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온몸을 싸늘하게 감싸며 휘몰아치는 바람에 잠시 주춤하다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와 점퍼를 꺼내 입었다.
“아! 10월의 하순이었구나!”
계절의 변화를 바람으로 바람처럼 느꼈다. 이처럼 바람은 나의 일상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 준다. 오늘의 바람은 여전히 호기롭게 ~~~ 감기 조심해라는 경고와 같은 바람이다.
바람은 계절의 전령사다. 학창 시절 자연시간에 바람의 다양한 이름을 외운 적이 있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곳도 다르고 세기도 다르다. 바람이 계절을 만드는 것인지 계절이 바람의 색을 다르게 하는 것인지 과학적인 지식이 아닌 느낌이 중요하다. 바람을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나의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서 사는 것인지 내 삶이 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것인지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변화 속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내 삶은 충분히 괜찮다. 세상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요즘 바람은 햇살 받으면 시원함을 주고, 그늘에 서면 서늘함을 준다. 같은 바람인데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짙은 가을의 색이자 건강을 챙기라는 신호와 같다. 건강한 삶은 때와 장소에 맞는 삶이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는 어떤 바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는 건
한성근
가을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분다고 하고, 겨울이 되면 차가운 바람이, 봄이 되면 따뜻한 바람이, 여름이 되면 더운 바람이 분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부는 바람은 그 계절의 정체성을 닮았다. 가을바람은 총각 바람, 봄바람은 처녀 바람이라고 한다. 왜일까? 미소가 띠어진다. 바람에 사람이 영향을 받나 보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나도 남자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가을이 되면 어딘가 가고 싶어 진다. 요즘도 주말엔 강으로 산으로 바다로 짧은 가을이 주는 기분을 만끽한다. 사람도 바람도 ‘람’자로 끝나나니 서로 닮는 걸까?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도 어쩌면 바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태양의 고도가, 해의 길이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모두 같은 맘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과학은 말하고 있지만 나는 바람이 만들었다고 고집을 부리고 싶다. 바람이 부니 시간의 변화를 더 잘 느낀다고, 바람 때문에 모든 생물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바람이 생명을 더 생명답게 만들어 준다고…….
바람이 불면 부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두면 된다. 바람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존재한다. 어디든 존재한다. 그곳의 기온과 분위기에 적응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공간을 바꾸어 준다. 고여있는 물이 썩듯이 고여있는 공기도 썩는다. 그래서 사방이 막힌 곳에선 바람도 그 힘을 잃어버린다. 열린 공간이어야 바람의 좋은 영향을 누릴 수 있다. 바람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산책을 하면 고요한 중에도 바람은 소리를 만든다. 나무소리, 풀소리, 한 곳을 지키는 것들에게 바람은 그들의 소리를 가지게 한다. 바람은 참 위대한 존재다.
시인들은 바람의 위대함을 벌써 알고 있었다. 별이 바람에 스친다거나, 바람의 노래,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이 등을 타고 날아다니는 낙엽 등 아름다운 심상을 주는 언어로 쓰인다. 속담도 있다. 바람 부는 대로 살아라, 바람 따라 돗을 단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바람 앞의 등불,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 등 우리의 삶도 바람을 많이 닮아간다.
그래 나도 바람처럼 살아보자. 계절의 정체성을 찾아주듯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이 역할을 다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자연스럽게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오늘도 바람이 내 귀를 스친다.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되기를
권창숙
토요일 아침
옷을 챙겨 입고 버스를 타러 정거장으로 간다.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가서 환승을 한다. 소상공인 공단에 강사로 등록되어 있는 나는 폐업자들을 위한 재취업 강의도 하고 있다. 프로그램 내의 여러 강좌 중 커뮤니케이션,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늘은 자기소개서 강의다. 자기소개서에 대한 안내를 하고, 방법을 전달하고 작성까지 하게 되는데, 이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이 가져갔으면 하는 건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익히기보다는 경험 탐색을 통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다.
