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함께 걷는 법을 배우다.

여행 첫날_에피소드 1

by 첨예하니

From Mom's Heart

여행, 함께 걷는 법을 배우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벅차다. 새로운 풍경, 낯선 문화 그리고 수많은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는 이번 여행이 우리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더 많은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이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아이와 함께 멋진 풍경을 보고 싶었다. 하이라인파크와 리틀아일랜드, 두 곳 모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아이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되길 바랐다.

비행의 피로도 잊은 듯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하이라인파크를 걸었다. 철길 위에 조성된 이 공원은 도시 한가운데서도 푸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주변의 멋진 건물들과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근사해서 나는 연신 아이에게 말했다.

"여기 너무 예쁘지 않니? 저기 봐, 저 건물 정말 멋지다!“

하지만 아이는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리틀아일랜드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독특한 공원, 다양한 식물들, 그리고 뉴욕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아이가 신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즐겁게 볼 수 없겠니?"

"엄마가 이렇게 좋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왔는데, 네가 이렇게 시큰둥하면 엄마는 너무 속상해."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그제야 아이의 걸음이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장시간의 비행,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참을 걸어 다닌 하루. 나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줄 알았고, 내 기대만큼 반응하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하지만 아이는 단순히 피곤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 너무 미안했지만, 얼른 사과하지는 못했다. 주변을 돌아보다 발견한 작은 카페에서 각자 커피와 복숭아아이스티를 마시며 아이와 함께 숨을 돌렸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내 곁에 있는 시간이란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아이가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더 넓게 경험하길 바랐다.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었으면 좋겠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더 많은 것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느리거나 관심이 없어 보이면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방 알게 될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돕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숙제를 하던 중 연필을 쥔 손을 멈추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힘들면 말을 하겠지, 어려우면 도움을 청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힘들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손끝이 느려지고, 표정이 굳어지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그것이 아이의 신호였다.

아이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가을이 되어서야 피어나듯, 아이들도 각자의 리듬과 시간표가 있다. 중요한 것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온전히 자라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기로 했다. 더 많이 배우게 하기보다, 배움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더 빨리 성장하게 하기보다, 아이가 자기 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이의 걸음을 재촉하지 말 것. 천천히 피어나는 꽃을 기다릴 것.“

여행의 흥분으로 잠시 잊었었다. 다시 내 아이와 발걸음을 맞추는 시간이 행복했다.







Through Daughter's Eyes

시작되는 여행

10월 24일 아침 5시, 나로서는 전례 없는 기상 시간이었다. 학교를 가야 할 때도 겨우 7시 30분에 일어나던 내가, 이날은 스스로 눈을 떴다. 아마도 기대감과 설렘 덕분인지 피곤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짐은 전날 미리 챙겨두었기에 옷만 입고 공항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자가용이 있긴 했지만, 인천공항에서 주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엄마와 단둘이 큰 짐을 끌며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이 여행을 떠올리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지만, 유독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안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막힘없이 달리는 택시와 어둠이 깔린 도로의 분위기가 깊이 각인되었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여행의 시작을 실감했는지도 모른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비행기 출발까지 약 3~4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여행사에서 관련 서류를 받은 후 공항 식당가로 향했다.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긴 해외여행을 앞두고 ‘마지막 한식’이라는 생각에 순두부찌개를 선택했다. 예상보다 꽤 맛있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우리가 탄 비행기는 현존하는 비행기 중 가장 큰 기종으로, 흔히 ‘뚱땡이 비행기’라 불린다. 탑승 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니, 길이에 비해 확실히 너비가 넓어 별명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비행시간은 총 14시간. 이렇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지만, 기내식 두 번에 컵라면까지 먹고, 가져간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다 보니(좌석에도 미디어 기기가 있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JFK 국제공항. 인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거대했다. 인천공항에서도 일부 구간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예 공항을 가로지르는 버스가 운행될 정도였다. 공항버스는 짐을 실어야 하는 승객이 많다 보니 차량 자체가 커서 더욱 편리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가다 보니, 이 여행이 왠지 순조롭게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던 탓일까. 처음 도착한 하이라인 파크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일단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철도를 따라 만들었다는 공원과 데크도 다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종의 잠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꼭 자야 하는 나의 수면 루틴을 생각하면, 당시 거의 20시간 넘게 깨어있었던 터라 내 몸이 저절로 피로에 반응한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수면 패턴이 깨진 줄도 몰랐고, 그래서 더욱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엄마에게 볼 것도 없는 곳이라며 그냥 앉아 있으면 안 되냐고 투정을 부렸다. 처음에는 엄마도 웃으며 달래 주셨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내 불평에 결국 화가 나신 듯했다. 끝내 엄마는 “마음에 안 들면 집으로 돌아가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어쨌든 여행을 온 것이고, 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투정 부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약간의 꾸중을 들은 후 다시 본 하이라인 파크는 처음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기존의 철도를 살짝 변형해 새롭게 탄생시킨 공간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 기분과 인식이 바뀌면서 풍경도 달라 보였던 것일까.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리틀 아일랜드였다. 하이라인 파크에서 도보로 불과 2~3분 거리에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미국의 신호등을 보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모양의 신호등과 달리, 빨간색 손 모양이 있어 신기했다. 또한, 보행 신호가 초록색이 아닌 흰색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도착한 리틀 아일랜드 역시 공원이었다. 미국에는 센트럴 파크처럼 잘 알려진 공원 외에도 다양한 공원이 많았는데, 이는 한국과 다른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공원이 꼭 필요할까 싶었지만, 둘러볼수록 미국인들이 공원을 힐링, 운동, 만남, 피크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니라, 공원을 문화적 매개체로 활용하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리틀 아일랜드는 허드슨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구두 굽이 겹쳐진 듯한 디자인으로, 내가 본 공원 중 가장 특이했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이곳은 주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미국식 놀이터,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오브제, 다양한 형태의 의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앉으면 중심을 잡기 어려워 빙글빙글 도는 의자가 있었는데, 꼭 팽이처럼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리틀 아일랜드에서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새 엄마와도 화해하게 되었고, 다음 일정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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