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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Jan 24. 2021

혼여행 만랩이 꺼내보는 코로나 이전 여행기

<프로이트의 의자> 고독은 사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부모님 댁에서 나와 혼자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나마 코로나 이전에는 퇴근 후에도 이것저것 바쁘게 할 일을 찾아다니며, 혹은 자발적 혼자가 되어 시간을 잘도 보냈습니다. 혼커피, 혼밥, 혼카페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한 번이 어렵지 이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혹은 너무나 편안하게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일인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라 하여 더 이상 혼자서 무엇을 하는 것이 흠이 되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혼자 하는 것 중에서도 특히나 레벨이 높다는 것이 혼자 여행하는 것이라고 합디다. 젊은 날의 저에겐 혼자 하는 여행이 세상에서 제일 설레고 행복한 삶은 사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제일 처음 해외여행을 간 것이 20살 수능시험을 본 후, 여동생과 단 둘이 일본을 간 것을 시작으로 대학교 2학년 때는 멕시코, 4학년 때는 브라질에서 교환학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해외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며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멕시코에 갈 때도 브라질에 갈 때도 비행시간만 하루가 더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늘 의지할 친구와 함께였기에 첫 도전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테스트해보니 혼놀족 6레벨은 되는 것 같네요


그러다 생애 최초, 혈혈단신 혼자, 연고도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직장인이 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을 때입니다. 직장인이 된 이후, 사회생활을 버틴 유일한 힘은 일 년에 한 번은 꼭 내가 가고 싶은 나라, 가고 싶은 도시에서 1주일이라도 살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 매인 몸이니 일주일 이상은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지인과 친구가 되어 갔던 여행도 있었지만, 직장인끼리 휴가를 맞추는 것이 점점 쉽지 않아 졌습니다. 하지만 꼭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들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조금 배운 배운 저는 현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 여행하는 것말을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여행하는 것과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어 abcd는 배웠으니,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그곳에 혼자라도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제 첫 혼자 한 해외여행이었습니다. 비행기 타고 바르셀로나 공항까지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두었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혼자 케리어를 끌고, 핸드폰 구글맵을 보며 숙소에 어렵사리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숙소비를 절약하려고  다인실로 예약했는데, 짐을 풀려고 문을 열었을 때, 8인실 숙소가 남녀 혼용이란 것을 알고 기겁을 했습니다. 유럽여행이 처음이었던 저로서는, 게스트하우스는 당연히 다인실이라도 여성 전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용이었던 것입니다. 로컬의 분위기를 느끼고,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 한국인들이 머무는 한인 민박이 아닌, 로컬 여행자들이 머물 거란 기대로 숙소로 예약했는데, 이렇게 문화 충격을 제대로 한방 맞게 됩니다. 그날 밤,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잡이 오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랐던 것은 다음 날 낮에도 숙소에 머물 일이 있었는데, 다인실의 한 침대에서 연인이 함께 있는지 알 수 없는(?) 부시럭대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겁니다. 충격적인 유럽의 첫 게스트하우스의 기억입니다.


첫날의 충격을 바로 잊게 해 준 것이 스페인의 아침식사인, 추로스 꼰 쵸콜라떼 (추러스를 초코에 찍어먹는 것)였습니다. 또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문화 유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도시 곳곳을 발품 팔아 돌아다니는 매 순간이 저의 6 센스까지 만족시켜주었습니다. '캄푸누'라는 축구 경기장 투어를 갔을 때, 역시 혼자였습니다. 입장 티켓을 끊으러 줄을 서있는데, 제 앞에 혼자 온 청년이 있길래, 축구선수 '메시'의 실물 크기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고 말을 걸었다가 그가 브라질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우리는 포르투갈어로 이야기하면서, 깜뿌 누 경기장을 함께 구경하고, 바르셀로나 시내 구경도 함께 했습니다. 스페인에서 브라질 여행객과 친구가 되어 포르투갈어로 대화하며 바르셀로나 최고의 스포츠 경기장을 구경한 것을 시작으로 '동양의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저의 '혼여행 레벨'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도시인 마드리드에서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 경기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엘클라시코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축구표를 예매했습니다. 해외여행자의 가장 소중한 것은 구글맵이 있는 핸드폰입니다. 도시가 바뀌니, 유심칩을 바꿔서 핸드폰 데이터를 쓰기 위해 통신사에서 줄을 서서 유심칩 구매를 하려고 있는데, 한국인 청년 두명이 어리바리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유심칩을 구매하고 싶은데, 스페인어로 쓰여있어서 헤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 유심칩을 구매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함께 점심식사도 하며 제가 축국경기를 본다고 하니 그들도 보고 싶다고 해서 그 경기도 함께 봤습니다. 혼자 여행을 시작했지만 늘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누구보다 즐겁게 여행을 했습니다.


