게 될 한 주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간 사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찍고 생각보다 많은 환자 수에 놀라며 한참 대기하다가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연세가 상당히 많아서 진료는 제대로 보실 수 있을까 의심하며 사진을 힐끗 보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코 뼈 위에 금이 가 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붙는데 4주 정도 걸릴 거라며 약,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못 미더웠지만 의사 선생님에게 간절하게 물었다.     

"혹시 코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뼈가 휘거나 매부리코처럼 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죠?"     

"아, 괜찮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조심만 하면 됩니다."     

다행히 다를 되뇌며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가 따라 나와 앰플을 노련하게 손가락으로 튕겨 따더니 작지만 매운 주사를 엉덩이에 한방 놓아주었다. 개업선물로 건네는 물티슈와 마스크를 받아 병원을 나섰다.      

     

곧장 아이의 학원 앞으로 서둘러 갔다. 데리러 갈 시간에서 5분이 지나있었다. 엄마가 오길 기다렸는지 곧바로 뛰어나오는 아이가 다짜고짜 물었다.     

"엄마, 뭐래?"     

"음, 정말 부서진 건 아니고 금이 갔대. 한 달 정도 뒤에 깨끗하게 낫는데."     

"어휴, 걱정했는데 진짜 다행이다. 미안해. 다음부터 조심할게."     

     

주사 한방과 알약 세알에 마법같이 금 간 코가 사르르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직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마스크를 쓸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거나 얼굴 근육을 많이 쓸 때면      

"나 아직이거든? 좀 조심해!"     

라고 일러주듯 뻐근한 통증이 곧바로 닥치지만, 시간의 마법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바꿀 것이다. 아이를 키우니 정말 '별 볼 일'이 다 있다. 눈앞에서 불꽃처럼 쏟아지던 한여름밤의 해프닝에 아픈 코를 잡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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