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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06. 2020

그의 뒷모습이 보이던 추웠던 한주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업무일지

요즘 우리 부서는 계속적으로 유관부서의 공격을 당합니다. 원래도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당하고 회의에서는 서로 물고 뜯는 것이 일상이지만, 한 달이면 안정될 줄 알았던 이슈가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째 되도록 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팀장님은 볼 때마다 얼굴의 팔자주름이 깊이 패어가고, 머리털을 숭숭 빠지고 말라가십니다. 저는 원래 팀장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이드 없이 일 시키고, 고생했단 토닥임도 한번 없는 그에게 서운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참 안쓰럽습니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 그는 늘 점심식사를 패스합니다. 궁금한 게 많은 그는 자리에서 계속 회의 준비를 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팀장님이 늘 보호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책임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은 잘 안 하고 뺀질 대지만 팀장님의 술친구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회의 리뷰 때 팀장님은 저를 비롯한 기획 담당자들에게 '술 마실래?'라고 수척한 얼굴로 지나가듯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괴로우실지 짐작이 됐습니다. 그의 말에 저는 대답을 선뜻하지 못했습니다. 팀장님 주관의 회의 내내 그는 유관부서 팀장과 담당들에게 갈굼과 수없이 많은 요청을 들었습니다. 힘들었을 팀장님에게 술상무 책임들은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그를 남겨둔 채 자기들끼리 몇몇 어울려 술자리로 향했습니다. 일도 안 하면서 팀장님도 안 챙기는 그 책임들이 저는 더 미워졌습니다.


오늘은 부사장님께 보고하는 회의에 판순이로(보고자료를 스크린에 띄우는 역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수장, 담당님께서는 보고 내내 부사장님의 갈굼을 들으셨습니다. 그때마다 표정 하나 일그러짐 없이 '죄송합니다'를 연이어 말씀하시며 보고를 이어가셨습니다. 그에게는 퇴근시간도 없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이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그는 늘 일과 함께하는 일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번 주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매일 저에게 자료를 빨리 달라고 닦달하던 본사 담당자였습니다. 그의 전화를 보면 늘 얼굴이 찌뿌러집니다. 그는 늘 저를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넉넉하게 주지 않고 전화를 받을 때까지 몇 통이고 부재중 전화를 남기던 그였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자마자, "실적은 다음 주에 나와요. 다음 주에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냥 전화했습니다. 다음에 밥 한 끼 하자고요. 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끊었습니다. 며칠 전 동료에게 그가 저에게 했던 그 수많은 재촉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무수히 많이 했고, 심지어 본인보다 윗사람한테도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윗분은 성질이 보통이 아니며 목소리는 기차 통 삶 아드 신 분인데, 그분이 그에게 "이 개 xx야, 내가 니 전화를 왜 받아!"라며 온 층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며 면박을 줬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매주 보고자료를 송부해야 하는 유관부서 상사가 오늘 회의 끝내고 카톡으로 '수고했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겨주었습니다. 그가 장표 하나 제 손으로 고치는 것 없이 늘 시켜댄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취합을 많이 해보니, 혹여나 의도가 빗나갈까 원작자에게 늘 확인하고 직접 고쳐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 매우 피곤한 일임을 되새겼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상하게 사람들의 뒷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벌써 패딩을 입고도 옷깃을 여미고, 달력의 남은 장이 하나 밖이 없다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화살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코로나로 쉽지 않은 과제들이 많이 떨어졌고, 그 과제를 해내느라 머리를 싸매고 시작한 것 같은데, 연말까지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쉽게 마음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또 태세를 바꾸어 저를 닦달하고 공격할지 모르니까요. 어쩌면 그들의 외롭고 씁쓸한 마음이 깊이 공감되는 만큼, 누군가의 눈에는 저의 모습 또한 많이 짠하고 안쓰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생활을 편히 하려면 이런 유약한 마음 같은 건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마음이 약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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