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3, 링로드와의 조우
전날 저녁부터 추적추적이던 비가 아침까지 내렸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플뢰디르.. 나무별장같이 생긴 집에 들어가면 중간에 소파와 티비 등 작은 공용공간이 있고(취사 불가),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두 개가 있는데, 북유럽 답게(?) 깔끔하고 깨끗했다.
뭐 이 정도면 적당하다 싶던 조식이 포함
Smjor 버터가 맛있었다. 다양한 사퀴테리와 과일 비스킷등, 접시에 담아 온 것보단 많은 것들이 준비돼 있었다.
살인물가에 여행객들이 워낙 샌드위치 만들어서 싸갖고 간 일이 많았는지, 포장은 얼마를 내고 가져가라고 쓰여 있었다.
신기한 게 아침부터 TV에 알싱기Alþingi가 틀어져 있음. 세계 최초로 10세기에 시작된 아이슬란드의 의회를 알싱기라고 부른다. 전날 다녀온 싱벨리어 야외 언덕에서 진행되던 게 원형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외국 여행객들이 대부분인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식당에 국회방송이 틀어져 있는 건데 좀 신기했다. 이 나라 자부심인가? 인구 32만 명이면 직접민주주의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닌가…
2일 차, 조수석에서 하루를 시작! 촉촉한 비랑 높이 솟은 침엽수들이 제법 북유럽 같다. 남쪽으로 내려가 링로드를 만나서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날이다.
이동 거리가 긴 날이었다. 이날의 종점은 라키 호텔.
드디어 만난 링로드! 링로드는 말 그대로 섬나라인 아이슬란드 외곽을 빙 도는 도로다. 무려 ‘1번’ 국도인데 오는 차선 가는 차선 딱 1차선이다. 초행길인 우리가 서행하면 바로 뒤차가 우리를 앞지른다. 그게 왜 가능하냐 하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없다. 한참을 가는 동안 우리 차 말고 다른 차를 아예 못 본 일도 허다하다. 나중엔 우리도 간땡이가 부어서 앞 차 속도가 조금 답답하다 싶으면 몇 번 추월을 하기도 했다.
여기가 길이다 표시하는 건 (물론 아스팔트지만) 양쪽에 있는 노란 막대기들뿐이다. 우린 초여름에 갔으나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이라면 그냥 저 노란 막대기만으로 길을 파악해야 하겠구나 생각하니 아이슬란드놈들 이거 많이 허술하군 절대로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뭐든 과잉이다.
차선 밖으로는 가끔 충분한 공간들이 있어서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차를 잠시 정차시킬 수 있었다. 물론 도로를 걸어서 가로지르는 것도 쏘 이지했다. 차가 안 오니까……
가끔은 길이 좁아지면서 양방향 차선이 하나로 합쳐질 때도 있었다. 울릉도에서도 많이 봤던 건데… 저쪽에서 차가 먼저 서 있으면 우리가 먼저 가고, 우리가 먼저 멈춰주면 저쪽에서 차가 먼저 오는 식이었다. 베리 나이스하게 한쪽 손을 들어 “땡큐”의 의사를 표현하면 저쪽도 베리 나이스하게 받아쳐 줬다. 멋진 느낌이 들었다.
링로드를 가다 보면 셀야란즈포스Seljalandsfoss가 왼쪽에 나타나는데, 딱 보면 저기구나 싶다.
핸들을 꺾어 폭포 쪽으로 가까이.
엄청난 바람에 사정없이 물보라가 치는 것을 본 우리는 비옷을 챙겨 입었다. 우리는 둘 다 방수되는 바람막이를 입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비옷은 무용지물이었음. 그냥 스키바지 같은 걸 가져가세요 여러분.
셀야란즈포스는 폭포 안으로 오목한 공간이 있어서 안에서 밖으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 도달하는 동안 우리는 바지와 신발, 양말이 다 젖고 얼굴은 찬물세수를 한 것처럼 초토화됐다. 사진이 성한 게 없다.
진을 다 빼서 옆에 있는 글리우프라뷔는 포기하기로 했다. 기대되는 곳 중 하나였는데 쿨하게. 또 물을 맞을 자신이 없었다.
물싸다구 맞은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데는 새우탕이 최고다.
두 번째 목적지는 스코가포스Skogafoss. 엄청난 유량에 속이 다 시원하다.
강이 얕아 보이는데, 저 정도 유량이면 깊으려나?
조금 더 가까이에서 쏟아지는 물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물이 갈라지는 곳이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그 부분이 검어 저 장막 속에서 악마 같은 게 나올 것 같았다.
이곳에도 무슨 설화가 있었는데… 저 폭포 안쪽에 옛날 바이킹이 숨겨놓은 금괴 같은 게 있어서(?) 어떤 사이좋은 친구 두 명이 그걸 빼내려고 시도를 했다 했나 아님 하려다 실패했다 했나 아님 성공했다 했나. 무튼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무슨 뮤지엄 같은 것도 주변에 있다 했음. 물론 안 감.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가파른데 바람이 불어 계단이 삐그덩 거린다. 엄청난 강풍이 때리면 주저앉아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올라갈 수 있었다.
전망대 밑이 뚫려 있다.. 아찔하다.
그리고 엄청나게 시원하다.
전망대부터 트레킹 코스가 있다. 잠깐 걸었는데 멋있는 폭포가 또 나왔다. 자연 그 자체.. 초록이 너무 좋아 한참을 봤다. 조금 더 걷고 싶었지만 여기까지만.
시간 여유를 더 두고 이런 좋은 길이 나올 때마다 정처 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여행을 기약.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불었는지, 사진은 내가 뒤로 한껏 누운 건데 바람이 나를 받쳐주는 모습이다. 진짜로…
울 남편도 바람에 맞서고 있다. 용감해 보인다. 이러다가 갑자기 우박이 떨어져서 폼 잡던 거 멈추고 차로 전속력 달리기.
이 바람에 해안절벽 갔다가 뭔 일 생기겠다 싶었던 쫄보 둘은 디르홀레이를 패스하기로 했다.
비크Vik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하나 가격이 2만5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불맛 나는 햄버거는 맛이 있었고 안 뜨거운 핫초코는 배신이었다. 버맥을 하고 싶었지만 운전해야 하기에… 그리고 몸이 차서 시원한 맥주를 맛있게 마실 것 같지 않았다.
잠깐 지나친 비크는 너무 아기자기 예쁘고 귀여운 마을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제 숙소 가는 길.
동쪽으로 갈수록 양쪽으로 끝없는 이끼 지대가 펼쳐지는데, 잠깐 차를 세우고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두었다. 엘드라운Eldhraun.
화산지대가 생긴 뒤 가장 먼저 이 땅을 덮는 이끼들. 기특하다. 폭신폭신해 보이지만 생각보단 거칠다.
실제로 보면 신비로운데, 사진에서는 다소 울룩불룩 징그러워 보이기도 한다.
다시 보니 막 그렇게 예쁜 이끼는 아닌 것 같다. 일본 정원이랑은 다른…
이날의 숙소 호텔 라키Hotel Laki,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차 문 열고 나오다 차 문이 꺾일 뻔했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스웨터를 입은 친절한 털보 직원이 체크인을 해줬다. 역시나 트윈베드룸.
이때가 저녁 6~7시쯤이었는데 어쩌다 싸우고 잠들어버리는 우리는… 저녁을 스킵하고야 말았다…
새벽 1시에 깨서 밖을 보았는데 하늘이 밝았다. 이게 백야인 거야? 창백한 하늘과 검은 땅, 그리고 늦은 여행자를 맞아줄 노란 불빛이 너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