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계약할 건축사사무소를 정하고 첫 미팅은 나의 '작지만 소중한 땅'에서 하기로 했다. 소장님의 요청이었는데, 집을 지을 땅과 주변을 봐두는 것이 집짓기에는 중요한 듯했다.
작업 시에 참고할 요량인지 땅과 주변 사진을 많이 찍었다. 틈틈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었다. 땅 주변에 매립된 상하수도, 전기 등의 설비, 집을 어떻게 앉히면 좋을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계약서 작성은 근처 카페에서 했다. 계약서 작성 후에 원하는 집의 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첫 미팅의 마지막은 숙제 이야기로 끝났다. 설계에 참고할 수 있도록 요청사항과 원하는 디자인 스타일 자료를 정리해서 달라고 했다. 숙제가 생겼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설렘으로 마냥 기분이 좋았다.
설레는 마음은 숙제도 기분 좋게 한다.
아내와 나는 원룸 복층 오피스텔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13평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미적감각이 좋은 아내가 잘 꾸며서인지 작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복층이라 층고가 높아서 아파트보다 개방감은 더 좋았다.
이후에는 30평대 아파트 전세를 전전했다. 매번 아내가 간단한 셀프 리모델링으로 꽤 그럴듯하고 지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꿔주었다. 나로서는 손재주가 좋은 아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세입자가 무료로 집을 바꿔주니 집주인도 좋아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언제나 비슷한 불편한 점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층간소음이었다. 아내는 소음에 매우 예민했는데, 우리가 살았던 많은 집에서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매번 항의하는 것도 곤욕스러운 일이고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팬데믹 사태 이후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 심해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는 물론 나도 층간소음에 예민해져 갔다. 어쩌면 아내에게는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는 여행을 가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흔히 말하는 집순이, 집돌이 부부이다. 내가 가진 대부분의 취미는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해결이 되지만, 아내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입을 옷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많을 때는 집에 화분이 200여 개 정도 있었다. 공간이 많이 필요한 아내의 취미들에 아파트의 구조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의 구조였다. 신혼집 오피스텔의 높은 천장고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개방감이 좋은 집에서 지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아파트 탑층이나 복층을 구경해 보았지만 결국은 아파트의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몸에 걸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정해진 구조의 아파트에 우리의 삶을 끼워 넣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 우리 삶을 끼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숙제에 앞서 단독주택에 살고 싶었던 이유를 다시 떠올려 보니, 집 내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높은 천장고, 노천탕, 다락, 마당 정도였다. 집의 평면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다.
아내는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있었다. 분리형 화장실, 개인별 드레스룸, 그리고 세탁실을 붙여서 순환동선으로 구성하고 싶어 했다. 본인의 방은 신혼집 오피스텔의 경험을 살려서 복층 구조로 만들기를 원했다. 1층은 취미를 위한 작업실로 넓게 쓰고, 복층은 침대를 두고 큰 창을 내려했다. 창은 옥상 테라스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1층에 위치할 주방, 식당, 가족실을 비롯한 공간에 대한 구상도 가지고 있었다. 주차장은 필로티로 하고 마당의 정원은 본인이 직접 꾸민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결국, 숙제는 대부분 아내의 차지가 되었다. 오랫동안 저장해 두었던 핀터레스트의 많은 이미지가 레퍼런스로 사용되었다.
내가 한 일은 내 방과 노천탕에 대한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는 것과 가전 목록과 가구 목록을 정리하는 것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짓기는 나보다는 아내에게 잘 어울리지 않나 싶었다. 나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고 집짓기에 대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아내에게 있었다. 내 아내는 나보다 나았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내 아내는 나보다 낫고, 나는 그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