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전하영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적과 같은 순간이 여럿 있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사고를 피한 경험, 경쟁률이 매우 높은 시험이나 취업에 기적적으로 합격한 일,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황홀한 풍경 등 다양한 경험 속에서도 단연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기적은 나의 삶의 큰 영향을 준 사람과의 인연이 아닐까 싶다.
가수 이선희의 노래 ‘그중에 그대를 만나’의 가사에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등 한 사람과의 인연을 기적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누군가와의 기적 같은 인연으로 지금의 나의 삶에 풍성함을 더하고 있는 듯하다.
안도현의 시에서도 사람과의 인연은 어마어마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왔고, 시련과 좌절의 지점에서 기적처럼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된다. 때로는 멘토(Mento)로서, 때로는 동반자로서, 때로는 동지로서, 때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기이하고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을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당연한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과 악연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나름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한성근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100킬로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데 바로 앞차가 공사 차량을 들이받고 3바퀴를 굴렀다. 간신히 멈춰 선 나는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멈추기에 급급했고, 멈춘 후는 백미러로 뒤차들을 살핀다. 안심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 문을 열고 앞차의 운전자를 응시했다. 차는 앞부분의 반이 없어졌고, 바퀴는 차선을 넘어 굴러가고 있었다. 운전자는 에어백에 쌓여 있었고, 나는 두려웠다. 다가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공사장 인부들이 몰려들었고, 다른 차선의 차들이 쌩쌩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내 차로 돌아간 나는 119와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운전자가 밖으로 나왔는데 30대 남성이었고 상태는 아주 멀쩡했다. 괜찮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답변한다. 사고와 차의 상태에 비해 운전자는 아주 멀쩡했다.
기적이 뭘까? 간신히 사고를 모면한 나일까? 사고에서 무사한 운전자일까?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을 보며 생과 사를 달리 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기적은 지금, 이 순간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 시간, 기적이란 글의 소재로 글을 쓰는 지금,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뭔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긴다.
기적은 요즘이다.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준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와 기대에 기꺼이 응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기적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금한 친구가 있다.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알고 싶다. 함께임을 느낀다.
기적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지만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된다. 웃음이 지어진다.
어쩌면 죽는 순간도 기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또 다른 세계로의 초대에 응하고 있는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의 소리가 들린다. ‘와~’, ‘오~’ 감탄의 언어다. 내 삶을 감탄으로 만들고 싶다.
권창숙
2004년 한 아기를 만났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지금은 장성한 이 아이가 예전에 가끔씩 나에게 묻곤 했다.
“엄마, 만약에 아빠랑 결혼 안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널 못 만났겠지.”
아이가 이 대답을 들으려 물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이다. 그 아이를 만난 게 기적이다. 내 삶의 커다란 변곡점이다.
모든 것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누군가와의 만남 그 자체가 기적이지 않을까.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각에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용기 내지 않았다면, 내가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 누군가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적이 없었다면 내 삶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적은 나의 의지이자 나의 바램이 만들어내는 선물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기적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어딘가로, 이루도록 도와줄 누군가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가는 길이 열린 것일 뿐이므로 기적은 목적이 아니다. 도착지가 아니며 결과가 아니다. 나의 바램이 기적을 마주했을 때 그 기적이 나의 변화의 이유가 되어 줄 수도 있고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으며 기준이 되어 그 바램이 더 명확해지고 나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간절함, 진정성을 가지고 삶을 마주하자.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또 기적이 일어날 것이므로 늘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최정연
유난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복권 1등 당첨 같은 대운까지는 아니어도 살면서 소소한 행운은 늘 우리 옆에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중고등 시절엔 시험 당일 마지막 펼쳐 본 부분이 어김없이 문제로 떡하니 나왔고, 떠오르는 감으로 대충 써넣은 주관식이 정답인 경우도 많았다. 대학 때는 시험 기간이어도 도서관 열람실 자리를 잡기 위해 딱히 애써 본 기억이 없는데, 도서관 메뚜기(자리 주인이 앉아 있지 않은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로 잠시 앉아 책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자리 주인이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떠나 내가 그 자리 주인이 되었다. 주차장이 만차여도 어찌할지를 고민하는 순간 때마침 움직이는 차가 꼭 한 대는 있기 마련이었고, 선착순 줄을 서도 내 순서 앞에서 끊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운이 일곱이고 재주는 세 개라는 뜻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운 좋게 어떤 일이 성사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의 성패는 운에 달린 것이지 노력에 달린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노력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말 같아서 별로라 생각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세상일이 내 뜻대로만 될 수는 없으니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실망만 하지 말고 기운을 핑계 삼아 다시 힘을 내라는 뜻이리라.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기적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나비효과처럼 반드시 이전에 일어난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했으니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시험 직전에 펼쳐보았을 거고, 가방도 제대로 못 풀고 집중하는 메뚜기를 보며 자리 주인은 새벽부터 열심히 하루를 시작한 자신에게 커피 한 잔을 선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주차 자리가 없다고 서둘러 포기했더라면 나에게 올지도 모를 70%나 되는 행운을 스스로 저버렸을 것이고, 선착순이라는 긴장감과 간절함이 내 발걸음을 더 바삐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결국, 30%의 노력이 70%나 되는 운을 끌어내어 나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착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연결고리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운칠기삼의 착각은 나를 계속 ‘유난히 운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행복한 기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