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말하는 ‘환경 정답’은 어디서 왔을까?
며칠 전, 내가 강의하는 환경 교양과목의 중간고사가 있었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관련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내게
비전공 학부생들과 마주하는 교양강의는 나에게도 꽤 신선한 경험이다.
동시에,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해야 할 이야기들이라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매 학기, 시험지를 채점하다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답안지에 줄줄이 나열되는 익숙한 문장들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북극곰이 멸종 위기에 처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투발루가 침몰하고 있으며,
우리는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건 정말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고민한 문장일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주입된 정답"을 따라 쓴 것에 불과할까?
어느 교사의 발표 자료는 나의 의문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이미 전 교과에 걸쳐 환경 이슈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아예 독립 과목인 "생태와 환경"이 신설되었다.
초등 저학년은 생활과 도덕 과목에서 기후·생태 감수성을 배우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사회, 통합과학, 기술·가정 등에서 환경 주제를 깊게 다룬다.
성취기준 문서에는 ‘생태’, ‘환경’이라는 단어가 각각 800회, 3,800회 이상 등장한다.
교과서에도 투발루, 북극곰, 녹조 라떼는 단골소재다.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 등 타 과목에서도 ‘기후위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환경위기 = 정의의 문제"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물론 환경 문제는 중대한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정답이 하나뿐인 서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다양한 관점과 과학적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기술적 접근(원자력, 탄소포집 등)에 대한 논의,
정책적 선택(시장기반 해결책 vs 생태전환 중심 해법),
철학적 질문(인간 중심주의 vs 생태 중심주의)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속 환경 교육은
“감정에 호소하는 이미지”와 “정해진 서사”로 가득하다.
북극곰, 침몰하는 섬, 굶주린 아이들, 유빙 위 피아노 연주 영상...
이러한 선동적 이미지들이 과학적 사고와 사실 기반의 토론을 대체하고 있다.
환경 교육은 생각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학생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다양한 입장에 귀 기울이게 해야 한다.
교육이 "결론"을 먼저 주고, "감정"으로만 행동을 유도한다면
그건 설득이 아닌 주입, 비판이 아닌 동화가 된다.
지금 우리 교육엔 "결과보다 질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