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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 Aug 18. 2023

아이슬란드 Day3

230524 회픈까지 동으로 동으로

호텔 라키에서 눈을 떴다. 밤새 바람부는 소리가 거셌던 것 같다. 아이슬란드 방들은 온돌도 없는 주제에(!) 신기하게도 난방이 꽤 잘 된다. 라디에이터 성능이 빵빵하다. 여행 내내 이걸 볼 때마다… 옛날 신촌서 자취하던 오피스텔, 비리비리한 라디에이터 하나에 의지해야했던 두번의 겨울이 떠올랐다;;;


오늘도 조식포함. 이 집은 제법 호텔식이었다. 음식들이 정갈하고 예쁘게 마련돼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사진찍기가 민망했음.


어제 저녁엔 주차된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못 봤는데 은근 밤새 체크인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 자체로 너무 재밌다 각지에서 여행자들이 밀려오고, 몸을 쉬이고, 똑같은 아침을 먹고 또 다음 목적지로 흩어진다.


우리 접시만 하나 찍음

많은 거 필요없고 이정도 야채랑 햄 정도만 우리집 냉장고에 항상 구비돼 있다면 더 건강한 인생일텐데…


사실 이곳의 진면목은 따로 있었으니…


바람이 엄청 부는데 사진에는 잘 담기지가 않아…

뷰가 정말 좋았다. 만 안쪽으로 깊게 들어온 바닷물과 저 너머 산, 빙하까지 한눈에!


식사를 다 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남편 매의 눈에 포착된 ‘아이슬란드 사가'.


갑자기 학구적

나는 자연 그자체를 보면 그저 좋고 충족되는데 남편은 다르다. 남편은 이야기가 없는 풍경은 지겨워한다. 아이슬란드에 기꺼이 따라와 준 이유도… 잘은 모르지만 아이슬란드 사가가 한몫 했을 거다. 오타쿠답게, 랄까… 첫째날 기념품숍에서 무슨 진짜 얇고 작은 핸드북에 꽂혀서 하나 샀는데(무려 우리돈 3만원), 이날 식당 옆 라운지에 저렇게 본격적인 사가 전집(?) 같은 게 있는 거다.


심지어 저 책의 추천사를 프레지던트 오브 아이슬란드가 썼다. 잠시 책타임. 여기서 무슨 만화에 나오던 이름의 기원을 찾았다고 했나 그랬다.. T로 시작하는 이름이었다.


창밖이 넘 좋았다

체크아웃 전 한컷. 이곳도 보다시피 트윈베드^^ 근데 아무래도 내 생각에 아이슬란드 호텔들은 여행자들이 잠 편하게 자고 잘 충전해서 다음 여행지로 가라고 트윈 베드룸만 만들어놓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트윈룸을 선택한 적이 없다;;;


오늘도 바람막이 차림새. 거의 단벌신사. 커다란 배낭.


39km는 금방이쥐

또 다시 출발, 알고리즘이 인도한 패닉의 로시난테.

아이슬란드 바람에 늙고 병들어버렸지만.. 오늘도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링로드에 찰떡이었다.


얼마 안 가서 차를 멈춰야 했다. 멋진 폭포가 나타났다!


사진 속 노부부는 저 거리에서만 사진하나 찍고 쿨하게 떠나심

그냥 길을 갈 뿐인데 이런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뒤편에 있는 산도 절경이다.


오바 많이 보태서 나이아가라 폭포 같이 생김

또 얼마가지 않아 엄청난 높이의 산이 나타났다.


빨간바막 튄다 튀어

저걸 산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주변 땅과 달리 물과 바람에 덜 침식되어 우뚝 솟아있듯이 노출된 지층… 그 아래는 흘러내린 모래들 흩어진 돌들.


존재감이 대단했던지라 다시 서쪽으로 돌아가면서도 이 산이 언제 나올지 기다리면서 운전했다.


새로운 길이 계속 나온다. 아스팔트 새로 까는 길도 나오고, 아스팔트가 아니고 그냥 검은 돌들이 양쪽 몇km씩 널려있는 지대도 있다.


빙하가 가까워진다!

달리는 내내 왼쪽에 빙하가 계속 이어지는데 장관이다.

'메롱' 모양으로 계곡 타고 내려온 빙하들도 유장하다.


첫번째 목적지 스바르티포스Svartifoss 가는 길.


바람막이를 안에 입고 패딩까지 겹쳐입었음

스카프타펠 빙하 바깥 한구석탱이에 있는 주상절리 폭포다. 멀리 눈 닿는 곳엔 설산들이.. 아래 사진 왼쪽 푹 파여있는 검은 지대가 스바르티포스다.


아이슬란드 폭포 중 제일 궁금했던 폭포다.


조금씩 가까이

파이프 오르간 같기도 하고 피아노 건반 같기도 한 스바르티포스. 자연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만들까?


공연장에 온듯

전망 데크에서 보온병에 따라 온 커피 마시는 커플, 부러웠다.. 이 사람들 두시간 뒤 카페에서 또 마주침. 문제의 카페 이야기는 뒤에 차차 하기로 하고..


내려오는 길도 저 멀리 빙하가 보인다. 아래 오른쪽 잔디는 캠핑 지역. 여름엔 캠핑을 많이 하나 보다. 캠핑카 여행도 로망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에 여행객이 몰리는 한여름이 아닌 5월말이라 모든 여행지가 이렇게 한산했다.


나중에 다시 오면 여기 누워서 별 보고 싶다. 아무런 빛 방해가 없을 것 같다.


근데 엄청 추워보인다.. 맞다 추웠다.

