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언니 Jan 17. 2021

잘못된 만남

 <프로이트의 의자: Chapter 2.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를 읽고

마음이 허전할 때 한 훈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주특기인 '관심 있는 사람에게 친한 척을 발휘한다' 스킬을 앞세워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그를 포함한 무리의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고도 아쉬워서 헤어지는 길에 편의점에 모여 앉아 새벽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고 알아가면서 그의 다정함에 더욱 빠졌습니다. 그 친구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여자 친구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상황이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잠시 희망을 꿈꾸기도 했고요. 그 여름의 순간들이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제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여자 친구를 함께 어울리는 무리에게 소개해주고 다 같이 친하게 지냈는데, 모두 어울려 함께 놀러 간 어느 날, 제가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저에게만 다정하고 친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여자 절친과도 연락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저는 친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질투가 폭발하여 그 친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절친 또한 꼴 보기 싫어서 차갑게 대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와 제 절친이었던 여자 친구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저와 썸을 탔던 그 남자가 왜 제 절친과 친해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제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그년이 꼬리를 쳤을까요? 저는 그 둘과 손절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함께하던 무리의 또 다른 친구와 연애를 했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한여름을 뜨겁게 보냈던 우리들의 사이는 수증기처럼 흩어졌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도 아팠고, 그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다 잃었던 것도 아파서, 한동안 쓰라린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시간을 꺼내 들추어 보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계절이 돌아 일 년쯤 지났을까요? 카톡 프로필을 찾아보다가 한때 제가 좋아했던 남자의 프로필 사진에 제 절친과 단둘이 찍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아마 둘이 사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를 카톡에서 차단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카톡 차단할 건 또 뭐람?' 다 지난 일인데 괜히 카톡 프로필을 들추어봐서 힘들게 잊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한쪽 가슴을 유리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쓰라림을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했던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남자, 그리고 저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던 옛 연인까지 모두를 상실했다는 감정이 일 년을 지나도 또다시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픔을 누구에게도 쉽게 말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의자>를 만나다


다행히 이번 달 심리학 독서모임 마담에서 읽은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제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챕터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때의 제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꺼내어 털어놓고, 놓아주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내가 원하던 사랑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랑이 나를 떠났습니다. 절망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이제는 내놓고 절망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사라지면 절망의 늪은 더 깊어집니다. 나는 추락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부정의 방어기제를 출동시켜 '사랑 안 해!'로 급선회합니다. 그가 나를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절망이 주는 폭발적인 에너지 P81


계절이 돌아오듯 사랑은 다시 찾아온다

다시는 사랑을 못하고, 안 할 줄 알았는데, 계절이 돌아오듯 신기하게도 설레는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와  좋은 감정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아서, 이전의 사랑과 아픔은 다 잊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이 남자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그만의 영역이 단단하여 제가 선을 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점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로 심리적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과 가까워지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그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막상 가까워지면 그가 나를 통제할 것 같아서입니다. 가까워져서 그가 나를 자세히 알게 되면 나에 대해 실망하고 나를 떠날 것 같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공포는 나를 믿지 못하는데서 온다 P68


내가 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새로운 사람과도 관계를 정리하면서 '내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내 자신을 또 자책했습니다. '내가 문제가 많은 것일까? 내가 매력이 없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존재가 못 되는 것인가?' 사랑의 실패가 저만의 탓이 아닌데 자꾸만 저를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뻐지는 것만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았습니다. 차가운 시술대 위에서 의사가 얼굴을 바늘로 사정없이 찔러대는대도 두 주먹을 꽉 쥐고 참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온통 '그가 왜 나를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얼굴이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픈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잊기 위해 몰두했습니다. 운동에 몰두하고, 책에 목두 하고, 재테크 공부를 했습니다. 2주만 버티면 그다음이 잊기 쉬워진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절망에 따른 증오를 동력으로 삼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겪은 치욕을 역사서 완성에 몰두하는 것으로 승화시켰던 중국의 사마천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려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절망을 동력으로 삼은 생생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비극적인 일에도 다 동전의 양면이 있습니다. 삶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희망과 절망이 연속으로 교차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절망이 주는 폭발적인 에너지 P82


상처 받은 마음 들여다보기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의  상처 받은 순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사랑의 실패 경험을 조금 객관적으로 보게 됩디다. 저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에게서, 제가 미치도록 싫어했던 모습에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 스스로를 싫어했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 또한 그들처럼 여리고, 유혹에 약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의식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던 적도 있는데 그것은 잊고, 제가 그들에 의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상처만 아프고 쓰리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죽음만이 우리를 떼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로, 때로는 인간이 지닌 어리석음과 오해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실연의 상처는 생마늘처럼 아립니다. 이제 그 사람은 떠나갔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날 것 같습니다. 내가 집에 없을 때 그가 찾아오면 허탕 칠까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합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절망이 주는 폭발적인 에너지 P82


