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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Oct 14. 2020

십 년 회사생활을 버티게 한 한마디 말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일곱 번째 업무일지

술 취한 팀장님은 늘 같은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아는 언니'가 건배제의를 처음 하던 날, 그걸 못해서 내가 벌주로 세잔을 연거푸 마셨어..."

그날도 술기운이 올라온 팀장님은 어김없이 같은 레퍼토리를 상기하십니다. 중남미 모든 담당자들이 모인 연례 회의의 뒤풀이 자리였습니다. 국내 담당자와 해외 주재원들 그리고 지역 대표님까지 참석한 큰 회의였습니다. 신입으로 입사하여 처음 큰 회의에 참석하던 날 저는 아침부터 엉망이었습니다. 긴장하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잘 되지 않은 채,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이힐을 신고 연거푸 뛰어다니던 신참내기였습니다. 그날 저녁 모든 중남미 담당자가 다 모인 자리에서 지역 대표님께서 저를 지목하여 건배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건배사? 그건 어디다 말아 마시는 거야?' 당시만 해도 건배사가 뭔지도,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르는 갓 대학을 졸업한 '베이비'였습니다.


4년이 지나, 처음 인사를 중남미 모든 담당자가 모인 자리에서 건배사로 신고식을 했듯, 마지막 인사도 술자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3년 차 회사원인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중남미 담당님이 해주신 말씀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떠올려봅니다.


'아는언니'의 브랜드를 만들어라


담당님을 처음 만난 건 콜롬비아 출장 때였습니다. 주재원이 법인장님께 출장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3장짜리 프레젠 테이션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재원은 3장의 보고서는 필요 없고,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하라고 했습니다. 그간 제가 해왔던 직속 상사나 팀장께 하는 상세 보고가 아니었습니다. 간단히 '신제품 특징을 살려 누구를 대상으로 이 출장교육을 진행했고, 결과가 어땠다'라는 식으로 딱 세줄로 보고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주재원과 함께 법인장실에 들어가 보고를 간략히 마쳤습니다. 처음 보는 법인장님은 커다란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큰 아우라가 풍겼습니다. 그렇게 콜롬비아 출장을 마치고 다음 출장지인 페루로 이동하기에 그날로 콜롬비아 일정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차편으로 비서가 쇼핑백을 전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안에 든 것은 콜롬비아 커피였습니다. 당시에 커피맛도 몰랐지만, 제가 아는 한 제일 높고 큰 분이 챙겨준 자그마한 선물이 마음에 크게 다가왔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일 줄만 알았던 분께서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중남미 담당님이 되셨고, 저는 이제 중남미 마케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송별회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주셨던 커피가 먼 타국에서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듯, 마지막 한마디는 영원히 가슴에 남았습니다. '나의 브랜드를 만든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작년에 마무리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그때였기 때문에 그 활동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 나눌 수 있었다. 올해였다면, 내년이었다면, 혹은 삼사 년 후였다면, 그런 일은 장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창작도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달라야 한다.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워질 수 있고,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집에 도착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젼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십 년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아마 평생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특별한 십 년이었다. 나는 밴드를 했던 것이 아니다. 밴드를 ‘믿었다’. 밴드라는 것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신을 믿었다. 대학 초년생 때에는 이런저런 철학 사상을 믿었다. 그 후에는 음악을 믿었다. 그중에서도 밴드, 밴드 음악을 믿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늘 뭔가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무언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것에 연연하기도 하지만, 종교처럼 믿지는 않는다. 밴드는 내가 가장 최근까지 믿었던 무언가다. 어쩌면 내가 오늘 자유로 위에서 느낀 것은 내 인생에서 믿음의 시절이 지나갔다는 데서 오는 서글픔이었는지도 모른다.
출처 [일간 이슬아/ 인터뷰] 2020.09;09. 水 : 말 같은 노래, 노래 같은 말 _ 장기하X이슬아 (上)에서 인용한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105쪽


며칠 전 10년 동안의 밴드 생활을 그만두며 책을 낸 장기하 씨의 글을 읽으며 그때의 제 마음이 잘 표현된 것 같아 송별회 때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한마디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데, 당시 송별회의 이 한마디 덕분에 십 년을 이 회사에서 저만의 브랜드를 쌓으면 다닐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최근 <딴짓 일지>와 함께 <열 일하는 '아는언니'의 업무일지> 시리즈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중남미 마케팅 팀원으로 보낸 4년을 늘 자랑스워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들은 그 묵직한 말을 얼마나 가슴에 새기고 브랜드 파워를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느덧 중남미 팀원으로 일한 4년의 3배가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르는 것이 하니라, 현재 진행형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아는언니'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내일은 또다시 출근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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