겉은 참깨라면, 속은 튀김우동… 작은 튀김우동 2개를 컵 하나에 욱여서 끓여봄 덜 익어도 맛있다 후 하 후하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


바람이 점점 더 어마어마하게 불더니, 결국 도로가 닫혔다. 링로드 진입하고 난생처음 보는 교통체증(앞에 차 다섯대 정도?)이 생겨서 무슨일인가 했는데 경찰차가 도로를 막아 놨다.


아이슬란드 도로 상태를 보여주는 앱을 서둘러 켜보니 이 구간이 빨간색이다. 바람 때문에 통행불가 싸인이 떠 있다.


우리 순서가 되자 친절한 경찰아저씨가 왔다. 도로가 닫혔는데 너네 지금 못 가, 어디 가서 도로가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떻겠니? 라고 했다. 언제 통행 재개될 것 같아? 물어보니 호프풀리 투 아워즈? 라고 했다.


바람이 진짜 겁나세게 불기는 했는데.. 타고 있는 SUV 차량 핸들이 휘청휘청일 정도. 글킨 한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바람이 불어도 뭐 절벽도 아니고 막 어디서 돌이 날라올 것 같지도 않은 벌판인데(해풍이었음), 이 나라에선 이러면 도로를 닫아버리나 보다.


빨강이 초록이 되길 오매불망

차를 돌려 5분쯤 전에 봤던 카페로 퇴각했다. 이곳은 카페 바트나요쿨Cafe Vatnajokull.


이날의 여행자 동창회가 열리고 있다. 도로 폐쇄에 이 카페는 노가 났다. 지역토착비리 의혹?


다시 길을 떠나려 분주해진 사람들

우리는 커피 하나씩 시켜놓고 책도 보고 사진도 정리하고 시간을 보냈다. 우리 바로 옆에 앉았던 사람들은 스코가포스에서 우리 사진 찍어줬던 커피 커플.


해가 워낙 긴 여름이라 한두시간 일정이 늦어진다고해서 전혀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래 사진 속 형광잠바 입은 사람이 들어오자 일시에 사람들 눈이 쏠렸다. 경찰인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도로 상황을 알고 있을 것 처럼 생겼으니까.

그는 “더 로드 이즈 오픈 나우!”라고 선언했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우리도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뮬라글뤼퓨르Mulaglijufur 계곡이었다.


구글에서 ‘턴 투 뮬라글저푸르 캐년’이라는 핀을 찾으면 그게 입구다.


왼쪽으로 꺾어 비포장도로로 2km쯤 가면 작은 주차장이 하나 나온다. 이 구간 완전 다들 서행해서 완전 터덜터덜이었다. 솔찌키 더 익스트림한 오프로드를 달려보고 싶었지만(도강도 좀 해보고) 남부 여행만 한 우리는 이 정도 비포장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능선을 오르다 보면 이런 계곡이 나온다. 정말 아름답다.


차라리 아래로 걸을 걸 하는 생각 했다.

그런데 진짜 바람이 몸을 휘청이게 하는 정도다. 돌풍이 불고 중심이 흔들리면 그냥 주저앉아서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길은 바로 절벽 옆인데, 우리는 더 들어가려다 말고 이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한국에 있는 엄마아빠 얼굴이 생각나가지고… 나는 탐험정신에 비해서 겁이 많다.


드디어 요쿨살론Jokulsarlon.


기여운 우리 레니게이드

영상으로 사진으로 정말 많이 봤던 곳인데 실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입구부터 너무 설레가지고… 으앙..


그냥 여러가지 사진들


저 멀리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떠다닌다. 빙하 호수가 정말 맑다.


파란색 부분은 공기와 접촉한지 얼마 안 된 쪽이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하늘색 유빙은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 뒤집혔나 보다.

검정색 테는 화산재다. 빙하에도 나이테가 있다니 신기해


또 갈 수 있겠지?
좀처럼 없는 인공구조물

다이아몬드 비치Diamond Beach로 가는 길에서 요쿨살론 쪽을 바라본 모습.

요쿨살론에 있다가 바다로 더 떠내려온 빙하들이 작게 부서지면서 검은모래 해변에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같다, 해서 다이아몬드 비치다.

근데 바람이 너무 불었고… 사람들이 실망한듯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굳이 해변까지는 안 가기로 했다. 쿨한 타입.


소기의 목적들을 달성한 우리는 회픈Hofn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지체없이 달렸다.


프사다!

또 가는 길에 차가 몇 대 대어져 있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길래 순록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방목해서 키우는 양들이었다.


그래도 남편이 줌 땡겨서 찍은 내 뒷모습 사진이 남아서 초콤 좋다.


회픈은 아주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고 참 예뻤다. 차로 한바퀴 도는 데 3분컷…?

보통 남부여행은 이 마을을 찍고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루트다. 우리도 이곳이 젤 동쪽 숙소였다.


회픈 하이 호스텔Hofn HI Hostel, 여기는 진짜 너무 좋았음. 그야말로 시스템이 갖추어진 호스텔이었다. 부엌도 넓고 모든 집기가 구비돼 있고 깨끗하기까지. 화장실 샤워실도 완전 깨끗함. 회픈 숙소 추천요! 미국에서도 몇번 이용했던 HI 호스텔 체인인듯(?뇌피셜). 숙소 퀄리티가 점점 좋아진다. 계획했던 건 아닌데 계획했다고 하자. 큰 그림..


짠 해야지!

서울서 공수해온 오뚜기밥, 비비고 볶음김치, 동결건조 된장국, 김 그리고 맥주로 저녁식사

해가 안 져서 맥주가 계속 들어감.

뿌듯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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