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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한 Jan 08. 2025

1. 전세살이만 10년, 어느덧 마흔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한국식 세는 나이로 어느덧 마흔.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월세와 전세를 전전했다. 집을 갖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단순히 머나먼 일이라서 꿈같다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정말 실현 가능한지가 의심될 정도여서 앞으로도 손에 잡히지 않을 일처럼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은 내 집마련이라는 꿈을 더 머나먼 일로 만들었다. 아파트 값은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두세 배 치솟았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전세가에도 영향을 주었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의 계약을 도저히 연장할 수 없는 수준까지 전세가가 올랐다. 기존에 살던 집도 직장과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 시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과 더 멀어졌는데도 전세가는 이전보다 몇천만 원 더 비쌌다. 


  이사하고 나서 한 달 후에 임대차 3법이 시행되었다. 기존 2년인 전세계약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였다. 전세 연장 시에 전세가 상승률도 5% 이하로 제한했다. 한 달 차이로 우리는 새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아내에게 허탈하게 웃으며 "운도 참 없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씁쓸하고 슬펐지만 다행히도 아내가 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이때만 해도 이 원치 않았던 이사가 우리를 단독주택 집짓기로 이끌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은 이미 조용히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아내와 나의 새로운 전셋집은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의 살짝 '옆'에 위치한 33평짜리 아파트였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도 아니고 대단지도 아닌 특별할 것 없는 아파트였다. 처음 방문한 봄날, 아파트 앞 도로가에 가득 핀 철쭉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남서향의 거실에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도 마음에 들었다. 


  이사 후부터는 조금씩 좋은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전면적인 재택근무 도입을 결정했다. 출퇴근시간이 합쳐서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집 근처에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계약하기 전에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는데, 도보 5분 거리여서 전보다 산책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회사생활과 잦은 이사에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동백호수공원의 가을


  급하게 계약할 때는 몰랐지만 도보 5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었다. 도보 15분 거리에는 석성산 둘레길과 등산로가 있었다. 여기서 5분 더 걸어가면 동백도서관이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세브란스병원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활환경이 너무 좋았다. 직장과 멀다는 점만 제외하면 살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동백에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는 2년마다 전셋집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첫 번째 집주인은 집을 팔았고, 두 번째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다. 세 번째 집주인은 본인이 직접 들어와 산다고 했다. 잦은 이사를 거치면서 우리는 짐을 조금씩 줄여갔다.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책이었다. 아내와 나 합쳐서 수백 권은 있던 책을 중고서점에 대부분 처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책은 가능하면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 


  책 빌리러 동백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면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도서관 주변에 넓게 분포한 단독주택들이었다.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단독주택들이 도서관 바로 옆에서부터 석성산 앞자락까지 한눈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백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단독주택들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아파트 한 채도 없는데,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동백도서관과 바로 옆 단독주택


  이즈음 JTBC에서 방영하는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와 EBS의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건축주 각자의 취향과 꿈이 반영된 다양한 단독주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집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단독주택을 보면 볼수록 나도 내 삶이 투영된 공간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졌다.


  혹시나 내가 지을 수 있을까 해서 단독주택 건축비용도 알아보았다. 결과는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나쁜 소식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단독주택 건축비가 큰 폭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이 일어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건자재 가격이 끝없이 오르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비슷한 평형의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두세 배 오른 아파트 가격과 비교해서 단독주택 가격이 덜 올라서인 듯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전히 내 집마련 기본 계획은 아파트 청약이었다. 내가 가진 예산 안에서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청약은 안 되고 로또 청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저렴하게 나온 청약이 나의 목표였다. 2020년의 나는 몇 년만 노력하면 청약이 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로 큰 오산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부터 한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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