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다채롭고 특별한 여행 준비
From Mom's Heart
시간을 잇는 여정: ESTA 신청과 30년 전의 기억
여행지와 일정을 결정한 후부터 정말 바빠졌다. 무려 10일 이상 서울을 떠나 있어야 하니 미리 챙겨둬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준비는 결국 출발을 코앞에 두고서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에서 여권 사본을 요구하며 ESTA(전자 여행 허가)를 직접 신청할 것인지 대행할 것인지 물었다. “이런 것까지 대행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호기롭게 대답하며 스스로 하기로 했다. ‘아,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신청을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길고 복잡한 신청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 생년월일, 여권 번호 같은 기본 정보뿐 아니라 부모님의 이름과 직업까지 묻는 질문들에 잠시 당황했다. 특히 ‘범죄 이력이 있습니까?’나 ‘테러 활동에 연루된 적이 있습니까?’ 같은 질문은 묘하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이건 당연히 아니지!” 하면서도,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했다.
문제는 여권 번호를 입력하는 단계에서 터졌다. 여권을 꺼내 입력하던 중, 숫자를 잘못 입력한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서둘러 수정하려 했지만, 그만 잘못된 번호로 제출 버튼을 눌러버렸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이러다 입국 거절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스쳤다. 다급히 새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몇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행히 몇 시간 뒤, 승인 이메일이 도착했다. 단순히 여행 허가를 받은 것일 뿐인데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지금이야 약간의 긴장감과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지만, 30년 전 처음 미국을 방문하려고 했던 때는 모든 것이 달랐다. 당시 나는 학생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야 했다. 그 경험은 내 인생에서도 꽤 긴장되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대사관 앞은 긴 줄로 가득했고, 나는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뒤섞인 채 그 줄에 서 있었다. “혹시라도 비자를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터뷰 순서가 다가올수록 손에는 땀이 배었고, 준비해 간 서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당시 어리고 수줍었던 나는 면접관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그렇게 어렵게 받은 비자로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이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ESTA를 신청하고 있다. 학생비자를 받으려고 대사관에 갔던 그 시절의 나와,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와 새로운 경험을 나누려는 현재의 내가 겹쳐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새삼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공항을 걸으며 문득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자를 받았던 나도, 지금의 나처럼 먼 미래를 꿈꿨을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같은 땅을 밟는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또 뭉클했다.
이번 ESTA 신청은 단순한 절차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시간의 흔적을 마주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번 여정은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것을 넘어, 내 삶의 변화와 흐름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내 아이까지. 모두가 같은 시간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차올랐다.
Through Daughter's Eyes
한 달이 일 년 같았던 기다림의 시간
여행 날짜가 확정된 후, 여행까지는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처음 1~2개월은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냈고, 여행을 간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다 9월 말쯤, 달력에 엄마가 적어두신 “북미 여행”이라는 글씨를 발견했다. 그제야 여행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없는지, 기념품으로는 무엇을 살지, 어떤 옷을 입고 갈지 행복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여행이 취소되면 어떡하지? 항공사가 비행기 노선을 줄일 수도 있고, 기상악화로 취소될 수도 있으며, 한국에서 급한 일이 생겨 여행을 못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그때 정말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어쩜 나는 걱정 인형이 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내가 걱정을 많이 해야 오히려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할,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더 나아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까 봐 여행에 대한 생각을 애써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1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출발 하루 전이 되었다.
엄마는 미리부터 철저하게 준비하며 여행 짐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나는 달랐다. 정확히 여행 하루 전에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10일간의 여행이었기에 준비할 것도 꽤 많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대형 캐리어 한 개와 작은 캐리어 한 개밖에 없었다. 장거리 여행에 엄마와 나만 가는 만큼 작은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건 부담스러웠다. 결국 나만의 캐리어를 하나 사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던 중, “어차피 자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자”는 생각에 한눈에 끌린 라임색 캐리어를 주문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디자인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행 가면 사진도 많이 찍을 테니, 신난 마음에 내 옷장을 통째로 뒤져 옷을 거의 다 담아버렸다. 10월의 미국과 캐나다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게 선선하다고 해서 니트를 중심으로 챙겼다.
그렇게 마지막 날 밤, 여행 전 설렘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푹 잘 잤다. 그리고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아침 5시, 나의 북미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