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그녀를 울렸다.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열한 번째 업무일지

by 아는언니
제가 안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요...
흑흑흑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나와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던 사람도 아니고, 해외 그것도 이집트에서 일하는 20대 사회 초년생의 여자 후배가... 국제전화로 다그치는 제게 서운했는지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국말도 어눌한 그녀가...
제 마음은 쿵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내가 그녀를 울렸다...'

사회 초년생 때 저는 자주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설움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절친과 통화를 했는데 그 장소가 대부분 화장실이었기에 친구는 저에게 늘 "'변기통을 잡고 울던' 아는언니... 요즘은 회사에서 잘 지내?" 하고 안부를 물었었습니다. 저는 자주 서러웠습니다. 대학생 때 따지만 해도 승승장구, 제가 목표한 것은 웬만해서는 다 이루며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상사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상사는 대부분 '왜, 무엇 때문에, 뭐가 잘못됐는지' 잘 알려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시절 저는 모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누군가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그저 서러웠습니다.

그런 저였는데... 저 때문에 회사 후배가 울다니... 저 또한 충격이 컸습니다. 세 번째 이집트 출장은 온전히 법인에서 새로 입사한 신규 인원을 교육하기 위해 와 달라는 요청에 따른 출장지원이었습니다. 출장 일주일 동안 신입사원이 회사의 프로세스를 잘 익히도록 업무 루틴에 대한 일정을 짜주고, 시스템 교육을 하고, 주의해서 시간에 맞추어 꼭 완료해야 하는 실무적인 일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 딱 붙어서 밀착 업무지원을 하면서, 업무 노하우와 일정관리를 알려주고, 그녀가 잘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히잡을 쓴 이집트 소녀, 무슨 말을 하면 까르르 잘도 웃고, 업무에 치여 미간을 찌푸리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녀, 회식자리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고기와 술을 먹지 않던 그녀. 저는 그녀가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 주재원과 파트너십을 잘 발휘하여 적응을 잘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녀가 적응을 잘해줘야 담당자인 제가 편해지니까요.

첫날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장시간의 비행과, 수분 부족과, 타지에서 단백질 위주의 식사(고기, 치즈 등) 때문인지 변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이 증상이 매우 불편해져서 저는 연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아랍어를 쓰는 이집트에서는 일반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쇼핑몰에서 찾아간 약국에서 이 증상을 설명하고 적절한 약을 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낯선 곳에서 이 난감한 상황을 시커먼 남자 직원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저는 출장기간인 일주일 동안 얼마나 불편해하며 지냈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외국인에다가 처음 보는 저보다 어린 여자 직원에게 이런 제 상황을 말하기 참 불편했지만 살기 위해 말했습니다. 도와달라고. 매우 불편한 상황이라고. 그녀는 약국에서 아랍어로 약사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못 알아듣는 말들이 오고 간 후 연고를 사 왔습니다. 다행히 연고는 아주 효과가 좋았고, 덕분에 일주일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고, 그녀와의 인간적 연대로 인해 일주일간 열과 성을 다해 그녀에게 제 모든 노하우를 더욱더 인간적으로 알려주었던 것이죠. 출장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던 날, 마지막 인사에 그녀는 핸드폰을 내밀며 같이 셀카를 찍자고 하였습니다. 서로 꼭 안아주며 저는 그녀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다음에 올 때까지 절대로 그만두지 말라고, 궂세게 버티라고..." 그녀의 상사는 유명하게 깐깐한 한국 주재원이었기에 그 밑에서 일하는 그녀의 미래가 얼마나 힘들지 눈에 선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가이드를 하며 그녀를 도왔는데, 생각만큼 딱딱 맞아떨어지게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담당한 이집트 법인 주재원에게 화가 났습니다. 어차피 총책임자는 그 주재원이고, 그녀는 그 주재원이 시킨 일을 하는 수준인 것이었습니다. 원리 원칙을 지키지 않고, 본인 위주로 업무 하는 주재원에게 화가 나고, 인프라가 한국 같지 않고, 열악한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시간에 쫓기는 그들이 한국 본사의 가이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음은 늘 저의 스트레스 요인이었습니다. 그것이 쌓여서 그녀와 업무 통화에서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왜 내가 가이드한 대로 수정하지 않았니? 내가 하나하나 매주 가이드하는 거 보기는 하는 거니? 이집트는 대체 왜 그런 거야?" 저도 모르게 집요하게 따지고 들어갔던 겁니다. 어찌 보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했다면, 상대방의 상황을 보고 감정조절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전화상으로 저는 일방적으로 제가 할 이야기만 퍼부은 것이죠. 그러다 그녀의 울먹임에 저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회사의 누군가가 저 때문에 운 것을 최초로 목격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한창 어린 시기에는 그렇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업무상 압박하고 심지어 감정적으로 모멸감을 줘도 참아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요? 아랫사람들에게 갑질은커녕 애정 어린 잔소리 라도 할라치면 절대 그들은 참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투 운동도 나름 효과가 있어 남자 상사가 여성 차별적 발언을 하면, 장난 삼아 '미투 미투!'를 외치면 가볍게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변한 시대에,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은 여자 상사의 시집살이와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여성비하 발언과 음담패설 등에 마음 상해서 화장실 변기를 잡고 우는 날이 다반사였던 제가 후배를 울린 것입니다. 그것도 전화상으로. 그것도 해외의 외국인 직원을...

그날 저는 깊이 반성했습니다. '내가 당한 대로, 내 시절에 선배가 나한테 했던 대로 하면 내 후배에게 같은 상처를 주겠구나...' 내가 지금의 회사에서 롱런하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나에게 무례했던 선배들을 용서하고 떠나보내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이 못된 짓인 줄 모르고 했던 언행들을 내가 무의식 중에 내 후배들에게 하지 않도록. 본받을 점이 많고 인간적으로 좋았던 선배들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후배들에게 베풀어야지, 자꾸 상처로 남았던 선배들을 생각하지 말자고... 그들을 놓아주라고 제발... 그리고 또한 그들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가 그냥 바뀌면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더욱 안타까운 건, 그녀에게서 10년 전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가리지 않고 글로벌 이곳저곳을 누비며 일할 수 있었던 시간이 돌이켜 보니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롤모델이 없어 방황하고 어리바리할 때, 나와 비슷했던 그 모습을 한 선배가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의 힘은 대단합니다. 이제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할 차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대단하진 않아도 한결같이 그곳에서 버티고 있음으로 힘이 되는 '아는언니'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물론 오늘도 저는 대단하진 않지만 한결같이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수면 밑에서 미친 듯 발구르며 헤엄치는 백조처럼 또 다른 저의 부캐로 분하여 딴짓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keyword
이전 13화춤바람 났다고? 니들이 춤맛을 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