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돌아보면, 이 연재를 쓰는 내내
나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적는 듯하면서
사실은 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사춘기라는 파도가 찾아오자
딸보다 더 놀란 사람은 나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 딸을 보며
나는 불안했고, 조급했고,
어떻게든 ‘바르게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변화 앞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 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오래 자리 잡고 있던 완벽주의와 통제 욕구였다.
“엄마는 왜 이렇게 과해?”
딸이 던진 이 한마디는
사실 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었다.
그 말은 불편했지만
그 덕분에 비로소 나는
내가 붙들고 있던 기준과 두려움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왜 나는 늘 '정답'을 말해야 한다고 느낄까?
왜 아이의 작은 흔들림조차 불안한 걸까?
왜 내가 원하는 속도를 강요했을까?
딸을 키우며 배운 것 중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아이의 성장에는 부모의 불안이 그대로 비친다.
그리고 그 불안을 마주해 풀어내는 과정이
부모가 자라는 과정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조언을 덜 하고,
해결을 서두르지 않고,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려고 애쓴다.
그 덕분에 딸은 조금씩 편안해졌고,
나 역시 조금 더 유연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겪는 일이었다.
결국 딸이 나를 성장시킨 것이다.
나를 더 깊이 보게 했고,
내가 놓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고,
부모도 여전히 배우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에필로그를
이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딸이 자라는 만큼, 엄마도 자란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 속에서
또 한 번의 나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