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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08. 2020

진짜 행복하다고 느낀 기억이 있나요?


언젠가부터 '행복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주말에 힘들게 잘 놀았을 때, 글이 잘 써지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기가 막히게 바로바로 탈 수 있을 때 소소한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줄여서 소확행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저는 제 삶에 주어진 상황들이 늘 감사하고 행복해서 항상 겸손하고 고마움을 알면서 '나대지 말고 살자'라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 '나댄다'는 표현은 행복이 넘침에 겸손하지 못해 누군가 나의 행복을 앗아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늘 위와 같은 마음으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늘 힘들고 지친다고 찡찡댄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찐으로 경험하며 생각의 전환점을 얻게 된 계기는 대학생 시절 브라질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학생 때도 저는 공부와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꽤나 삶의 바쁨과 찌듦을 일상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3년을 힘들게 보내고 감사한 기회를 얻어 브라질에 가서 만난 사람들은 참 소박한 행복을 즐길 줄 알았고 유쾌하고 저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늘 소소하게 행복을 느꼈던 것은 홈스테이 가정의 하숙집 엄마, 저는 그녀를 제 '브라질 엄마'라 부릅니다. 그녀는 제가 학교 간다고 인사할 때마다 저를 부서질 듯 꼭 안아주면서, "Vai com Deus"(신과 함께 할 거야)라고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습니다. 그게 참 행복했습니다. 브라질 가족들은 늘 제가 불편하지 않을까 신경 써주었고, 특히나 홈스테이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실의 테이블에서 제가 작문 숙제를 할 때, 문법이 틀리지 않은지 봐달라고 할 때, 골똘히 보고는 고쳐주던 시간들이 뇌리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브라질 치즈를 듬뿍 바른 토스트를 간식으로 나눠먹곤 했습니다. 참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그 시절을 지내면서 저는 좀 더 많이 행복하게 사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행복을 배우고 체험한 것 같아요.



 

행복은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다. 현대인들은 행복이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가벼운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자신이 너무 행복해질까 봐 경계한다. 너무 창의적이 될까 봐 걱정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경계와 의심은 행복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되며, 그 오해는 행복이라는 한자의 한계와 관련이 있다. 행복이라는 한자는 행복의 본질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 제각각 추측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생겨난다.

행복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처럼 가벼우면서 대가의 작품에서 경험하는 영감과 경외감처럼 깊이가 있다. 행복은 고통의 완벽한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려는 자세다. 무엇보다 행복은 행복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단 하나의 감정이 아니다. 삶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슴이 설렌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것이다.

<굿 라이프> p53



지금도 가끔 힘들 때,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통도 꼭 지나가고, 소소한 행복은 늘 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 저는 제 행복을 스스로 챙길 줄 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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