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성분의 그림자
프로젝트 홀로서기가 자리를 잡을 즈음, 다음 관문은 실력이 아니라 출신이었다.
우리 부서에 계약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처음 도입됐을 때, 그 첫 사례가 나와 동기였다.
우리는 만 2년을 꽉 채웠고, 뒤이어 들어온 후배들은 1년 계약 후 곧바로 정규직 전환.
말하자면 시범 케이스, 가장 긴 시험 기간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뒤로 같은 케이스는 없었다.
젠장.
3년 차쯤엔 계약직도 아닌 공채 경력자들이 들어왔다.
신입은 아니었고, 다른 회사에서 경력 1년 인정, 석사 출신.
서류상으론 후배인데, 체감으로는 달랐다.
스펙은 화려했다. 선배들처럼.
‘나를 계약직으로 뽑은 이유가 그거였나…’ 하는 마음이 스르르 올라오고, 나는 또 움츠러든다.
고용 형태가 다르면 행보도 달랐다.
공채는 본사 공통 연수로 핵심가치·비전·문화를 체계적으로 익히고, 촘촘한 동기 라인이 생긴다.
우리는? 부서 소개와 며칠의 현장 실무 교육 뒤 곧장 실무 투입.
우리 같은 형태가 처음이었으니, 연수라기보다 급조된 부서 교육에 가까웠다.
회사 전반 이해도, 정보의 속도, 네트워크-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 나았다.
그래서 나는 선배였지만 알려줄 게 별로 없었다.
그 순간, 현. 타.
정규직 전환 때, 나는 계약 기간 경력 인정 여부를 인사팀에 물었고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입사 4년 차, 대리 승진 대상이 되는 해.
분명히 기대했다.
그러나 첫 승진 인사 발표에 내 이름은 없었다.
부장님께 달려가 확인했다.
“이번엔 승진 대상자가 아니야.”
“계약기간이 경력에 인정된다고 들었습니다.”
“사례가 없어서, 부서 내부 판단으로 대상에서 제외했어.”
‘이럴 수가 있나?’
‘뭐가 이렇게 허술하지?’
‘사례가 없다는 말로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무시돼도 되는 건가.’
이건 아니지 않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성과가 부족하면 연차를 채워도 승진하지 못한다—제도의 문장은 늘 완벽했다.
결론은, 누락.
그날 처음 알았다.
사회라는 큰 울타리의 불합리 앞에서 논리도 증거도 때로는 소용없다는 것을.
참았다. 모두가 제때 승진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한 줄이 마음에 남았다.
‘사례가 없어서.’
정확히 1년 후, 나는 공채 후배들과 같은 날 대리로 승진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선배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같은 직급, 같은 원점.
공채와 공채가 아닌 자의 선은 이렇게 그어졌다.
금수저 동기, 화려한 공채 후배들까지 —나는 또 그들과 같은 출발선에 섰다.
입사 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날을 오래 기다려왔다.
그런데 마냥 기쁘진 않았다. 어쩌면 이것도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지만, 씁쓸했다.
그래도 부장님, 상무님 방을 차례로 찾아가 인사드렸다.
“상무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세가 내 감정보다 먼저 고개를 숙였다.
꼬여버린 첫 승진.
그렇다고 오래 붙들 순 없다.
‘나 억울해요’를 길게 쥐고 있으면, 내가 못난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성과로 쌓은 시간에도, 출신은 가끔 이름 앞에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게 또 흘려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