'그때의 내가 많이 아팠구나. 내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뿐인데 내가 죄 없는 나를 자책하고 사랑해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약하고 못난 그 모습을 스스로 감싸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믿었던 친구에게 칭찬을 들어야만 '인정받는다'라고 느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내 맘대로 생각해놓고 그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혼자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것입니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나 스스로'에게 상처 줬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애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자 나의 가치에 대한 나의 사랑입니다. 자기애는 내가 항상 무대의 중심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연으로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 수치심, 분노가 얼른 찾아옵니다. 사귀고 있는 연인과 식사하는 자리에 자랑하려고 친구를 데리고 나갔다가 연인이 그녀에게 보이는 관심 때문에 화가 난다면 자기애가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늘 위험합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분노라는 무의식을 다스리는 방법 P90


저는 저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가 제가 상상 속에서 좋아하는 모습으로 크게 만들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알아간 것 만으로 충분히 용기를 냈고 잘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런 저를 충분히 사랑해줘야 했었습니다.

망설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리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불편한 마음으로 서성이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 마음과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강요해서도 아니고 스스로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다가 기운을 빼고 제자리에 쓰러집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도망간다고 피할 수는 없다 _ 망설임, 열등감 P95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제 마음의 속도와 똑같지 않다면 기다려주기도 했었어야 했습니다. 내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그에게 서운해하고, 일방적으로 손절했으니 그들은 또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저는 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한 번의 용기를 낸 저 자신만 보고 그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두 번의 용기는 못 낸 것을 지금에서야 아쉽게 생각합니다. '진드감치 때를 좀 더 기다렸다면 지금과 다른 관계였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질투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질투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피하려다가 결국은 실패하는 게임입니다. 질투는 소용돌이 폭풍과 같이 그 속에 서면 다치거나 실종됩니다. 질투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그를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동시에 실패로 끝날 것을 미리 알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싸워서 그를 얻기 위한 무기로 쓰기에는 '질투'라는 무기는 역설적으로 너무 허약합니다. 질투란 처음부터 내가 희생자로 보이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나는 질투에 사로잡혔다. 고통스럽다. 질투 때문에, 질투하는 나를 내가 탓하기에, 질투가 다른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서, 내가 질투와 같이 흔해 빠진 감정에서 헤어나질 못해서,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끊임없는 생각에 내가 미칠 것 같아서 나는 정말 힘들다. 두 사람의 행동, 눈빛 하나하나 모든 것이 나를 질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내 사랑을 통해 쌓아 나간 그 사람의 얼굴과 몸, 자상함, 따뜻함이 그동안 얼마나 내 마음을 감싸고 위안해주었던가. 이제 그것들을 모두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린다면 정말 못 살 것 같다."
시기심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때, 질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할 때 나타납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결국 실패하는 게임, 질투 P104

제가 좋아하는 이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던 한때의 절친을 제가 질투했을까요? 모든 것이 그녀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던 저는 스스로 자만했을까요? 그녀가 제 썸남을 꼬셨을까요? 진실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지만 궁금한 것을 어쩔 수 없네요. 분명한 것은 그녀와도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는 갖고, 사실을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질투하는 제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진실을 알고, 결과를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 아쉬움과 힘들게 보냈던 시간을 단축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사랑을 꿈꿉니다. 감정이 정리된 지금은 그들을 우연히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좀 더 성숙하게 감정 컨트롤을 하면서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보다 지금은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기고, 타인을 쉽게 믿지 않고,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것만으로 값진 생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의 무엇도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연애도 사랑도 내가 마음먹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던 치기 어린 때가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내 의지가 아니라 그냥 인생이 흘러가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마음도 인생의 인연도 모든 것을 너무 의지와 목표로 강행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네요.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봅니다.

운명을 바꾸고 싶은가요? 정말 운명을 바꾸려면 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성격 패턴을 알아내서 그것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절감에 빠져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좌절로 인해 막힌 마음이 뚫립니다. 하다못해 칫솔을 들고 양치질이라도 하면서 일단 움직이면 좌절의 공회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고무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것은 커다란 망치가 아니라 아주 작은 바늘의 끝입니다. 그러니 일단 작게 시작하면 됩니다.
좌절은 발병은 피해 가면서 면역력을 길러주는 예방주사같이 현명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현명한 것은 살면서 겪는 일들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좋고, 나쁜 일은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긍정적 사고입니다.
좌절은 필요한 약입니다. 강한 칼을 만들기 위해 대장간에서 쇠를 달궜다가 식혔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좌절은 인생의 종말이 아닙니다.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프로이트의 의자>  새로운 정거장에 선 것일 뿐 _ 좌절 P92
매거진의 이전글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