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어딘가의 건축 상담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남영역 굴다리 앞에 사람들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다. 횡단보도 앞까지 늘어선 줄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줄을 따라 끝까지 가보니 강인해 보이는 인상의 할아버지가 쉼 없이 반복작업을 하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넣고, 팥을 가득 채운다. 팥 위에 밀가루 반죽을 덮고 쇠로 된 금형을 닫는다. 찬바람 불면 하나둘씩 거리에 열리는 붕어빵 가게다.


팥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가득 채워진 것이 일반적인 붕어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SNS 상에는 이미 서울 3대 붕어빵집으로 유명했다. 건축상담 약속 시간까지 1시간 40분이 남아있던 아내와 나도 줄에 합류했다. 붕어빵은 회전율이 높으니까 30분이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30분이 지나고 나서도 우리는 대기줄의 3분의 1 정도를 전진했을 뿐이었다. 이 때라도 결단을 내려서 줄에서 벗어났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1시간 40분을 기다렸고, 건축상담에 5분 늦고 말았다.


우리가 건축 상담을 잡은 건축사사무소는 남영역 5분 거리 건물에 있었다. 하필이면 최상층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고 올라가는 내내 마음이 초조하고 불편했다. 1시간 40분의 기다림 끝에 받은 붕어빵 봉지를 손에 들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무소에 들어섰다.


"약속시간 못 맞춰서 죄송해요. 붕어빵 사다가 늦었어요."


건축사사무소에 들어서며 말씀드리자 사정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웃으시며 말했다.


"아, 그 역 앞에 유명한 붕어빵집이요. 사람들 줄 서라고 일부러 늦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오후 6시 5분. 저녁 먹을 시간이었기에 테이블 가운데에 붕어빵을 두고 함께 먹으며 건축 상담을 시작했다. 붕어빵에는 팥이 가득했지만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유명세에 비해 부족한 맛에 헛웃음이 절로 나오고 오랜 줄 서기에 대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저 멀리 허공 어딘가로 가출하려는 정신을 부여잡고 건축 상담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나는 총 세 곳의 건축사사무소, 그리고 한 곳의 하우징 업체와 건축 상담을 했다. 건축 상담 예약할 때, 모두 공통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물어보았다.


- 집을 지으려는 땅의 지번

- 집의 규모 (층, 평형 등)

- 집 건축에 사용 가능한 예산


돈이 너무 많아서 한정 없이 예산을 쓸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예산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을 했다. 예비비로 오천만 원이 있지만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다행히 예산이 많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건축 상담 예약에는 모두 성공했다.


남영역의 건축사사무소는 우리의 마지막 건축 상담이었다. 앞선 상담에서는 수영장, 유리 온실, 노천탕 등 여러 가지 로망을 가감 없이 얘기했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서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는지를 깨달았다. 기죽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지쳐 있었다. 다음의 말이 정말 잘 들어맞는 상태였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앞선 세 번의 상담에서 꽤 많이 처맞았다. 친절한 말로 둘러싸인 현실이라는 벽에 꽤 세게 말이다. 마지막 건축 상담에서는 로망은 걷어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위주로 질문을 했다. 처음 상담을 받은 건축가 분이 해준 충고에 충실했다.


"예산은 한정적이니까 힘줄 곳과 힘 뺄 곳을 구분하셔야 돼요."


꼭 필요한 것만 질문해서인지 마지막 건축 상담은 지금까지 상담 중에 가장 빠른 시간에 끝이 났다. 대략 한 시간 정도였다. 그래도 필요한 질문은 모두 했고 긍정적인 말도 많이 들었다. 가지고 있는 예산이면 집짓기에 충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현실이라는 벽은 아프지만 피할 수 없나 보다.

붕어빵을 1시간 40분간 기다리면서도 결국 나는 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였을 것이다. 매몰비용이 아까워서 나는 끝까지 기다린 것이다. 마지막에 받아 든 붕어빵의 맛은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울 3대 붕어빵을 경험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


집을 짓다 보면 예산과 시간 등의 압박에 짓눌려 매몰비용을 포기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려 한다. 이번에도 붕어빵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조금씩 전진할 것이 틀림없다. 마지막에 손에 쥘 붕어빵이 이번에는 맛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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