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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03. 2020

업무 하며 만나게 되는 진상 유형

10년 차 회사원 '아는 언니'의 업무일지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기획업무에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취합입니다. 취합이 무엇인고 하니, 글로벌로 50개의 해외 법인이 있으니 각각의 법인의 현황을 묶어 지역별로 말아 올리고 글로벌 토털로 말아 올리는 일입니다. 오늘도 주요 보고를 위해 바쁘게 취합을 해야 합니다. 50개만 딱 취합하는 것도 아니고, 전년 실적도 비교해야 하고, 금년 목표도 비교해야 하고 즉 트렌드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하기에 적당한 숫자인지를 점검해야 하는 일입니다. 실로 숫자놀이입니다.


그런데 이 취합이라는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어떤 지역 담당자는 자기 소속 법인 사람들의 모든 숫자를 다 모아서 전체 지역 숫자로 검토하고 적정성 여부를 점거하여 회신합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요청한 데드라인 시간을 딱 맞춰서 두 번 손댈 필요 없이 깔끔하게 일처리를 해줍니다. 정말 같이 일하는 것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투덜거립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계속 남 탓을 합니다. 심지어는 저에게 자기 담당 법인 숫자를 만들라고 합니다. 제가 며칠이나 머리를 싸매고 그 50개 법인 숫자를 혼자 다 만들어서 대략적인 기초 안을 주고 거기서 현지 상황에 맞는지를 점검해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 던지는 겁니다. '네가 해' 참으로 무례하고 무능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 미운 사람일수록 떡 하나를 더 줘야 합니다. 그래야 회신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럽지만 비위 맞추고 이해하는 듯한 영혼 없는 멘트로 그를 독려합니다. 이럴 때면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요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 썩어있는 표정을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늘 데드라인을 넘깁니다. 그 데드라인을 넘기는 순간 저는 담당자 제량으로 그의 담당지역 숫자를 제 맘대로 요리합니다. 글로벌 숫자 보고에 유리하도록 깎아버리기도 하죠. 그는 자신이 데드라인을 넘겨 제출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모르나 봅니다. 이미 저는 최종 숫자를 팀장님께 보고하고 넘겨버리니까요. 업무에서의 기본 에티켓인 요청 시간에 맞추는 것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일한 지 20년 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런 기본이 안되어 있다면, 아무리 상사라도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약속과 데드라인 지키는 것은 저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엄수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업무가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을 때, 똑똑하게 사리 살짝 조언을 해주는 감동적인 상사나 동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위에 말한 모든 안 좋은 예시의 유형인 사람들이 저를 괴롭혔고, 저는 유관부서가 요청한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도록 점심식사와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고 일에 몰두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무척 매운 것이 당깁니다. 들어오자마자 비빔면 하나에 양념장을 한가득 붖고 입에 양념 묻은 줄 모르고 신나게 먹고 나서야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를 조금은 날렸습니다. 이 모든 마음에 안 드는 유형에게 하나씩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물으며 처단하고 싶지만, 오늘도 빨간 비빔장이 코끝을 울리도록 먹으며 마음에 할 말을 묻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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