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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Feb 07. 2021

연희동 '책바'에서 나만의 '노사이드'를 발견하다

<심야치유식당>을 읽으며

새벽 6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말리고, 옷을 챙겨 입고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7시 셔틀버스를 타러 나갑니다. 한겨울 아직  깜깜한 이 시간, 국민학교 때부터 살아온 동네 건만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뛰는 출근시간은 늘 낯설었습니다.

8시 전에 회사에 도착합니다. 8시 반이 출근시간이라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8시 도착하기 바쁘게 자리로 올라가서 일을 해야 했지만, 어떤 날은 일부러 늦장 부리며 천천히 올라갑니다. 빨리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더 많은 일을 시키기 때문에 커피라도 한잔 사갑니다.

그렇게 그 건물에서 8년째 일했을 때,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만나던 분이 저에게 왜 이렇게 잠을 안 자냐고 물었습니다. 주말에도 새벽같이 눈을 뜨고, 평일에는 아무리 새벽에 잠들어도 어김없이 새벽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눈을 뜨는 저의 생활 패턴을 보고는 한 말입니다.

'쉬고 싶다. 푹 쉬고 싶다.' 제 마음을 늘 이야기했습니다.  TV를 켜서 뉴스를 보지 않고, 라디오를 듣지 않았습니다. TV의 모든 뉴스와 라디오의 이야기들이 소음으로 느껴졌고, 그 소음이 저를 힘들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정도로 그때는 제가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집을 나와서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옮겼습니다. 저만의 쉴 곳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거든요. 자그마한 오피스텔의 방에는 침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모든 것을 차단했습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쉬고 싶었습니다.

바쁘게 살아온 삶에서 이렇게 많이 잘 수 있을까? 싶은 만큼 많이 잤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혼자 그다지 할 것이 없어 일찍 잠이 들었고, 주말에는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년 동안 그곳에서 저 혼자만의 힐링 타임을 갖었습니다. 일하는 저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일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사람과의 부대낌이 힘들었습니다.   

독립해서 처음 보금자리를 갖은 공간을 갖고, 힘들었던 팀을 운 좋게 옮기고 나서도 새로운 팀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8년 차인데 이것밖에 못하냐며 상사는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했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기에는 이미 네가 이런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듯 한 눈빛으로 대하는 듯했습니다. 30대 초반까지 공부하는 것과 일밖에 모르던 저는 혼자 생활을 꾸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데, 침대에서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억지로라도 출근했던 평소와는 달리 처음으로 상사에게 겨우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말하고, 하루 종일 잠을 잤습니다. 밤이 될 때까지 침대에 그대로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이야기하니, '우울증인 것 같다. 상담받고 우울증 약을 먹어보라.'고했습니다. 지금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이 초기에 잘 치료하면 되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이 주홍글씨가 박히는 큰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제 몸이 왜 움직이질 않는지 몰랐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우울증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친구가 말을 해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이전에도  '회사 내 상담실'을 종종 찾았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하여 상담사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것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상담사분이 우울증 약을 먹어보는 것은 크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번 상담을 받아봐도 된다고 차분하게 말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회사 상담실을 나와서 마음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병원을 따로 찾지는 않았지만 다시 평온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번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약보다 내 삶에 약효를 주는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심야 치유 식당>을 읽으면서 현대인이 많이 살기 힘들구나를 느끼며, 힘들었던 그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책 표지에서 말합니다.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아플 때, 저는 주말에 네일아트 학원을 다니며 국가공인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서 몇 시간씩 보내곤 했습니다. 그때 남들은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건 별로 저에게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회사를 그만둔다면 '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많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회사 자리에 앉아서 일할 때 종종 생각했었습니다. 만약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면, 회사 근처에 샵을 내야겠다고. 그리고 주 타깃 고객을 우리 회사 여직원들로 해야겠다고. 네일아트를 해주면서, 여성으로서의 회사생활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응원해주고, 힘든 일 토닥여주고 하면서 고객관리를 할 수 있다면, 제 경험도 살리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단골을 확보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네일아트를 하러 온 여자들은 남들에게 이뻐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자신을 이쁘게 꾸미고 싶은 가꿔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 유일하게 나라도 나를 챙겨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느낄 때, 비싼 돈 내고 네일아트를 받으러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의 치유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심야 치유의 식당>은 그런 마음이 다친 현대인들의 로망의 공간을 시현해 줍니다. 그곳은 바로 '노사이드'라는 심야 식당. 한때 정신과 의사였던 노사이드의 주인장 철주는 심야식당을 고를 때, 다음을 가장 고려했다고 했습니다. (가상의 공간인 것 같은데 책을 읽다 보면 실제로 있을 법한 공간처럼 묘사를 했습니다.)


대학가 뒷골목 지하에 문을 연 20평 남짓의 작은 가게 노사이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다. 철주가 가게를 얻기 위해 돌아다닐 때 첫 번째로 고려한 것은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충분한 음장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건물의 지하실 높이는 3.5 미터가 기본인데 이곳은 건물주가 사진 스튜디오로 임대하려 만든 곳이라 5미터나 되었다. 복덕방에서는 냉난방에 돈이 많이 든다고 만류했고, 위치도 대로변에서 두 블록이나 들어와 있어 일부러 독특한 것을 찾는 사람 말고는 찾아올 만한 곳이 아니었지만 철주는 그게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석 달째 비어 있는 공간이라 권리금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취한 채 찾아오면 다음 날 다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밤이 되면 단 골드만 좀비처럼 나타나서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다 간다. 처음 들른 사람들은 테이블을 놔두고 바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의아해하고, 테이블에 앉아 쭈뼛거리다가 나가기 일쑤다. 단골들은 이 가게가 망할까 봐 가슴 졸이지만 정작 가게 주인 철주는 태평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장사가 너무 잘돼 음악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게를 연 지 석 달 정도가 지난 지금, 그는 오직 이런 한가함과 나른함이 좋다.
<심야 치유 식당> P9

이 책을 몇 장 읽었을 때, 저는 이 책은 바로 이곳에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최근 알게 된 연희동의 '책바'. 이곳이 많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책 속의 심야 치유 식당, 노사이드처럼 사람이 너무 북적이지 않는 저만의 치유공간으로 남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연희동 책바 Caegbar로 들어가는 길목


오늘 이 책을 들고 저만의 노사이드, 책바를 찾아보았습니다. 책바에 들어선 순간, 이미 공간을 채운 책들과, 한잔씩 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곳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드러나는 메뉴판을 정독하다가, 오늘은 '뱅쇼'를 주문했습니다.


Chaegbar 책바의 메뉴판


막 책에 빠져들었을 때, 스노피크 티타늄 컵에 따뜻한 레드와인이 과일을 한가득 머금고 시나몬 향을 풍기며 등장했습니다. 그 달달함이 좋아서 홀짝홀짝 들이켰는데, 어느새 살짝 기분이 좋은 취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책을 읽을 때, 조금의 알코올을 기운을 빌리면, 정말 집중력이 더 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로 책 속의 노사이드 바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


뱅쇼를 마시며 읽는 <심야 치유 식당>


책에서 '노사이드'를 찾은 사람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저도 삶은 순간순간에서 느낀 때가 떠올라 쉽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 치유의 공간과 그들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에 대한 것입니다.

아픈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 순간들을 버틸 힘이 되는 사람들, 힘이 되는 취미, 힐링되는 공간을 꼭 만들어보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아픔을 들어줄 수 있는 여유와 내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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