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함과 잘됨은 별개
열정 한가득.
뭐든 잘하고 싶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으쌰으쌰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나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
‘뭘 그렇게까지…’라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나’가 좋았다.
“와, 뭔가 다르네. 보고서가 확 달라졌어.”
“결론 좋다. 정리가 잘 됐어.”
“신경 많이 썼네. 좋아. 잘했어.”
칭찬을 먹고 자랐다.
그 칭찬에 중독돼 더, 더 많이 욕심을 냈다.
모든 게 내 능력에 대한 인정이라 믿었다.
새로운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야 성장한다고 믿었으니까.
“김연수 대리, 좋은 아이디어 없어?”
“부장님, 클리닉 워크숍은 어떨까요? 프로젝트 결과를 공유하고, 필요한 교육을 패키지로 묶어 진행하는 거예요. 현장의 문제를 더 생생하게 드러내고, 개선안도 스스로 찾게요. 사실,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클라이언트 니즈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서비스로 시범, 다음에는 상품화해서 매출 연결까지요.”
“오, 역시 김대리. 좋아. 말한 대로 김대리가 한번 만들어봐. 다음 주 기획회의에서 발표하자고.”
뿌듯해하는 나와는 달리, 안쓰럽게 보는 시선.
신나게 달리니 우수직원 표창, 해외연수까지.
나는 훨훨 날아올랐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영악했어야 했다.
그 아이디어, 사실 새롭지 않았다. 다들 머릿속에 있던 걸 내가 먼저 입 밖에 냈을 뿐,
그래서 내 일이 되어버린 것뿐.
회사에서 어떻게 포지셔닝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샘솟고, 새 일에 저항이 없었던 나는, 그 후로도 ‘새로운 것’이 필요할 때마다 불렸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맨땅에 헤딩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
성공하면 좋다. 실패하면 독박이다.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 아니면 도.
그리고 누구도 내 기존 일의 양을 그만큼 줄여주지 않는다.
설사 줄여준다 해도 반갑지 않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까,
머리에 이고 지고 살다 보면 야근과 피폐는 금세 일상이 된다.
혼자 신나서 일을 만들다 보면, 주변의 질타와 반발은 덤이다.
새로운 건 추가 작업과 적응이 붙는다.
굳이? 내가 왜?—라는 시선들.
“난도 있는 프로젝트는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그래, 그럼 김대리가.”
“새로운 거 찾는다는데 누구 붙이지?”
“새로운 거? 김대리가 낫지.”
“예전에 김대리가 한 거 참고해.”
일을 잘한다는 건.
회사생활을 조용히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위험을 피해 10년을 채우는 사람.
온갖 장애물을 밟고 오르막만 올라 10년을 채우는 사람.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결과는?
딱히, 나의 개고생이 빛을 발했구나 싶은 건 없었다.
정직하게 말해, 개고생은 개고생일 뿐.
‘승승장구 = 일을 잘한다’는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 않았다.
이런 내 회사생활을 두고 종종 동정의 말이 따라왔다.
“넌 회사생활이 왜 이렇게 어렵냐. 늘 일이 꼬이네. 안됐다.”
조언을 하자면—
언제 나설지 알아채는 동물적 촉,
티 나는 성과를 고르는 영악한 안목,
일 바깥의 사람과 맥락을 챙기는 생활형 정치력.
그런데 꼭,
일 잘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만 잘한다.
그러니 성공하려면 일만 잘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기로.
…그러면서 오늘도 무결점 보고서를 위해 야근한다.
언젠가는 이 노력이 빛을 발할 거라는, 순수한 믿음을 품고.
p.s
“일 잘하는 직원”이 되려 굳이 나서서 했던 경험들이 보잘것없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뜻밖의 자리에서, 그때의 경험이 정확히 맞물려 문을 여는 날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을 허투루 살지 않는 연습을 하고, 경험을 위해 쓰는 시간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지 않아도—그때의 나에게 잘했다고 말해주자.
잘했다, 그때의 나.
믿어보자.
삶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