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블랙올 지음, 정희성 옮김, 웅진 주니어
내 일상의 기쁨이 우리의 행복으로 번져가는 순간들을 찾아서
내 핸드폰 사진의 80%는 꽃 사진이다. 언제부터 꽃을 유별나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 든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꽃 사랑’ 유전자가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내 주변에는 꽃이 있었다. 봄에는 더없이 화사한 앵두꽃이, 하늘하늘 작약꽃이, 이름 모를 소박한 꽃들이 작은 화단에서 계절에 따라 피고 지곤 했다. 다 엄마의 손길 아래서였다.
지금도 집 베란다에는 엄마가 20여 년 전에 고향에서 가져와 심어주신 군자란들이 야자수처럼 싱그런 초록 팔들을 사방으로 펼치고 있다. 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처럼 언제나 내 곁에서 향기롭게. 어디서나 자기만의 향기로움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나는 그냥 행복해진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나만의 소중한 일상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향기롭게 엄마 생각을 하게 된 데는, 10월에 진행하는 ‘시니어 그림책테라피’를 준비하며 자료를 찾다가,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다. 내 인생의 기쁨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는‘엄마’라는 이름의 두 글자였다. 한없이 따뜻하고 불러도 불러도 질리지 않는, ‘엄마’라는 이름의 찬란한 언어,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지지 않는 향기로운 꽃이다.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린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소피 블랙올 작가는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과 소중한 존재를 갑작스럽게 상실해야 했던 슬픈 사건을 겪으면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주는 대상을 찾아, 그 사연을 꾸준히 기록해 나간다면 그 충만감들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만의 향기로운 삶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책은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치유의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매일을 채우는 52가지 행복의 이름들>
떠오르는 태양 / 커피 / 따뜻한 샤워 / 누군가를 위해 굽는 과자 / 포옹 / 새로운 배움 / 새로운 단어 / 박수 / 11시 11분의 약속 / 첫눈 / 표정 그린 달걀 / 차 한 잔 / 맨드라미꽃 / 오래된 노래 / 들꽃 씨앗 / 새 떼 / 개 / 비 / 무지개 / 열지 않은 선물 상자 / 달 / 결혼식 / 아기 / 헤엄 / 안경 / 바느질 / 조약돌 / 바다 / 오래된 책 / 빨래 / 가구 옮기기 / 되찾은 물건 / 정리 정돈 / 저녁 식사 / 박물관 / 마무리 / 사랑 / 보내는 편지 / 받는 편지 / 새 모이 / 운동 / 물 한 모금 / 낮잠 / 세금 신고 / 투표 / 채소 재배 / 지도 / 공동묘지 / 여행 / 집으로 / 나만의 목록 / 카르페 디엠
작가의 목록을 보면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단어와 사연들이다. 작가는 일상이 무료하거나 우울할 때, 창조적인 영감이 무뎌져 있을 때, 내 삶에서 기대할 만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기록한 후에 주변 사람들과 나누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도서관 친구들과 ‘기쁨의 순간’들을 모아보았다.
<도서관 친구들의 ‘기쁨의 이름들’>
• 바느질(경*자 어르신): 바느질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아주 옛날 내가 시집오기 전이다. 처녀가 시집가면 바느질도 배워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저고리 감을 주셨다. 그런데 아무리 뒤집어도 소매가 두 개가 되어 한참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 옛날도 있었다. 지금은 돈으로 다 살 수 있지만 까마득한 그 시절이 그립다.
• 커피 한 잔(권*숙 어르신): 어느 날 강화에 바람을 쐬러 가는 중이었다. 어느 산모퉁이에 하얀 집 커피숍이 있었다. 잠시 그곳에 들러 차 한잔하고 싶어 들어서는데 엔틱한 가구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주인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한순간, 내가 로망 하던 곳에서 내 마음을 흠뻑 적시며 감상에 빠져들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커피 한잔을 마시고 목적지인 강화로 출발했다.
• 매미 소리(김*숙): 한여름 창문 너머 "맴맴맴맴" 하면 나는 어린 시절 여름날로 시공간 이동해요.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았던 그 한가로움으로요. 어느새 나는 옛 시골집 마당 나무 그늘 돗자리에 누워 있지요. 제게 매미 소리는 이 한여름 속에서 한가로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알람이지요.
• 손편지(송*선):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이 담긴 필체와 마음으로 툭 보내어진 설렘
• 꼭끼(꼭 껴안자'의 줄임말 / 안*민): 입에서 톡 떨어지듯 귀엽고, 가슴속으로 퐁 안기는 말이죠. 저에게 '꼭끼'는 힘들 때, 울고 싶을 때, 기쁠 때, 반가울 때도 벅찬 마음을 두 팔로 먼저 벌려 서로의 체온을 따듯하게 채우는 행복한 단어입니다.
• 금요일 밤(홍*원, 초5): 이번 주도 열심히 달려서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과 내일부터 주말이어서 늦잠도 잘 수 있고 놀 시간이 많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긍정적 정서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중대한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정서는 우리의 지적•신체적•사회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형성하여 위기에 처할 때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활용하게 한다. 긍정적 기분에 취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더 좋아하게 되고, 따라서 우정•애정•유대감이 돈독해질 가능성이 아주 좋아진다.”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63쪽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긍정적 감정이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 준다”라고 했다. 나도 그림책 저자의 제안대로 ‘나만의 기쁨 목록’들을 만들어봐야겠다. 엄마라는 단어 다음에는 아빠라는 두 글자와 카메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