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우리집은 'ㄱ'자로 생겼다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거실 코타츠에 집 모형을 올려놓고 아내와 고민을 시작했다. 건축사사무소에서는 하나의 모양을 정하기 힘들면 두 개를 골라도 괜찮다고 했다. 두 가지 구조를 병행해서 작업하다가 하나를 고르는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것은 품이 많이 들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나에게 기획팀에서 가끔 요청했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업을 담당하는 건축가가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시간이 남고 여유가 있어야 중요한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하나의 모양을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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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마당을 가진 집 구조


가장 먼저 탈락한 모양은 '그늘마당'을 가진 'ㄴ'자 구조의 모형 두 가지였다. 사생활 보호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식집사 아내에게 햇빛 들지 않는 마당은 죄악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늘마당'에 음지식물을 심을 수도 있겠지만 집 안에서 키워도 될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집 안에 몬스테라와 고사리 같은 반양지 또는 음지식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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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을 가진 집 구조


두 번째로 탈락한 모양은 중정을 가진 모형 두 가지였다. 중정을 가진 집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구조였다. 사생활 보호면에서 가장 탁월하고, 우리집 고양이를 중정에 풀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마당이 너무 작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햇빛 잘 드는 마당을 위해서 비싼 남서향 코너땅을 샀는데 중정 구조는 이에 어울리지 않았다.


중정 구조의 집을 지을 생각이라면 남향이 아닌 조금 더 저렴한 땅을 사는 것이 비용 면에서 좋을 것 같다. 땅을 사기 전에 집의 목적이나 구조를 명확히 하면 예산을 더 아낄 수 있다.


shape_03.png 햇살마당과 그늘마당이 모두 있는 집 구조


마지막까지 고민한 구조 중에 하나는 'ㄱ'과 'ㄴ'을 교차하듯이 배치한 모양의 집이었다. 햇살마당과 그늘마당이 모두 있는 구조였다. 사생활이 보호되는 그늘마당과 식물을 기르기 좋은 햇살마당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햇살마당의 크기가 작은 점이 아쉬워서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보며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땅이 좁아서인지 만족스러운 변형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이 모양도 포기했다.


하나둘씩 우리집 모양 후보를 제거하면서 결국 하나의 집 모양만 남길 수 있었다.


땅을 사기 전에 집의 목적과 구조부터 명확히 하자.

shape_01.png 남서향 코너땅의 장점에 잘 맞는 모양의 집 구조


땅을 사면서 아내와 내가 막연히 상상한 모양은 평범한 'ㄱ'자 집이었다. 집이 도로를 접한 남쪽과 서쪽을 바라보는 구조이다. 햇빛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어서 채광에 유리하다. 마당도 다른 구조에 비해 넓게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당에 심어진 식물들이 햇빛을 흠뻑 흡수할 수 있다. 식집사인 아내에게는 넓은 마당과 채광이 가장 중요했다.


우리 땅의 장점 중에 하나는 2m 높이의 담장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형에서와 달리 담장을 토지 끝까지 이동시키면 꽤 넓은 마당을 확보하면서 사생활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재미없는 모양의 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의 필요에 맞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마당과 식물을 신경 쓴다는 점이 다른 일반적인 건축주와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건물의 재미는 외관을 디자인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추가하면 될 일이다.


건물의 모양을 결정하고 두세 달 정도가 지나서 우리집의 외관 설계안을 볼 수 있었다. 스케치업으로 모델링 된 우리집의 모습은 기대보다도 더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다.


가능한 큰 마당을 지키기로 한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 마음이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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