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서의 선택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임원이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다.
남녀 대우의 차이,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제약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참 세상 밝고 긍정적으로 살았다.
회사 5년 차쯤, 앞서 가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성과인데 더 빨리 나아가는 남자 과장.
스펙과 퍼포먼스 모두 모자람이 없는데도 자꾸 뒤처지는 여자 과장.
철없던 때엔 남의 이야기였지만, 연차가 쌓이자 언젠가 내 이야기일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직원 남녀 비율은 비슷하거나 여성이 약간 적은 편이었지만, 위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급격히 줄었다.
회사 전체에서 여성 부장, 여성 임원은 손에 꼽혔다.
그제야 알았다.
유리천장은 구닥다리 은유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구조라는 걸.
우리 부서에는 같은 직급의 여자 상사가 두 분 있었다.
내로라하는 학벌과 탄탄한 실적.
그러나 회사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정 과장님 vs. 최 과장님
정 과장님
기혼, 자녀 2명.
7시면 반드시 퇴근. 남은 일은 집으로 가져가거나 이른 새벽에 해결.
회식·행사·대외 술자리 거의 불참(퇴근 후 육아 스케줄 고정).
사내 교류 적음. 점심에도 집중 근무, 야근 최소화에 초점.
최 과장님
기혼, 자녀 없음.
야근 잦음. 회식·비공식 모임 적극 참석.
클라이언트 밀착 관리, 타 부서 교류 활발.
후배들과 사적 모임을 통해 멘토 역할도 자처.
아이를 낳아 워킹맘이 된다면 정 과장의 루트,
아이를 낳지 않거나 결혼을 미루면 최 과장의 루트.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할까?’
현실은 냉정했다. 두 분 모두 남자 과장의 선배였지만, 승진은 남자 과장이 가장 빨랐다.
최 과장은 돌아 돌아 자기 자리를 찾아갔고, 정 과장은 결국 퇴사했다.
서류상 ‘자발적’이었지만, 그 말이 나오게 만든 국면들을 나는 곁에서 지켜봤다.
조직은 서둘러 팀을 개편했다.
정 과장이 당장 그만둘 뜻이 없었는데도, 떠날 것을 염두에 둔 편성이었다.
실무일 때는 문제 되지 않던 것들이 ‘관리자’가 되자 결격 사유로 바뀌었다.
정해진 퇴근, 회식 불참, 낮은 대내 교류… 모두 발목을 잡는 항목이 되었다.
나는 ‘용병’처럼 그 팀에 합류했다.
겉으로는 “함께 진행”으로 포장해 클라이언트를 안심시키고,
내부적으로는 “관리자 역량”을 지속 점검했다. 조직은 정 과장에게 변화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퇴근 시간을 늦추고, 행사에 참석하고, 영업을 위해 술자리도 나가 보라고.
낯설고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녀는 애썼다.
그러나 그 노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퇴사일이 정해졌고, 조용한 송별회가 마련됐다.
당사자가 원치 않던 이별이었다.
준비할 틈도 없이 등을 떠미는 퇴장.
사람들 눈을 피해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실, 나는 일을 더 하고 싶었어요.”
너무 가까운 자리에서 너무 많은 것을 봤다.
나는 과연 어느 경로를 택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선택의 여지없이 쫓기듯 나가야 하는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사례가 극단이길 바랐다.
나는 다른 길을 만들 수 있다고, 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끝까지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