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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한삶 Sep 08. 2022

그 시절 나를 계속 살게 해 준 힘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최고의 말

사실 나는 그리 살가운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마음먹으면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그 마음을 잘 먹지 않는달까. 일단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다. 학창 시절 매일 보는 학원 친구들의 이름도 외우지 못한 채 1년이 지나기 일쑤였고, 15년을 산 아파트의 주민들이 몇 층인지도 알지 못한다.


매년 1월 1일이면 하는 다짐 중 하나는 '올해는 사람들에 먼저 안부 인사 좀 해보기'일 정도로 꽤나 친한 사이에도 먼저 연락하는 법이 잘 없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학창 시절, 직장 생활을 거쳐, 그 어느 곳에게도 소속되지 않는 '가정 주부'의 생활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것인지,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몇몇 친구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10대 때부터 만나 거의 15-20년 지기가 된 지금에도 누군가 먼저 날을 잡거나, 그날 즉흥적으로 불러내지 않는 한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니 계속 친구로 지내는 거겠지.


 




독박 육아에 '하루'를 데리고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일을 하고 있어 한창 힘들던 어느 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학교 동창인 친구에게서 택배가 하나 날아왔다. 나의 생일 선물이었다. 그렇다기엔 '하루'의 장난감이긴 했지만.. 선물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한 통의 편지였다.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나에게 편지를 자주 주던 친구였다. 매 장마다 달라지는 수십 개의 주제의 편지들로 묶인 책 한 권은 아직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이다.)


사실, 지금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


그 당시, 남편에게는 괜히 신경 쓰일까 봐. 엄마에게는 속상한 마음을 더하지 않으려고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며 버티던 중이었다. 주변에는 결혼한 친구들도 거의 없어서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라는 생각에 매일을 그냥 보내고 있었던 중 멀리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은 주변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나를 버스에서 펑펑 울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나고 보면 그런 시기마다, 내가 위로해주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뜻밖의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곤 했던 것 같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갔던 첫 직장에서 거의 3년을 혼자 일했기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정을 느낄 거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었다.


회사에 나름 잘 적응했다 생각하면서도, 육아 때문에 혼자 단축 근무를 하는 특성 탓에 자존감이 낮아지기 일쑤였다. 정해진 시간 내에 내 역량을 잘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남들처럼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빨리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다른 어느 곳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


그럴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이 해준 위로 아닌 위로. 위로라기보다는 나를 인정해주는 말에 많이 도움을 받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리가 있다는 말.


내가 아무리 달려도 잘 되지 않을 때가 있고, 하나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본인을 아끼면서 오래 달리라는 말. 분명 당신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고, 그걸 잊지 말라는 말.


그 말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순간도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2018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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