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우리집의 모양을 결정하는 첫 번째 미팅은 2024년 12월에 있었다. 건축사사무소와의 미팅은 보통 3주 주기로 이루어진다. 연말과 연초의 휴일이 겹쳐서 다음 미팅 날짜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날짜를 맞추어 보다가 3주가 아닌 한 달 후에 만나기로 했다.
다음 미팅의 주제는 집의 평면이었다. 평면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건축가가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공간들을 알아야 한다. 이 공간들은 건축주가 집을 짓기로 결정한 이유이자 라이프스타일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집의 건축주는 나, 아내, 그리고 고양이 이렇게 셋이다. 각자가 필요한 공간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모으고, 집의 어느 층에 위치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서 정리했다. 우리집 수다쟁이 고양이 미키는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아내와 내가 고민하는 동안 흥미로운 표정으로 옆을 지켰다.
지난 미팅에서 결정했듯이 우리집은 박공지붕의 2층집이다. 1층, 2층, 다락 그리고 옥상으로 공간을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지하층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땅은 평지여서 지하층을 만들기 어려웠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건물 밖의 공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에는 마당과 주차장이 실외 공간이었다.
아내와 내가 최종적으로 정리한 공간 목록을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다.
1층 - 현관, 가족실 겸 식당, 주방, 팬트리, 분리형 욕실, 계단, 고양이 화장실, 주방과 연결된 온실
2층 - 아내방, 남편방, 세탁실, 분리형 욕실, 아내 드레스룸, 남편 드레스룸, 아내방 계단, 공용 계단
다락 - 아내방 다락, 공용 다락, 옥상 테라스
실외 - 주차장, 햇살마당
공간 목록만 보아도 일반적인 아파트와는 구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아파트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이 없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내내 거실은 소파에 앉아 반대편의 TV를 보는 공간이었다. 때로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가장 넓은 이 공간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집을 지으면서 TV도 소파도 거실도 없애기로 했다. 손님은 마당을 조망할 수 있는 밝은 식당 공간에서 맞기로 했다.
방도 남편방, 아내방 단 두 개만 두었다. 요즘 20평대 아파트도 방이 3개인데, 우리는 오히려 방의 개수를 줄였다. 아파트의 평면은 어떤 형태의 가족이 사용할지 모르니 최대한 범용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입주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평면의 형태에 맞춰서 살아간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와는 정확히 반대 과정이다. 아내와 나에게는 각자 방 하나씩이면 충분했다. 고양이 미키는 집 전체가 자기 영역이니 개인방이 없어도 만족할 거라 생각한다.
신혼 시절에 작은 10평대 복층 오피스텔에 살았었는데, 천장고가 높아서인지 둘이 살아도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때의 기억이 좋게 남아서인지 이 공간을 자신의 방에 반영하기를 원했다. 2층에 방이 넓게 위치하고, 방 안에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놓기로 했다. 다락에는 침대를 놓고 침실로 이용한다. 그리고, 다락에서 옥상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내 방에 크게 원하는 것이 없었다. 책상이 놓인 공간과 침대가 놓일 공간을 분리하는 정도가 나의 요청사항이었다. 추가로 아내방과 남편방은 드레스룸을 연결해서 하나씩 두기로 했다.
현재는 아파트 안방에서 함께 자고 있는데, 집을 짓고 나면 각자의 방에서 따로 자기로 했다. 아내의 수면질을 위한 결정이었다. 내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 아내가 잠을 설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세탁실은 아파트에서는 보통 다용도실에 위치하는데, 아내는 드레스룸 가까이에 두고자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에서 빨래를 마친 후에 바로 드레스룸에 정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분리형 욕실도 위생과 편한 관리를 위해서 아내가 강력히 원했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지금도 화장실은 건식으로 쓰고 있는데, 관리도 편하고 위생적으로도 장점이 많다. 하지만, 샤워실과 화장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완벽한 건식으로 쓸 수 없었다. 집을 지을 때는 분리해서 최대한 습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우리집 고양이 미키를 위한 화장실 공간도 따로 분리했다. 계단 하부 공간에 고양이 문을 설치하고 안쪽에 화장실을 놓았으면 한다고 건축가에게 전달했다. 남는 공간은 고양이 용품을 수납할 생각이었다.
단독주택에는 아파트에는 없는 공간들이 있다.
우리집의 실외 공간은 주차장 하나와 넓은 햇살마당, 그리고 옥상 테라스로 구성된다.
아내는 주차장을 꼭 필로티 아래에 두고자 했는데, 눈과 비를 피했으면 하는 이유였다. 몇 년 전에 살던 아파트의 실내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자주 실외에 주차를 하곤 했다. 보통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겨울에 눈이 많이 온 날은 차에 소복이 쌓인 눈을 치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햇살마당은 우리가 집을 짓는 중요한 이유 중하나였으니 가능한 넓고 햇빛을 잘 받을 수 있어야 했다. 요즘 경향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최근에는 관리의 수고를 줄이기 위해 마당을 최대한 줄이거나, 타일로 덮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식물이 살아갈 흙과 길게 내리쬐는 햇빛이 필요했다.
아내와 나는 넓은 옥상이 나오는 평지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평지붕 때문에 누수 등의 하자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접했고, 마당이 있으니 옥상 공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방이 집으로 둘러싸인 단독주택부지에서 그나마 조망이 가능한 높은 공간은 옥상 밖에 없지 싶었다. 고민하다가 박공지붕 사이에 작은 옥상 테라스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화분을 가져다 작은 텃밭도 만들고 말이다.
우리가 필요한 공간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배치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꽤 재밌는 일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서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아파트라는 공간의 범용성이 얼마나 좋은지 문득 깨닫기도 했다. 반대로 아파트라는 남이 정해진 공간에 나의 삶과 생활습관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 맞춰진 공간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기대가 차오른다. 어쩌면, 집의 평면 구성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요소를 공간으로 치환하여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의 평면 구성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요소를 공간으로 치환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