스페인 여행 이후에는 '혼여행 레벨'이 만랩이 되었습니다. 뉴욕에 정말 친구 하나 없이, 오로지 핸드폰 속에 담은 '여행 앱'과 가기 전 뉴욕에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만을 가지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스페인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쭐이 난지라, 뮤지컬의 중심 브로드웨이 한복판의 '한인숙소'로 예약을 했습니다. 후기를 꼼꼼히 읽고 간 숙소에 저처럼 혼자 여행 온 여자 또래 친구들 3명이 모였습니다. 혼자 여행 온 것을 안 우리들은 서로 여행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한 물건이나 비상약은 서로 빌려주며 금세 누구보다 의지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동생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자신도 뉴욕에 지인이 전혀 없지만, 꼭 와보고 싶었다고, 저같이 혼자 여행하는 동지를 만나 너무나 반갑다고 했습니다. 그녀와 말을 트자마자,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재즈 바로 돌진하여 칵테일 한잔을 시켜 라이브 연주를 즐겼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뉴요커처럼 스파이더맨 촬영지가 되었다는 피자집에서 페퍼로니 피자를 먹었습니다. 뉴욕 베이글을 찾아가 먹고, 당시 유명했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처럼 벤치에 앉아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먹었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꼭 봐야 한다는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고 진짜 살맛 나는 걸 느꼈습니다. 뉴욕뿐 아니라 워싱턴 DC에 가서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외국인 친구와 동행이 되어, 하루 종일 우주 항공 박물관, 링컨 박물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잘도 구경했습니다.  


이태리 여행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낀 기간이었습니다. 베로나라는 도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가 탄생한 로맨틱한 도시고, 매해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아무리 씩씩하게 세계를 돌아다닌 저였지만 크리스마스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 이태리의 베로나라고 해도 쓸쓸함이 사무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로컬 친구들을 만들고,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현지의 에어비엔비(Airbnb)로 예약을 했는데, 현지 친구는커녕 숙소에 저 혼자 묵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었는데, 샤워를 하면서 '내가 왜 이 좋은 연휴에 홀로 나와서 돈 주고 사서 고생이냐...'라는 생각이 들어서 절로 눈물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씻고 나오니 Airbnb의 주인아주머니가 아침식사를 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식탁에는 요구르트에 견과류가 얹어있고 품질 좋은 꿀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간단한 토스트와 주스를 곁들여준 아침식사는 잠시 움츠러들었던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베로나 시내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베니스로 씩씩하게 향했습니다. 로마에서 만난 한국인 동행친구와 로마 시내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둘 다 서울의 여의도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친구도 일에 많이 치여 이곳에서의 휴식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편도 같아서 한국까지도 심심하지 않게 함께 돌아왔습니다. 여행 이후에서도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살짝 썸을 탔던 로맨틱했던 이태리의 추억입니다.


여행이 제 삶의 낙이자 목표이자 이유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기에 이제는 언제 또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갈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혼자가 사무치게 외로울 만큼 집에서 갇혀서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숨만 쉬어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줄 알고, 철저히 집안에서 보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필수품은 마트 전용 앱으로 배송으로 시키고, 매일매일 현관문 앞에 택배를 받는 것이 유일한 외부인과의 접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아 따스한 온기로 인사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포옹하던 시간이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는 동안 온라인 화상 미팅 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 모임을 통해 이야기하면 어색하던 것도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가끔씩 주고받는 카카오톡 안부 메시지로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버텨내면서  안에서 소통하고, 고독한 시간을 성숙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도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는 경험도 코로나로 고독한 혼자만의 시간을 강제로 갖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있기엔 너무나 답답하고 외로워서, 더욱 성숙해지는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누구보다 이 시간을 단단하게 보내고 있는데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습니다.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프로이트도 화려한 사회생활보다는 소수의 친구나 동료들과 담소, 토론하거나 혼자서 생각하고 읽고 쓰는 시간을 훨씬 더 즐긴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중략)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122P>


이 코로나가 끝나도,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기후변화로 외출하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을 매일 본다고 해도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서로에게 영원히 낯선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이 마음 깊이 박힙니다. 코로나라도 온라인으로 메시지로 따뜻해지는 관계를 맺으며 조금 더 이 고독의 시간을 버텨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말을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곧 날씨가 풀리고 봄이 오면 이 시간도 안정국면으로 접어들어 다시 사람과 사람이 맞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때까지 고독을 성숙의 시간으로 잘 보내고 있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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