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作心)3일] 17편. '열정'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by 삶과앎

불꽃은 또다시 타오르고 있다

전하영


50대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열정’이라는 단어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젊은 청년들의 패기 있는 삶을 대변하는 단어인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2~30대는 어땠을까? 열정으로 가득 찬 시절이었을까? 열정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라도 대답할 수도 있다.

내향적인 성격인 나는 2~30대에도 외현적으로 발산되는 그런 열정적인 모습과 거리감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열정적인 삶을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대 대학생 때는 학교생활 외에 친구들과 컴퓨터 조립 판매와 몇 가지 프로젝트 그리고 창업보육센터에서 디지털 세상을 꿈꾸는 창업가로서의 길을 짧게나마 걷기도 했다.

30대는 20대 때 보다 오히려 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초기 평생학습도시 평생교육사는 열정 없이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이 처음 하는 사업이었고 모든 기획이 새로운 기획이었다. 반면에 1년 살이 계약직이었기에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30대 초반을 보냈다. 우리나라 평생교육정책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물려 다이나믹한 30대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사연 많은 열정의 청년시대를 보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정감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몸속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품은 청년시절이었다. ‘포커페이스’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년시절을 정중동(靜中動)의 삶을 살았다면, 40대 이후는 내면보다 외형적인 활동이 훨씬 많은 삶이다. 40세에 프리랜서가 되어 전국을 다니며 강의, 컨설팅, 연구 등을 10년째 하고 있으니깐.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그렇게 전국을 다니면 힘들지 않냐? 건강은 잘 챙기고 있느냐?’다. 그만큼 열정이 밖으로 많이 쏟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삶은 다가온 50대도 그리고 60대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삶이 지금까지의 삶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젠 세상의 풍파에도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다. 청년시절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내면의 열정을 불태웠다면, 지금은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동적인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변화는 ‘열정’은 이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적이고 더 많은 일들을 쉼 없이 헤쳐내고 있지만 왠지 2~30대의 그 열정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이젠 열정보다 연륜과 관록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물론 이 연륜과 관록 속에 움트고 있는 열정의 씨앗은 잘 간직하고 있기에 또 언젠가 불태울 날이 올 것이다. 고로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조용한 열정 소유자 권창숙입니다.

권창숙


열정적인 사람, 열정이 가득하다. 열정이 넘치다.

냉정한 사람, 냉정하다.

무겁다, 가볍다라는 단어들은 앞에 붙는 단어에 따라서 의미나 느낌이 바뀌기도 하지만 열정과 냉정은 강렬하다. 혼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단어이다.


나에게도 열정적인 때가 있었을까?

갓 발령을 받아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 되었던 때는 나도 열정적이었다.

젊기도 했고, 새로운 인생 2막이 시작된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등교가 아니라 출근이지 않나.

매일 아침 만나는 아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반겨주었다(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이들을 반겨준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반겨줬던 것 같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안녕하세요~”라고 합창을 한다. 자동이다. 아침에 나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해 있는 아이들의 수만큼 그 수가 들리니 가수들이 이야기하는 떼창의 느낌이 이해가 간다)

수업준비도 열심히 했고 매일 업무를 학교에서 끝내지 못하니 한가득 싸서 집으로 가져갔다. 물론 집에서도 다 못 끝내고 다시 학교로 가져가는데도 매일 그 무거운 걸 들고 출퇴근을 했다.

3월에는 학급미화가 있었다. 교실과 복도를 예쁘게 꾸며야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신임교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하물며 당번표도 만들어야 한다. 신발장 이름표도 붙여주어야 한다. 매일 야근이었다.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저녁은 학교에서 배달시켜 먹는 날이 허다했다. 그 당시는 퇴근시간 이후는 인정을 해 주지 않았기에 초과수당도 없었지만 그래도 기꺼이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니 몸이 망가졌다.

열정을 품고 실천하다 보니 한 군데씩 망가지는 곳이 늘어난다.

이제는 마음에는 열정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열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활활 불타오르지는 않는다. 나의 속도에 맞춰해야 한다고 되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어느 순간 또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불타오르는 미친 존재감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조용한 열정 소유자 권창숙’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열정으로 사는 삶

한성근


열정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삶의 동력이 된다.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즐겁고 설렌다. 이런 기분이 열정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너무 뜨거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때도 있다. 열을 나게 하고, 때론 과격해지기도 한다. 에너지가 분출된다. 이런 충돌은 또 다른 에너지를 생성한다. 함께할 사람이 설득되면 몇 배의 에너지를 얻고, 그렇지 못하면 내가 변한다. 이룰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으면 더 좋지만, 능력이 없어도 뭔가를 하게 된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해도 하고 싶다. 그리고 방법을 찾는다 계속 설득한다. 선택은 내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니까 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설득이 안 되면 최종적으로 그 일이 계속하고 싶어지면 부족해도 내가 하게 된다. 이것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다.


열 가지 정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삶을 무한히 사랑하는 애정, 동지들과 나누는 우정, 요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다정, 늘 조율하고 여유를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감정, 모든 것을 골고루 사랑하고 싶은 잔정,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길 바라는 안정,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는 심정, 불의와 편견에 맞서는 무정,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려는 공정, 옳은 일이라고 판단되면 무쏘의 뿔처럼 전진하는 충정!


그래, 그렇게 살아보자! 지난주 어느 유튜브를 보며 매우 공감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첫 번째 옳은가를 생각하고, 필요한가를 생각하고, 마지막에 나는 다정한가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남은 삶을 다정하게 살고 싶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최정연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리듬에 기타의 현란한 연주(토케)가 얹어지면, 거칠지만 뇌를 파고드는 노래(칸테)와 함께 붉은색 주름치마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댄서가 현란한 몸짓(바일레)과 박수(팔마스)로 시선을 빼앗는다. 최근 TV 여행프로그램을 보다가 접한 스페인 플라멩코 카페의 한 장면이다. 그동안 플라멩코를 스페인의 화려한 민속춤 정도로 알고 있던 내게 이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플라멩코 공연은 번듯한 공연장에서 열릴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길거리 카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대도 없이 좁고 기다란 통로 양쪽 벽에 관객들이 자리 잡으면 한쪽에서는 기타 연주와 노래가 라이브로 이어지고 댄서가 등장해서 관객과 부딪힐 듯 치맛자락을 날리며 코앞에서 춤을 춘다. 화려한 춤과는 다르게 댄서의 표정이 묘하게 비장하면서도 슬프다는 것을 눈치챌 때쯤, 나는 그동안 플라멩코를 엉터리로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플라멩코(Flamenco)는 15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gypsy)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하던 집시들은 동굴에 모여 살면서 자신들의 슬픈 처지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게 된 데서 시작됐다. 삶의 고달픔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눌러 담을 수조차 없을 때, 그 비통함 마저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몸짓으로 풀어내야만 했던 집시들의 슬픔이 배어 나온 춤이다.


‘열정’은 플라멩코와 닮았다. 열심히 하는 것은 목적한 바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열정은 다르다. 과정의 즐거움과 성과의 유무에 따라 열정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어도, 사라질 순 없다. 열정은 단순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일과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그 일에 마음이 가니 열심히 하게 되고 자연스레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니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일 때도 많다. 숨길 수 없어 불쑥 배어 나오는 나의 과한 열정으로 인해 타인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정이 분명하다면 멈출 수는 없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화려한 원색의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난 플라멩코처럼, 나의 열정도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내 안의 그 무언가가 나타난 것임이 분명하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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