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고 매일매일 이야기 나눈 것이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먼저 연락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를 잘 모르던 때 보이던 모습과 그는 조금 달랐습니다.
매일 연락하며 지내던 짧은 한 달이란 시간 동안에도 몇 번 연락을 그만두어야지 생각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모두 제 말에 대한 공감을 잘해주지 못하는 것이 느껴졌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제가 그렇게 마음을 접고 연락을 뜸하게 할 때마다 어김없이 출근시간이면 연락을 해오던 그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걸까? 나에게 그 유명한 '어장관리'를 하는 것일까?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해서 제 마음이 토라진 것을 알아챈 그는 그래도 계속 말을 걸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시도해왔습니다.
저보다는 분명 나이가 많은 오빠였지만,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그와의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다고 이야기할 때면 "우리 아가, 힘들었어요?"를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하는 인증숏을 보내올 때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남자의 본능을 채워줘야지 싶어 "잘했어요!""멋져요!""훌륭해요!"의 감탄사를 번갈아가며 표현해주었습니다. 화려한 이모티콘의 향연은 필수였죠.
그렇게 해서라도 이 사람을 조금 더 파악하고 알고 지내고 싶었습니다. 한 달 동안 불안했던 것은 그가 연락을 하지 않을까 봐였습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길까 봐... 하지만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꾸준히 그는 연락을 해주었고, 다소 심드렁한 대화가 오고 갈 때도 있었지만, 무뚝뚝한 남자들이 대부분 그러려니, 그래도 그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계속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거겠거니 하고 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밝게, 유쾌하게,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화 주제를 던졌습니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대화만이 계속되다 한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그와 마음을 터놓는 대화를 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책임감 있어 보였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느꼈던 그에게 내면의 어린아이가 있고, 외로워 보인다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심리학 책 속에서 상담사처럼 그의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대화를 해야만 그를 더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먹고 대화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주도해갔습니다.
그와의 이런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전 같았다면 겉모습의 그를 보고 푹 빠졌겠지만, 이런 내면의 모습을 파악하고, 그가 나와 잘 맞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화를 자주 내거나, 무서워하거나, 무감각해지는 등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어딘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심리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걸 모두 말한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얼마나 창피한지, 아무리 바보 같은 얘기를 해도 그녀는 다 받아준다. 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부자로 만든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 지음 '아내가 없는 밤' 중
지금 이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냥 습관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만약 그가 지금처럼 계속 매일 아침 빠짐없이 연락을 해오고, 자기 관리하여 운동하는 인증숏을 보내온다면 저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그랬듯, 저도 그에게 제 속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제 사소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고 계속 대화하고 싶은 만큼 더 많이 이야기하다 보면 나와 잘 맞는지 어디까지 이해 가능할지 알 수 있으려니 합니다.