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作心)3일] 19편. '소망'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by 삶과앎

소망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전하영

올해는 공휴일과 임시휴일까지 겹쳐 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있다. 추석이 되면 둥근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이처럼 명절이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소원을 비는 것이 하나의 풍습처럼 내려오고 있다.

‘소원(所願)’은 말 그대로 바라고 원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날 특별한 존재에 특별히 바라는 것을 비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갖고 싶은 것에서부터 이루고 싶은 것까지 다양한 소원을 빌었고 지금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빈다. 소원을 빌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소원’과 같은 표현인 ‘소망(所望)’이라는 말이 있다. 둘 다 바라고 원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느낌이 조금 다르다. 소망은 왠지 더 마음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 많이 바라고 더 간절한 느낌이라 할까? 아마도 ‘희망’, ‘열망’과 같은 표현들과 함께 쓰인 ‘망’이라는 글자가 간절한 마음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듯하다. 더불어 “그대가 OO 하기를 소원합니다”라는 표현보다 “그대가 OO 하기를 소망합니다”라는 표현이 느낌적으로 더 좋다. ‘나의 소원’보다 ‘그대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소망’하는 이타적인 마음도 느껴지니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야간 산책을 여러 번 했다. 휘영청 둥근 보름달도 보고 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고운 자태를 뽐내는 보름달도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망’을 속삭였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소망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소망도 담았다. 덤덤한 눈빛으로 보름달을 바라보았지만 큰 소리보다 더 꽉 찬 마음의 소리로 소망을 외쳤다.

나의 소망들이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라는 것들

한성근


명절이 되면 소망에 대해 말하게 된다. 둥근달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며 덕담을 나눈다.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한다. 짧은 글과 말을 통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그 소망이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소망은 희망과 꿈 그리고 사명과 비전 등과는 다르게 소박한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느끼는 바라는 것들이 떠오른다.


내가 하는 생각이 바른 것이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이 옳은 것이면 좋겠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규칙적이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상쾌했으면 좋겠다. 3끼를 적당히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할 일들을 지혜롭게 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적당히 운동하고 잠시라도 고요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저녁에 지인들과 안부를 묻는 통화를 했으면 좋겠다.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다. 때때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일상들에 대해 적어 보니 잘하고 있나? 자문해 본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지켜지길 소망해 본다. 나는 그들의 재능이 잘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들의 지인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을 하는데 부족하지 않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끔 내가 생각나기를 바란다. 그래야 날 아는 사람이리라! (또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차별 없는 곳이길 바란다. 편견과 선입관으로 불평등한 일들이 없기를 바란다.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데 어려움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원하는 걸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취미와 관심이 비슷한 사람이 서로를 학습하는 모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재능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지구의 환경이 모든 생명체가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게 할 수 있게 지켜졌으면 좋겠다. (더 큰 미소가 지어진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작은 소망에서 희망과 꿈으로 마무리가 된듯하다. 오늘도 기분이 좋다.!




나는 소망한다

권창숙

소망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소망? 소원이랑은 뭐가 다르지?

‘알라딘은 램프의 요정에게 세 가지의 소원을 빌 수 있어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000의 소원은 뭐야?’‘제 소원은 000입니다’

소원이란 단어는 익숙한데 소망이라는 단어를 내가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검색을 해보니 소망과 소원은 현실적 또는 좀 더 불확실한 것이라든지, 소망은 종교적 의미가 짙다라든지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의 관점에서 소망과 소원을 정의해 보기로 한다.

소원은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따라서 한 가지에서 많으면 두 가지 정도로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의 이유와도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소망은 조금은 현실적이며 실현가능하며 단기적일 수도 있고, 수적으로는 많을 수도 있다. 이렇게 구분한 것은 실은 단순하다. 나무라는 단어를 붙여보았을 때 ‘소원나무’ 보다는 ‘소망나무’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가지에 소망을 달아본다.

큰 가지 하나는 개인적인 소망으로만 달아보기로 한다.

조금은 나의 몸이 건강해지길

내게 주어진 기회들을 잘 완수하길

계획된 일들을 끝까지 포기 말고 노력하길

공부하는 시간에 깊이 매진하길

나의 취미생활을 만들길

단단한 내면근력을 만들길

새로운 도전에 두려워말길

개인적인 소망만도 이렇게 많다니. 나의 소망나무에는 소망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 소망열매가 조금씩 자라고 맛있게 익어가는 때가 올 것이다. 소망열매마다 익어가는 시기가 다를 테지만 거름도 주고, 햇살도 듬뿍 보게 하고, 물도 주며, 말도 걸어주어야지. 소망열매가 익어가는 소리, 빛깔, 냄새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폼나게 바람을 쫓는

최정연


아하는 영화가 있다. 2009년 개봉한 ‘바람’이라는 작품인데, 실제 주인공의 학창 시절을 모티브로 하여 부산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어설픈 부산 사투리가 아니어서 속이 시원했고 웃긴 장면이 참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고 눈물이 나는 영화다. 90년대가 주요 배경이지만 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 시절에만 부릴 수 있었던 객기와 멋스러움도 곳곳에 숨어있다. 실제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케이블 채널에 워낙 많이 나오기도 했고 부산 사투리가 너무 리얼해서 자꾸 보게 되었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이 과연 저 주옥같은 대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입소문이 나면서 어둠의 경로를 통해 뒤늦게 본 관객이 많아서 실제 관객 수에 비해 인지도는 매우 높은 영화였다.


엄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형'과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한 누나'와는 다르게 폼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었던 주인공 짱구의 1인칭 시점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해 골칫덩이가 되고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알아가며 겪는 성장 이야기가 주된 흐름이다. ‘쪽팔리지 않고 싶었던 열여덟 짱구는 그의 바람대로 폼나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쪽팔리지 않고 싶은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궁금했지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제목이다. ‘바람’이어서 당연히 질풍노도를 떠올리며 wind를 짐작했던 내 예상을 벗어나 포스터와 메인 소개에 친절히 적혀있던 wish를 나는 영화를 3번쯤 본 뒤에서야 알아채고는 뒤늦게 감탄했다.


감독은 왜 굳이 wish를 선택했을까. 영화를 곱씹으며 느낀 내 어림짐작일 뿐이지만, wish는 ‘무언가를 바란다’에서 ‘무언가’라는 목표보다 ‘바란다’라는 막연함과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에 방점이 찍혀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wish는 소원과는 또 다른 아련함을 주는 소망과 닮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소망하는 것이 있지만,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짱구가 바라던 폼나는 학창 시절이 평범하게 마무리되어 가면서 남는 아쉬움은 절대 시시하지 않았다. 우리도 짱구처럼 소망을 꿋꿋하게 따뜻한 달처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폼나게 바람(wish)을 쫓는 바람(wind)처럼 그렇게 가을 하늘을 유유히 떠돌고 싶은 날이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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