얼마 전 강의에서 만난 40대 남자분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당장 돈 고민 좀 안 하고 머릿속이 비워져서 잠 좀 편안하게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매일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 고민에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거의 70을 바라보시는 한 어머님은 한평생을 남의 집 식당에서 일했다고 하시면서 당장 어디든 주방에서 써주는 데만 있다면 가실 거라 하신다.
이분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 방법적인 걸 전달드리더라도 결국 무엇을 쓸 것인지 그 내용을 찾지 못한다. 집에 있으면서 우울감만 커지고, 이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지난날들을 헛산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바람’이란 풍전등화(風前燈火), 비바람, 풍파(風波)처럼 매섭고, 차갑고, 거친 어려움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나는 그분들의 마음에 부는 시원한 바람이고 싶다.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을 일으키는 바람이고 싶다. 이분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자기 탐색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살아온 삶이, 그 시간이, 그 경험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아셨으면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날 수 있는 힘을 가지셨으면 한다.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 삶에 대해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은 삶이구나,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자. 한 발 한 발 소중한 경험들에 감사하며 가 보자’라고 나에게 말한다. 강의를 하면서 내가 다시 배운다, 그리고 내가 그분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또 다른 곳에서, 다른 분들에게 전달하는 나를 ‘연결자’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살게 하고,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하고, 용기를 내게 하는 ‘삶 지킴이’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곡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꿈을 위해 바람이 부는 곳, 그곳으로 가고자 한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이 불어오는 곳’ 中
늦바람을 아십니까
최정연
가을이 아무도 모르게 숨고 있다. 정신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나뭇잎은 단풍으로 물들기도 전에 낙엽으로 중간 생략되어 이미 땅에 떨어져 있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은 벌써 겨울인가 싶을 만큼 찬데도, 한낮에는 더워서 땀을 흘린다. 여름도 겨울도 아니니 그사이 존재하는 가을이 분명할 텐데, 도대체 어디 숨었는지 가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게 가을을 느끼려고 애쓰는 사이 언제나 그랬듯 겨울이 훅 다가오겠지.
꽤 오래전 이긴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 레빈슨(Levinson)은 사람의 생애를 계절에 빗댄 연구를 발표했다. 인생의 사계절로 불리는 이 이론은 성인기를 네 개의 시기(성인전기-중기-후기-노년기)로 나누고, 안정된 각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중간에 세 번의 전환기를 겪는다는 이론이다. 내게 호기심을 일으킨 건 전환기였는데, 결혼과 육아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꾸 생겨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던 차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긴 생애 사회로 불리는 요즘에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나이는 다소 맞지 않지만, 불안정기에 수행해야 하는 주요한 생애 과업들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첫 번째 전환기는 기존 가족으로부터의 분리와 꿈을 추구하고(아마도 결혼이나 독립을 의미하는 듯하다), 직장, 가정, 친구, 사회에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성인 중기로 넘어갈 때 나타난다. 지난날의 삶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고, 삶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며 위기의식을 느끼는 때이다. 두 번째 전환기는 가정과 직장에서의 관계 재정립 후 보낸 중기의 안정기를 재평가하는 시기다. 세 번째 전환기는 은퇴와 신체적 노화에 대비하는 시기로 인생 주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때이다. 마치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환절기 같다. 그런데, 그 환절기를 우리나라의 성인들은 과연 제대로 조용히 알아보고 고민할 여유가 있었을까.
특히, 가을과 겨울로 가는 환절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과 무게를 체감하게 한다. 봄과 여름을 거치며 ‘그래도 잘살고 있다’ 싶다가도 여전히 ‘그런데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분명, 평생학습 현장에 유난히 중장년의 성인들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내느라 못 가져 본 자신을 이제야 제대로 탐색하고 있다. 춤추고 그림을 그리며 인문학을 고민하고 음악에 취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를 천천히 탐색한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재능과 취향을 발견하고 자가 충전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미 사라져 버린 듯한 가을도 만끽할 수 있고 다가올 겨울도 포근함을 기대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내가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환절기의 늦바람을 즐겼으면 한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