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해

그림책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내 첫 크리스마스에 관한 기억은 언제였을까?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극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다. 행사에 가면 선물과 맛있는 과자도 준다고 그래서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마음 설레며 참가했었다. 지금은 가톨릭 신자가 되어 크리스마스가 되면 미사에 참여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온다. 은은한 금구슬, 은구슬을 달고, 맨 위에는 찬란한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인다. 그 화려함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신부님의 강론 소리도 귓가에 머물지 못한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왠지 알 수 없는 뭔가를 꿈꾸게 한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오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때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는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100가지 식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대 사람들은 동지에 생명을 되살리듯 살아 있는 녹색 가지(나무)를 집에 들여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대 동지 축제와 그리스도의 탄생 축제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상록수를 활용한 축하 의식이 시작되었다. 16세기경, 마르틴 루터가 별이 빛나는 밤에 침엽수를 보고 감동한 후 그 나뭇가지를 잘라서 집에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트리는 주로 개신교 전통을 가진 독일과 발트해 연안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19세기에 영국 왕실에 도입되었다. 조지 3세의 아내인 샤를로테가 1800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파티를 열었다. 1844년에는 안데르센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주인공인 『전나무』 이야기가 출판되었다. 트리가 가장 획기적으로 대중화된 계기는 1848년, 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빅토리아 여왕 가족이 나무 주위에 모여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모습을 담은 판화가 실리면서였다.


미국에서는 1850년,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이 처음으로 백악관에 트리를 설치했으며, 1923년에 백악관 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바티칸의 경우에는 1982년까지 공식적인 트리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1800년대 후반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크리스마스 축제도 함께 들어왔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는 더글러스 전나무, 프레이저 전나무, 스코틀랜드 소나무로 주로 만들고,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가문비나무와 노르만 전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관한 그림책을 찾아보았다.


서가에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책이 꽂혀 있었다. 설렘으로 펼쳐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발탁된 한 커다란 나무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쓰고 그린 로버트 배리는 1931년에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이 책은 1963년에 출판되었다. 출판되자마자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며, 크리스마스 특집 인형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0년 개정판은 뉴욕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림책을 펼쳐 들자 높은 산 위에서 밑동이 잘린 채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지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1844년에 출판된 안데르센의 『전나무』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책에는 숲속의 전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잘려 잠깐이나마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다가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불태워 사라져버렸는지, 덧없는 전나무의 짧은 삶이 그려져 있다. 다행히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라는 그림책 전나무는 덧없는 짧은 삶이 아니라, 사람뿐만 아니라 숲속 동물들의 마음도 밝히는 재생의 삶을 보여 준다.


윌로비 씨는 커다랗고 싱싱한 크리스마스트리를 구했는데, 키가 너무 커서 천장에 닿았다. 나무 꼭대기를 잘라 다른 사람에게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선물한다.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는 계속 다른 이에게 전해질 때마다 나무 꼭대기가 잘려 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지만, 모두의 공간에 적당한 기쁨의 트리가 된다.


아주아주 커다랗던 나무 한 그루는 윌로비 씨의 커다란 거실에, 정원사 팀 아저씨의 작은 집 한쪽에, 곰 아저씨 집에, 여우 가족의 장식장 위에, 토끼 가족의 벽난로 위에, 생쥐 가족의 집에 적당한 크리스마스트리로 변모하면서 모두를 즐겁게 한다. 커다랗던 나무는 계속 잘리는 고통을 당해야 했지만, 자신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두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안데르센의 ‘전나무’와 그림책의 ‘전나무’. 나무 두 그루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두 그루는 한 나무이듯 겹쳐지기도 한다. 두 그루 모두 숲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 의해 갑자기 삶의 터전이 옮겨지고, 목적에 의해 다듬어지고 장식되었지만, 마지막은 달랐다.


안데르센의 나무는 모두에게 잊히고 버려진 채로, 자기만의 짧은 기억만을 안은 채 재로 사라져버렸지만, 그림책의 전나무는 자신의 원치 않는 희생이었지만, 많은 이의 행복함을 목격했고 그 공간을 지켜냈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들의 행복한 연대가 전나무의 행복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갑자기 나무의 행복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은 밤이다. 나무의 행복한 삶은 곧 내 삶으로도 이어지니까.


2025년의 시작이 엊그제인 거 같은데, 벌써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는 성찰해야 하는 시기다. 나는 한 해 동안 ‘나다운’ 삶을 잘 살았는가, 도서관 사서로서 열심히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져본다. 이제 도서관에도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야겠다. 플라스틱 트리지만 마음의 빛을 담아 반짝이는 별 하나를 달아야겠다.


우리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든 분께 행복을 전하는 별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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