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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언니 Nov 12. 2020

그의 출근이 기다려지는 상사도 있다

10년 차 회사원 '아는언니'의 업무일지

보통 임원급의 상사가 제 자리 근처로 출근하는 날에는 불편함과 긴장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의 출근이 기다려지는 상사가 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출근하셔서 더욱 반가운 저의 존경하는 상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적 배움을 공유합니다.


첫째, 가장 기본은 역시 인사

우선 힘든 상황이 연속되는 가운데에도 늘 인사에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 저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사실 표정도 경직되어있고, 인사도 건성으로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늘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이 직장 후배의 인사를 잘 받아주고 미소로 답해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은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입니다.


둘째, 믿음과 배려

그분과 업무 리뷰를 할 때 한 번도 역정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숫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이 데이터 믿을 수 있냐며 면박을 주는 상사들과만 일해본 저로서는, "이 데이터는 한번 다시 봐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상사는 여태껏 처음입니다. 그는 아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담당자가 눈알 빠지게 숫자를 보고 검증해도, 이상하게 다른 사람의 눈에는 틀린 게 보인다는 사실을요. 그것을 나무라지 않고 기다려주고 수정하라고 점잖게 이야기해주는 상사는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만 같습니다.


셋째, 경청

상사에게는 주로 메일로 업무보고를 합니다. 하지만, 상사를 대면했을 때 짧고 간결하게 업무보고를 하거나, 의사결정을 받을 수 있게 브리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실무자는 데이터를 상사가 보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잘 다듬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일의 방향성에 대한 의사결정은 상사가 합니다. 연이은 회의와 의사결정으로 바쁠 그의 머릿속을 간결하게 해주는 간단한 보고, 그리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검토 요청할 때 그는 단 한 번도 바쁜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담당자는 늘 그에게 편하게 다가가서 보고하고, 방향성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로 이런 여유를 내주는 상사는 드뭅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 더 그를 존경합니다.


넷째, 방향성

오늘도 그에게 의사결정 필요사항을 보고했습니다. "저의 팀장님과 협의한 방향성은 A이고요, 유관부서에서는 A를 용납할 수 없다며 B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B 안을 받아 들일 지 방향성 결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말했고, 그는 제게 다시 물었습니다. "담당자로서, 우리 부서의 롤을 볼 때, 어떤 의견인가요?" 저는 그것에 대한 답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늘 영업팀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팔로업 하는 정도로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제 생각을 정확히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대답했습니다. "지표 관리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좀 더 보수적으로 목표 설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업 안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으로 목표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상사는 말씀하셨습니다. "관리 측면에서 우리 부서의 롤을 생각할 때,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짧게 그와 대화했지만,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우선, 상사가 시키는 일만 그냥 했지, 제 생각을 정확히 가지고 업무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역시 조직의 수장답게 우리 조직적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부사장님 보고에 들어갔을 때 그의 모습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부사장님은 역정을 내며,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왜 진행하는 거야? 그냥 변동 없이 쭉 판매 계획 유지하면 관리하기 편하다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짜증 섞인 뉘앙스의 질문만 들어도 저는 벌써 긴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리더는 긴장된 목소리는 느껴지지만 차분하게 설명하십니다. "아닙니다. 계획을 그대로 진행했을 때, 현재의 상황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의 효과가 있습니다."라며 조곤조곤 신규 프로젝트의 효과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때도 오늘도 저는 다시 한번 배웁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그냥 회사원이 된다고.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담당자의 의견과 근거가 있어야 제대로 일하는 회사원이 된다는 것을.


하루 종일 앞뒤로 앉아서 거리상 밀접하게 일을 하는 가운데도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업무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을 때 회사원은 진정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잠시 얼굴 보는 상사에게서 짧은 순간 동안 이런 감사함과 존경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면 그날은 아무리 일이 고돼도 마음은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회사생활은 '맑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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