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파트에는 없고 단독주택에는 있는 공간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두 번째 미팅에서 아내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 개의 평면도였다. 우리가 고민해서 정한 필요한 공간들이 평면도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공간들이 새겨진 보물지도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2차원의 평면도만 보고 집 내부를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건축사사무소에서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형을 준비해 주었다. 1층과 2층이 분리되도록 만들어진 귀여운 모형이 세 가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가는 모형을 가리키며 평면도가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와 개별 평면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20250114_124819.jpg 우리집 평면 모형
평면도는 소중한 공간들이 새겨진 보물지도?

설명은 의외의 공간을 기준으로 시작되었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공간이지만, 단독주택에는 대부분 있는 공간이다. 바로 '계단'이다.


우리집은 이층집이기에 당연히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계단이 필요하다. 단층주택이라고 해서 계단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다락이 있기에 단층주택 역시 계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 익숙한 나 같은 건축주라면 평생 처음으로 계단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신혼시절 살던 복층 오피스텔에 계단이 있었다. 복층을 창고로 썼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사용을 잘 안 하니, 집 안의 계단에 대해 딱히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계단을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아마 우리집 고양이였을 것이다. 계단이라는 수직공간을 즐겁게 뛰어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쉽게도 신혼집에서는 채 이 년도 살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 했다. 집주인이 집을 팔면서 세입자인 아내와 나는 쫓겨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혼집에 정이 많이 들었기에 허탈한 감정이 가슴에 남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 집이 우리에게 남긴 것도 있다. 높은 천장고와 계단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다. 이 두 가지는 지금 우리가 짓는 집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계단에 대해서 집주인이 간과하는 부분 중 하나는 계단이 차지하는 공간이다. 우리집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층마다 계단이 2~3평의 공간을 차지한다. 생각보다 차지하는 공간이 크다. 이 정도면 방 하나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계단의 높이가 3m를 넘는다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늘 수 있다. 법에 의무적으로 계단참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태어나서 '계단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보았다. 나름 집짓기 관련 책도 많이 읽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건축에 얼마나 문외한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계단참은 계단 사이에 위치한 평평한 공간을 말한다. 너비가 1.2m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꽤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집은 천장고가 2.7m로 일반 아파트보다 높기 때문에 층고가 3m 이상이다. 그래서, 계단참을 설치해야 했다.

계단참.PNG

우리집의 후보 평면 세 가지에는 위치와 형태가 서로 다른 계단이 놓여 있었다.


첫 번째 평면은 계단이 집의 중앙에 위치했다. 중앙에 있기에 현관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접근이 용이했다. 2층에 오르고 나서도 집의 중앙부에 위치하기에 공간 접근성이 좋았다. 한마디로 어느 경우에도 동선이 짧게 유지되어 생활하기에 편리하다.


두 번째 평면은 계단이 집의 한쪽 끝에 위치했다. 거실의 가장자리에 일자로 걷게 뻗은 계단이 시원해 보였다. 거실이 넓어 보이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집의 한쪽 끝에 위치하기에 동선이 길다는 단점이 생긴다. 일층 현관에서 이층의 반대편 방에 간다면, 사실상 집을 두 번 가로질러야 했다.


세 번째 평면은 계단이 집의 구석에 위치했다. 여러 공간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었다. 건축가의 말로는 계단이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건축주가 있다고 한다. 나는 반대로 계단을 좋아하는 건축주이기에 계단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집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내가 가장 기대한 요소 중 하나는 계단이었다. 생각의 정리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건물의 계단과 복도를 걷고는 한다. 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의 복도와 계단을 정말 많이 걸었다. 회사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집 안에 계단이 없다. 오랫동안 멀어졌던 공간이 다시 나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공간, 계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건축가에게도 단독주택의 계단이라는 공간은 중요한 듯했다. 계단에 따라서 나머지 공간이 꽤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계단이 다락과 지붕 모양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어서 의아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경사지붕의 경우, 현행법상 다락의 평균 높이는 1.8m 이하여야 한다. 높이가 낮은 부분과 높은 부분이 공존하는 다락의 어느 부분이 계단과 이어지는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계단은 다락의 가장 높은 부분에 연결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야 다락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건축가 말로는 다락에 오를 때, 허리를 숙이거나 엎드려야 하면 잘 오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결국, 다락이 버려지고 죽은 공간이 된다. 그래서인지 건축가는 다락을 오르는 계단의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 문제는 자연스레 다락의 높이를 결정하는 지붕 모양과도 연결된다.


지붕, 다락, 계단을 함께 고려하는 것은 꽤 품이 드는 일이다. 아내와 나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완벽하게 마음에 들게 풀어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집 짓기를 시작하고 이 문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축주 분들은 미리 고민해 보기를 추천한다.


고양이 건축주는 오를 계단이 많을수록 좋아!


무던.PNG 집사들이 고민하든 말든 신이 난 고양이 건축주


keyword
이전 12화11.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