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남편이 해외파견근무를 나가면서 동생은 한국에 혼자 남게 되었다. 사내 커플로 만난 그 둘의 운명적 갈림길에 대해 처음 동생이 나에게 상담을 해왔을 때, 나는 주저 않고 동생에서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가라고 조언했다. 파견을 나가는 것은 제부이지 동생은 아니기에, 그 경우에 여동생은 회사를 퇴사해야 하기 때문에 큰 인생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이유는 '가족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어렵게 내린 동생의 결정과 다르게 현실은 코로나 상황의 특별성으로 인한 '강제 쌩이별'이었다. 동생의 남편은 일 때문에 비자가 나와 해외에 있지만, 일없이 머물게 되는 동생에게는 비자가 빨리 나오지 않기에 동생은 반년 째 서울에 머물고 있다.
어쨌든 생이별의 한 부부의 사이에 덩달아 곁에 남은 나는 호재였다. 여동생 부부와 나는 지하철로 한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사는데, 부부가 함께일 때는 결혼한 동생을 아무 때나 불러내는 것이 민폐라 생각되어 연락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줄여갔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동생에게 언제든 연락해서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같이 밥도 먹고 수다 떠는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로나이기도 하고 '독거노인'으로 늙어갈지 모르는 나에게 동생은 만만한 밥친구이자 수다 메이트로 자리를 잡아준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늘 같은 날은 점심시간을 맞춰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다녀온 동생은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
"언니, 아빠가 감정적으로 많이 쌓였나 봐..."
"아빠가? 아빠가 쌓일게 뭐가 있어~."
"아빠 외로운가 봐..."
"아~ 그랬어? 뭐 때문인지 이야기해봤어?"
동생에게 들은 아빠 이야기는 사촌 동생이 첫아이를 낳았는데 아빠에게 연락 한번 없이, 작은 아빠를 통해서 소식을 듣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아빠는 종갓집 장손으로 온 가족을 챙기고 관심을 갖았는데, 정작 가족들은 아빠에게 살갑게 자주 연락하여 소식을 알리지 못하니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아빠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촌의 입장 또한 이해가 가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다만 나는 아빠 딸이니 아빠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기로 한다.
동생과 나는 아빠가 왜 서운하신지, 왜 외로우실지 깊이 동감한다. 그리고는 동생의 한마디.
"아빠가 손주 보고 싶은가 봐..."
"그렇지... 보고 싶지... 내가 (결혼은 안 했어도) 이렇게 잘 살고 있지만, 그 생각하면 부모님께는 늘 미안하지."
하며 나와 동생은 고개를 떨군다. 점심으로 먹고 있던 짬뽕국물을 맛있게 먹으면서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니 짬뽕밥 먹으면서 눈물지을 일이야?"라고 말하면서도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쳐낸다.
예전 같으면 부모님은 이미 손주를 봐도 3~4명을 보실 나이다. 그리고 다행히 내 여동생이 결혼을 했고 동생의 남편, 즉 아빠의 사위가 살갑고 친절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같은) 사위'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마 손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실 것을 두 딸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티슈를 몇 장이나 뽑아 쓴 후, 눈물을 찔찔 짠 게 언제인가 싶게 다시 짬뽕밥과 탕수육을 흡입하며, 동생과 시험관 아기 갖기, 난자 냉동 등등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우리같이 대학교육까지 잘 마치고 사회에서 일을 잘하고 있는 여성이 결혼과 출산과 자신의 꿈과 자아실현을 조화롭게 이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이야기를 해본다.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빠의 외로움을 깊이 공감하고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뵙기, 즉 좀 더 살갑게 대해드리기다. 짬뽕 국물은 전에 없이 참 맛있었고, 중간에 잠시 해프닝은 있었으나 훈훈한 결론을 내렸으니 잊지 못할 '인생 짬뽕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